이 이야기는 철수를 따라갑니다. 철수가 발정을 느끼고 사창가로 갔다가 동창이자 경찰인 우현에게 발각되고 협박을 당합니다. 이후로 우현은 철수의 명의로 사채를 끌어다쓰고 괴롭히며 놓아주지 않습니다. 결국 철수는 복수를 실행합니다. 철수는 우현의 신분증으로 큰 돈을 빌리고, 자신을 협박했던 사실들을 공개해 우현을 사회적으로 매장을 시킵니다. 결국 우현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지하TV 먹방에서 강제로 밥을 먹는 ‘애완 인간’이 됩니다. 철수는 이 방송을 즐겁게 시청합니다.
철수의 입장에서는 멋진 카운터 펀치를 날린 것입니다. 자신을 우습게 보았고 이용해 먹었던 동창의 인생을 제대로 망쳤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독자들도 소설의 반전에 대한 쾌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 쾌감의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우리는 철수의 입장에서 철수의 승리를 축하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악인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철수는 공감의 대상에서 배제되어 있습니다. 그는 악인 중에서도 가장 저급한 악인이니까요.
사실 이 싸움도 철수가 이긴 것이라 볼 수도 없습니다. 철수는 자신이 더 강해지기 보다는 <더 큰 악:지하TV>에 우현을 팔아넘겨서 위기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우현보다 더 강하고 악한 이가 우현을 잡아먹은 것이죠. 이 소설 내부의 사회는 커다란 정글로 비유할 수 있고 철수를 잡아먹으려던 포식자 우현조차 숫사자 앞에 선 하이에나 정도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제가 떠올린 키워드는 긴장감과 안도감입니다. 이 세상에 철수와 우현과 같은 인간은 존재하고 있다는 인식, 그리고 지하TV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긴장을 유도합니다. 그리고 철수와 우현의 싸움은 악인과 악인의 싸움입니다. 소시민들의 일반적인 삶에서는 약간 멀어보이고, 오히려 악인과 악인이 만나 그 중 하나가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안도감을 주죠. 이런 긴장감과 안도감이 이 소설이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악이 자신보다 큰 악을 더 큰 악에 팔아넘기는 반전도 매력이지요.
악을 잡아먹는 악이 정의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의 추락은 구경만으로도 즐겁습니다. 그런 즐거움을 담고 있는 소설 <악기바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