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인 대목에서는 스포일러 숨김을 하겠으나, 대상 작품의 트릭-특히 유료결제 이후분-에 관한 언급이 있으므로 미독이신 분은 주의해 주십시오.)
이 작품은 한동안 추리/스릴러 카테고리 인기작에 머물러 있던 작품이다. 완결작이기도 하여 호기심에 끝까지 읽었는데, 작가님이 무척 즐기면서, 그리고 고심하면서 완성한 작품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추리소설을 애호하는 독자로서 이렇게 즐겁게 완성해낸 작품과 만나면 덩달아 즐거워진다. 우선 내게 그러한 즐거움을 주신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발푸르기스의 밤>은 고립된 저택을 배경으로 동서양 오컬트적 소도구가 배치된 호러 미스터리다. 조모의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모인 친족들이 수수께끼 같은 시의 내용대로 발생하는 연쇄 살인사건에 휘말린다. 주인공이자 탐정 격인 ‘연수’가 사건을 따라가며, 작품은 클로즈드 서클, 원전에 빗댄 살인[analogical murder], 암호 미스터리 등 미스터리물의 정석적인 요소들을 선보인다.
그런데 추리소설 독자로서 볼 때 다소 아쉽기에 작가님의 잠재력이 궁금해지는 면들이 몇 가지 있었다. 이하에서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고 의견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이 ‘기준’들은 결국 자의적이지만 해외 추리작가들의 평론이나 작법서 등을 읽으며 내면화한 것을 바탕으로 함을 밝혀둔다(사실 그 글들을 인용하며 리뷰를 진행하고 싶었는데, 책들을 뒤질 상황이 아니다. 죄송합니다).
1) 발상: 핵이 되는 수수께끼
이 작품의 핵으로써 주목한 것은 시에 숨겨진 암호이며 특히 범인을 지목하는 이름의 수수께끼다. 암호 시 ‘발푸르기스의 밤’을 접한 연수는 시에서 받은 위화감을 단서로 암호를 풀어낸다. 암호는 가족이 탐내는 황금의 소재와 더불어 피비린내 나는 연쇄살인의 범인을 가리킨다. 이러한 암호를 발상하고 푸는 방법을 고안하는 아이디어가 좋은 인상을 주었다.
특히 가족들의 이름에 포함된 ‘鬼’자를 단서로 진범을 특정해낸다는 점이 재밌었다. 다만 암호를 풀어가는 로직이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고, 이름 복선이 세련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 이름의 경우 해당 인물이 등장할 때 바로 지문에서 괄호를 치고 표기한다. 이렇게 한자를 병기한다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기에 자연스럽게 주의가 집중되고, 내 경우는 금방 패턴을 알아낼 수 있었다. 추리소설에서 결정적 단서가 되는 곳에 독자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전략은 피해야 한다. 등장인물이 소개되는 스토리 초반부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미스리드를 도입하거나, 자연스럽게 한자명을 제시할 수 있는 상황을 고안하면 좋았을 것 같다.
2) 플롯: 사건을 어떻게 배열하는가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읽을 수 있었다. 충격적 사건이 일어나고 등장인물의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며, 냉정한 추리로 쿨다운하는 흐름이 좋은 편이라 흡입력이 있었다. 이러한 매끄러운 운용이 작품의 최대 장점이고 작가님이 갖고 계신 귀중한 솜씨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간혹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이 부분은 다음 항목으로 넘긴다.
