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도피하고 닿은 낙원에 언제까지 머물 수 있을까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그리핀도르의 후예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소로리, 20년 4월, 조회 72

꽉 막힌 도로 위에서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떠올리고

텅 빈 통장 잔고로부터는 로또 당첨을 떠올립니다.

사람은 힘들 때 도피처를 찾고자 하고

그러한 도피처는 크건작건간에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겁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로 시작된 장대한 마법세계의 여정이

7권으로 막을 내릴 무렵 책을 읽던 소년소녀들은 주인공을 따라 모두 다 성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힘든 일이 없는 것은 아니고 도피처를 찾지 않는 건 아닙니다.

그저 어릴 때의 토끼인형이나 담요, 쪽쪽이 등이 술, 담배, 게임…등으로 치환되었을 뿐입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비일상을 꿈꾸고 앞이 보이지 않는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합니다.

 

정우는 그게 좀 더 컸을 뿐이겠지요.

 

정우에게 있어 호그와트는 일종의 운명이었고(이는 자신의 생년월일과 출판일자를 동일시하는 데에서 나타납니다.)

자신의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탈출구로 계속 작용해왔습니다.

그래도 어쩌면 나이를 먹고 새로운 탈출구로의 이전을 꿈꿀 수도 있었겠지만,

대학입시 실패 후 대부분의 감정적 탈출구가 봉쇄된 상태에서 진행되어야 했을 긴 재수생활은 그에게 그다지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영국…

아마 그곳에서의 만남이 그로하여금 비일상으로의 맹속돌진을 가능케 했을겁니다.

어학연수는 또다른 절해고도에 다름아니고 머나먼 타지에서 아는 사람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게다가 영국은 인종차별도 심한 편이고…) 힘겨운 시간인데 재수 직후 여기를 다녀왔다라는 것이 아마 더욱 외곬수로 살아가게끔 했을겁니다. 모든 게 낯선 곳에서 유일하게 친숙한 것. 어릴 때부터 감정적으로 깊게 발을 들였던 바로 그 것.

사람들은 다단계나 피싱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걸 왜 당하냐며 비웃지만 그 순간에 막상 처하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당한다고들 합니다. 제가 아는 케이스만 해도 변호사나 판사 등 대체 왜 이 사람이 당하나? 싶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하시는 말씀이 당시 상황이 그렇게 당할 수 밖에 없게끔 몰아가진다고 하네요.

아마 정우도 마찬가지였겠지요. 당시 유일하게 내려진 동앗줄이었을 것이고, 자신의 삶이 (본인 생각에) 잘못되었던 것에 대한 가장 완벽한 해답이었을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이후를 결정지었습니다.

글을 읽으며 혹시나 했으나 저자는 글을 통해 확실히 정우는 사기를 당했음을 못박아놓습니다. 그리핀도르를 후사를 남기지 않았고, 그들이 제공한 모든 것이 거짓이었습니다. 정우는 자신이 기댈 수 있었던 모든 것으로부터 배신당했고 상현은 친구를 잃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정우 홀로 진실에 맞닿게 하는 게 나았을까요? 어쩌면 정우의 다른 한 편에 잇닿아있던 모든 그늘을 알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면 그게 정답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글에서 언급된 내용에 의하면 상현은 정우의 그늘을 단편적으로 접하는 정도였고 따라서 그가 한 행동은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제일 친한 친구였지요.

새벽까지 상현의 술주정을 들어주던 정우가 상현에게도 마찬가지로 풀어줄 수 있는 정도의 친구였다면, 그리고 정우가 그 전화를 받던 도중에 술쳐먹었으면 그만 자라고 말하고 욕 한 바가지 한 다음에 끊어버릴 수 있는 친구였다면 뭔가 달라졌을까요? 유감스럽게도 거기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상현의 인연은 거기에서 끊어졌고 글은 드라이하게 그 이후의 일을 맺음합니다. 아마 그 이상의 이야기는 있기 어려울 것 같긴합니다.

이제 정우에게는 정말 호그와트만이 남았으니까요.

 

누구에게나 호그와트가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그것으로부터 마음의 안식과 평안을 얻습니다.

다만 마음의 안식처, 최후의 탈출구…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우는 그것에, 전력으로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질 않길 바랄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단편임에도 읽으며 이래저래 생각할만한 거리가 많아서 좋은 글이었고, 씁쓸함의 여운이 남아 인상적이었습니다.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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