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는 감상문입니다. 편하게 봐 주시기 바랍니다
주인공은 막차에 아슬아슬하게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회식에서 진작 도망쳤어야 했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시금 새기며 후회하다가 전철이 흔들리면서 술 취한 성추행범이라는 타이틀을 얻고는 부랴부랴 옆 칸으로 이동합니다. 애석하게도 그가 이동한 곳은 옆 칸이 아니고 옆 차원이었지만요.
이야기는 평범한 2호선 전철에서 갑자기 낯선 장소로 독자를 데려갑니다. 그곳에는 조력자와 방해자가 공존하고 있지요. 낯익은 공간이 낯선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을 긴장하게 합니다. 게다가 그것이 너무 친숙한 공간이라면 더더욱이요. 가장 큰 문제는 여기로 오는 이유도 원인도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겁니다. 홍대 입구에서 신촌으로 향하는 방향 전철을 타면 절대 사람 없는 칸으로는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인간을 공격하는 정체불명의 괴물. 마치 누군가 괴물을 위해 인간을 하나씩 먹이로 던져주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무자비한 상황입니다. 본래 전철 안에도 하나 존재하던 괴물은 전철 밖 괴물과 친구가 아니었던 모양인지 그것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게 됩니다만, 아무래도 인간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상대 불가능한 존재가 팀워크라도 발휘했다간 전철 칸은 그야말로 먹잇감 공급소로 불리게 될 테지요. 심지어 전철 밖 괴물은 점점 진화합니다. 밖으로 걸어 나오는 사람들만 먹다가 먹을 수 없는 사람을 만나자 바짝 약이 오른 것처럼요. 주인공이 생존할 수 있긴 한 건지 의심되는 상황에서 이야기는 고조됩니다. 이후는 직접 읽으시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고 위기가 절정으로 치닫기까지의 과정은 아주 흥미로웠으나, 다른 인물의 결단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누군가 죽음을 결심하고 실행하는 결정이 너무 성급한 것 같았어요. 상황이 등을 떠미는 것처럼 뛰어들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필요에 의한 작위성이 두드러져 아쉬웠습니다. 게다가 수갑에 묶여 있던 인물도 너무 급작스럽게 개과천선해버리지요. 서로 죽지 않겠다고 버둥거리며 네가 죽어라 나는 살아야 한다고 악쓰고 난리를 피우는 편이 제가 쓴다면 이랬을 것이다, 싶은 시궁창이지만 작가님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인간의 선함과 위대함이었기 때문에 이야기는 희망적으로 끝이 납니다. 설령 그게 완전한 희망과 행복한 결말은 아니라고 할지라도요.
결국, 탈출 방법에 관한 힌트 하나 없이 죽고 말 거라는 점에서 비극적 결론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겁니다. 읽고 나서 제 감상은 그래서 얘네 탈출은 어떻게 하는 거지. 모두가 인간의 위대함을 외치며 뛰어든 다음 역 밖으로 탈출하는 것은 아닐까? 같은 질 나쁜 부류였는데요. 아마도 작가님은 좀 더 인간적이고 행복한 탈출을 상상해주시겠지 싶습니다. 뒤로도 충분히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고, 또 작가님이 그려내는 인간의 선량함에 관하여 좀 더 읽고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주인공이 술에 취해서 맞닥뜨리는 위기가 좀 적어서 아쉬웠고요! 여자는 왜 객실과 객실 사이에 갇혔는지 궁금했습니다.
작가님의 문장이 술술 잘 읽혀 저도 모르게 객실에서 함께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이 작품에 제일 무서운 이유는 저부터도 옆 칸이 비어있으면 당연히 넘어갔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그리고 넘어간 저는 아마 죽겠군요. 흠흠. 충분히 장편이 될 수 있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즐겁게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