3) 현실성과 논리성
엄밀하자면 현실성과 논리성을 분리해야 하겠지만 둘을 뭉뚱그리겠다. 현실성은 ‘독자가 충분히 소설 속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납득할 수 있는 정도’로, 실제 현실에서 가능한가 하는 문제와는 다르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 소설 속 세계에서라면 있을 법하다’라고 무리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한편 논리성은 추리와 해결의 흐름이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건전한지를 말한다. 두 기준은 결국 작가가 전개하는 사건과 추리의 흐름이 ‘추리소설’로서 독자에게 신뢰를 줄지 여부와 관련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감히 말씀드리자면,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매끄러운 진행이라는 뛰어난 점과는 별개로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신뢰성에서는 다소 미달하는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우선 ‘현실성’을 고려한다면 가장 의문스럽게 여겨지는 점은 이것이다. 등장인물들은 어째서 경찰을 부르지 않는가. 이 작품은 풀숲의 미궁으로 클로즈드 서클처럼 연출되어 있으나 완전한 클로즈드 서클로 제시되지는 않았다. 유산 다툼에 경찰을 개입시키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작용했다고 하더라도, 엽기적인 살인이 벌어지는 시점에서 아무도 경찰을 부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하다. 게다가 물리적으로 저택 외부와 내부를 단절하는 것은 ‘풀숲’ 미궁이다. 결국 실패하더라도 낫을 들어 베는 시늉이라도 보여주는 편이 이 인공적인 극한상황에서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인간 행동이다. 클로즈드 서클물들이 ‘외부와의 단절’을 갖은 시도가 실패함을 보여주면서 분량을 할애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논리성’ 면을 예를 들자면 연수가 특정 인물을 용의선상에서 제외하는 이유가 완전히 심리적인 것인 데다 반드시 그렇다는 설득력이 약하다는 점이 있다. 자식의 죽음 앞에 크게 슬퍼하는 부모가 바로 그 살인자라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또한 암호 풀이는 ‘발푸르기스의 밤’이라는 단어 하나만을 키워드로 추리를 전개하지만 근거가 부족하고 열거되는 단어들 이외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법한데 검토되지 않는 듯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덧붙여서 연수의 추리에는 ‘부정’의 과정이 빠져 있다.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간혹 만나게 되는 아쉬움인데, 추리의 검증 절차에 ‘그밖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과정이 없으면 정설로 채택된 추리 그 자체의 힘이 매우 약해진다. 셜록 홈즈가 말한 것처럼 “불가능한 모든 것을 제거하고 남은 것이 진실”이다. 보통 ‘드러난 진실의 기괴함’에 방점이 찍히지만, 이 프레이즈는 진실 자체가 아니라 불가능성을 제거하는 공정 자체의 중요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4) 복선: 공정한 서술
작품에 깔린 복선에 관해서는 작가 후기에 따로 정리해 두셨는데, 몇 가지는 아하! 하고 상쾌한 발견의 감각을 주었다. 과연 고심하며 세심하게 복선을 배치하신 것 같다. 그런데 그중 공정하지 않은 서술-더 나아가서는 소설의 시점 문제와 관련되는 미스가 있는 것 같다.
“그녀의 온몸은 땀에 흠뻑 젖었고”라는 문장에서, 실은 진범의 몸이 땀이 아닌 물에 젖어 있다는 뜻이었음을 의도하셨다고 한다. 이 장면은 3인칭으로 시점인물은 연수다. 즉 연수의 시각에 입각해 있는 객관적 서술이다. 이때 실은 물에 젖은 인물을 ‘땀에 젖었다’라고 단언해서는 안 된다. 객관적 시각에서 봤을 때 완전히 틀린 진술이고, 연수의 시각에서라도 함부로 땀에 젖었다고 단언하면 공정하지 못하다. 어디까지나 3인칭인 한 독자가 객관적 진술로 받아들여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당한 표현은 시점인물의 시각을 경유한 ‘땀인 듯하다’라는 추측이 된다. 이렇게 썼더라면 물을 땀으로 단언하지 않은 한 공정한 복선이 되었을 것이다.
이상으로 추리독자로서의 소견을 드렸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발푸르기스의 밤>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뚜렷한 작품이다. 작가님은 이후에도 추리 작품들을 쓰셨으므로 계속 본인의 장점과 잠재력을 계발해 나가고 계시는 줄 안다. 그런 작가님께 외람된 의견을 드리는 데 대한 두려움이 있음을 부디 헤아려 주시고, 독자로서 그리고 창작을 하는 동료로서 작가님의 작품으로부터 촉발된 생각을 나누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는 점도 너그럽게 보아 주시기를 바란다. 좋은 작품을 읽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