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쯤에 한국대중음악상 에서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수상한 이랑 이라는 가수가 있었습니다. 한국대중음악상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꿈의 시상식인 곳인데요. 이 곳에서 그는 ‘자신의 지난달 전체 수익은 42만원, 이번 달은 96만원이다. 이 시상식에서 상금을 주면 좋겠지만 주지 않으니 이 트로피를 50만원부터 경매하겠다.” 라 발언합니다. 50만원인 이유는 그의 집 월세가 50만원이었기 때문이었죠. 곧 트로피는 낙찰되었고 이러한 퍼포먼스는 굉장히 큰 화제를 모으게 됩니다. 다양한 의견이 오갔지만 그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의견이 하나 있었는데요. “예술이란 원래 가난을 각오해야 하며, 가난 속에서 훌륭한 예술이 만들어진다.” 어딘가에서 많이 들어본 말이었습니다. 1
예술가는 가난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굶주리고 배고픈 사람이 절실한 심정으로, ‘이 작품이 내 최후의 작품이다.’ 라는 심정으로 작업을 하게 되면 그만큼 역작이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저는 이 말 자체에 공감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예술이든 뭐든 가난하면 일단 힘이 없거든요. 힘이 없다는 소리는 있던 의지도 다 꺾인다는 소리고 잘하면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길로 빠진다는 소리가 됩니다. 당장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아, 나는 이 고통을 예술로 승화하겠다!’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현실적으로 따져본다면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만약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있다면 그 수는 더더욱 줄어들겠죠. 당연한 소린데,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인공이자 글의 화자는 가난합니다. 회고 형식으로 흘러가는 글이라 세부 사항은 나오지 않지만 가난해서 연애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암시가 얼핏 나옵니다. 그는 돈을 벌지 못하는 소설가이며, 끝내 성공하지만 그것을 본인이 숨쉬는 상태에서 본 것이 아니었죠. 그는 처절합니다. 만약 그가 처절하게 살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으면 어땠을 까요? 멀리 갈 필요 없이 원고료 하나만이라도 제 때 받았다면 아마 상황이 달라졌을 지도 모릅니다. 끝까지 염세적이었던 그는 결국 그렇게 사라지고 종국에는 유명해졌지만 그것은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유명세를, 자신이 필요로 했던 금전을 정작 자신이 누리지 못하고 갔으니까요. 이런 허망한 상황을 ‘예술가의 역작을 위한 하나의 상황’ 으로 포장할 수 있을까요?
예술도 결국 돈이 필요한 장르라 생각합니다. 결국 자신의 의식주 생활 하나 영위하지 못할 정도의 빈곤한 상황이라면 누구든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게 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현실과 타협해 붓이나 펜을 꺾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이죠. ‘가난한 예술가의 역작’ 그런건 말도 안되는 허상이라 생각합니다. 가난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만들려는 의지마저 꺾는 요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