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에서, 특히 장편 작품을 읽는 건 사실 적잖이 부담스러운 일이에요. 아무리 브릿지 뷰어가 웹소설 플랫폼 중 가장 탁월한 UI를 갖추고 있다고 해도 원고지 200매 넘어가는 글을 한꺼번에 읽는다는 건 힘듭니다. 일단 광화소 기반 디바이스로 보는 거 자체가 피를 엄청 깎아먹어요. 전자잉크 기반으로 웹소설을 볼 수 있는 디바이스가 나오면 좋을 텐데요.
이런데도 완결된 장편 작품을 몰아보는 습관이 있는 제가 미련한 거겠지만 뭐 어쩌겠어요? 장편은 완결후에 봐야 제맛입니다. 한 화 한 화 올라가는 속도로 읽는 걸 제가 참 못해요. ‘뒷 내용’에 대한 호기심이 즉각 충족이 되지 않으면 못 견디거든요.
이런 서두를 왜 두느냐, 이 작품이 이 미친듯이 높은 ‘광화소 피로도’를 감수하고서라도 몰아볼 만한 작품이었다는 걸 어필하고 싶어서예요. 귀엽게 봐주십시오. 그럼 이게 어떤 작품인가. 작가님께서 자유게시판에 게시한 작품 소개를 보지요. (https://britg.kr/community/freeboard/?bac=read&bp=109250)
출생률 제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구정책부가 출범하고, 산하 교육 기관인 제3대학과 산하 행정 기관인 인구조절센터가 생깁니다. 인구정책부는 출생률 제로에 대한 대안으로, 클로닝(인간복제)과 워크인(영혼을 클론으로 옮김) 기술을 도입하고 사망률 제로 상태를 만들어 인구를 유지시킵니다. 결국 모든 사람이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게 된 ‘유토피아’가 된 거죠. 그런데 이 평온한 사회를 ‘스내처’들이 테러로 위협합니다. 이들은 타인의 몸을 한 채로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항해 인구조절센터 내부에는 스내칭 수사국이 있습니다. 이 수사국에는 제3대학을 졸업한 인재들이 특수 요원이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데요, 주인공인 ‘하나’는 연구원, 언니인 ‘안나’는 특수 요원이죠. 스내칭 수사를 하면서 하나는 점차 유토피아의 균열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작품의 설정부분, 그리고 그러한 설정이 드러나는 초반부는 특히 눈부셔요. 깔끔하고 명석하며, ‘아, 이럴 수도 있겠다. 이런 기술이 도입되면 사회가 저런 모습으로 변할 수 있겠구나.’ 하고 자연히 수긍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게다가 잠재 독자의 욕망을 끌어들이는 데 작품의 ‘설정’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생각하면, 여기서 탁월함을 보인다는 건 아주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해요.
그에 비해 구성과 연출의 능숙함이라는 점에서는 발전도상이라고 느꼈어요. 읽으면서 위화감을 느낀 지점을 별도의 분류 없이 열거해보겠습니다.
1) 장면연출 특히 도입부가 약함. 생소한 SF적 워드들 때문은 아님. 신기술 발표-폭탄 테러라는 건 사실 테크노스릴러에서 정석적인 오프닝이겠지만 이 작품의 주제의식과 연관되는 수미일관된 연출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느꼈음. 그러나 이 문제의식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 취향 때문일 수도 있음.
2) 몇몇 인물들의 심리, 특히 그러한 결단을 내리는 이유가 이해가 가지 않는 점. 예를 들어 후반부, 하나는 안전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모 인물이 제시한 위험한 안건을 수락한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논리적으로 납득될 만한 빌딩은 되어 있지만(‘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감정선이 충분히 제시되지 않아서 읽는 동안은 엥 왜지;; 싶었음.
3)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중요한 정보(특정 사건의 진상, 키퍼슨의 의외의 정체 등)가 많은 편.
예를 들어 황치현이 사냥개 우두머리라는 정보가 등장인물의 입으로 밝혀지는데(15화) 뜬금없었다.
4) 몇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전개.
예를 들어, 삼사라는 왜 굳이 두 번의 폭탄 테러를 저질렀나? 그중 비주얼 마인드 건은 후반부에 왜 그랬는지 설명이 나오는데 인구조절본부 건은 잘 모르겠다. 아니 저거 때문에 인구정책부 계획이 앞당겨진 거나 마찬가진데 적에게 득점골을 준 거나 마찬가지인 거 아닌가… 왜지.
5) 가치관의 혼란. 이 작품은 인간성, 여성과 모성에 관해 꽤 비중을 싣고 있는데, 보수적 가치관인지 포스트휴먼적 가치관인지 헷갈린다. 등장인물의 반응을 보면 보수적인 데 가까움. 근데 작품이 그리는 사회상을 감안하면 저 사회에서 아직도 등장인물들이, 특히 여성이 임신 출산 모성에 관해 보수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게 잘 납득이 안 감. 이 부분에 관해 좀더 정립하고 가치관 대립을 첨예하게 만들면 진짜 재밌었을 거 같음.
6) 판단하기 좀 미묘한 부분: 영혼과 환생에 관한 과학적 설명은 아주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중 특히 환생 현상에 관해 설명을 포기한 부분이 있음. 이대로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드는 한편 이게 다른 독자들에게는 신뢰감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되지 않을까 싶은 우려도 생김. 요즘 SF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대충 위와 같네요.
좀더 자세하게 의견을 풀어가고 싶은데 제가 오늘은 도저히 기운이 안 나는 데다 제 생활 패턴으로 봤을 때 아마 이 컨디션 저조는 며칠 더 갈 거 같습니다. 그때까지 리뷰를 안 쓰는 것도 도저히 못할 거 같아서, 우선은 거칠게나마 이렇게 드려요. 너무 치졸하다고 기분나빠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즐거운 장편 독서를 경험하게 해주신 작가님께 경의와 감사를 드립니다.
아. 이 리뷰의 제목은 6화의 작가님의 코멘트입니다. 저 질문조의 소개가 저는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