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재난이라는 공포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사내 복지는 악령 퇴치부터 시작합니다 (작가: 최영원, 작품정보)
리뷰어: 오렉시스, 20년 5월, 조회 198

이 작품은 호러 장르입니다. 그런데 그건 2화부터 등장하는 귀신들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이 호러인 것은 귀신이 정석을 죽이려 들어서도 아니고, 출근할 때마다 독갑물산센터 건물 사방에 목없는 귀신과 사지가 뒤틀린 존재들이 널부러져 있어서도 아닙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의 머리털이 더욱 쭈뼛 서는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영화 <엑시트>의 대사처럼, “우리 삶이 재난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해영은 사주가 모두 호랑이를 지닌 엄청나게 기가 센 존재라서 유령들을 실컷 때려잡을 수 있지만, 그가 근무했던 회사의 개진상 상사들을 때려잡지는 못합니다(한번은 때렸다가 상사의 뼈를 조각내는 바람에 해영은 회사에서 쫓겨나서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습니다). 독갑물산의 홍보팀 강수지 사원은 말단 직원이라는 이유로 진상고객들의 스팸/악성댓글들을 실시간으로 삭제하며 팀의 온갖 잡일들까지 떠맡고 있습니다.

한이 쌓여 구천을 떠도는 귀신들이라는 설정은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즉 악덕 관료나 상사의 사악한 의도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한 존재들이 한을 풀기 위해 이리저리 노력하는 모습은 우리의 귀신썰에서 그리 새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독갑물산에 등장하는 귀신 이야기는 그와는 조금 다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소름끼치면서도 무척 일상적인 회사의 모습들과 연애의 단면들을 발견합니다. 임신한 직원을 해고하려는 회사, 권력을 등에 엎고 성추행과 성희롱을 일삼는 부장, 초과근무를 밥먹듯이 시키는 스타트업, 애인의 집에 얹혀살면서 가사를 함께 하기는커녕 숙주나물을 만들어달라는 남자친구 등등.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들은 특별한 악의를 요구하지 않을만큼 무척 흔하고 뻔하지만 무시무시할 정도로 폭력적입니다. 이미 이 일상적인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수많은 회사원들은 이미 좀비처럼 힘없이 걸어다니며 드링크제에 의존해서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가지만(독갑물산에 쑥 들어오거나 그 주변에 널려있는 귀신들은 이런 순간들이 만들어낸 비틀린 존재들일 것입니다), 그렇게 버티는 것이 좀 더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마에 뿔이 나 버린 강수지 사원처럼요.

그러니까 강수지 사원의 뿔은 그가 겪고 있는 고통의 상징입니다. 해영은 톱과 망치로 그 뿔을 뽑거나 잘라내려 하고, 정석은 무리해서 제거할 필요 없이 그냥 둬도 상관없지 않냐고 생각하지만, 독갑물산의 고명한 회장은 ‘사람 몸에 그런 게 있으면 안 된다’고 잘라 말합니다. 바꿔 말하면, 사람 몸에 그런 게 있으면 안 되듯이, 사람들은 그런 일을 겪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해져버린 일이어서 가끔 잊어버리곤 하지만 말입니다. 관건은 뿔 난 사람에게 뿔을 뽑아버리는 게 아니라, 애초에 뿔이 날 일이 없었어야 했었던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호러물이 우리의 삶 자체로부터 기인하는 것이기에 그런 가정은 너무 무의미한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주인공 해영은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까요? 톱과 망치로 뿔 대신 강수지 사원을 괴롭히는 인간들을 깨뜨리러 갈까요? 이제 독갑물산의 비공식 퇴마사가 되어버린 해영은 비실비실한 정석과 함께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에 직면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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