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관 속 행복>을 읽고 감상

대상작품: 유리관 속 행복 (작가: 김용안, 작품정보)
리뷰어: 그린레보, 20년 4월, 조회 51

그, 소설이란 건 뭘로 구성되는 걸까, 혹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뭔가 국내외의 소설 신인상 심사평 같은 걸 쭉 둘러보고 있으면 빈번히 보는 게 ‘너무 아이디어에 의존했다’ 거나 ‘아이디어는 좋은데 표현력이 못 따라간다’ ‘아이디어 일발승부’ 등등의 소리예요. 그러니까 이건 ‘아이디어만으로는 소설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가치판단이 들어간 평이겠지요?

그러고 보면 최근에는 ‘소설은 인격으로 쓰는 것’이라는 평을 들은 본 적도 있어요. 어디서 봤는지는 잘 기억 안 나는데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아니, 소설이라는 게 인격으로 쓰는 거였어?! 하긴 과거시험 볼 때도 뭔가 글에서 드러나는 인품 같은 걸 본다는 명분이 있었던 거 같긴 한데… 그럼 소설의 구성 요소에 올바른 인격 내지 그 표현이라는 것도 들어가야 할 거 같아요.

소설 만들기에 관한 가장 와닿는 표현은 이런 거였어요. 그… 그 뭐더라…. 로버트 영의 <민들레 소녀> 국내판 초판에서 봤는데… 기억에 의존하면 대충 이렇습니다. “모 작가는 소설을 자기 심장의 피로 쓴다고 한다. 나는 소설이란 잉크로 쓰는 거라고 말했다. 영은 둘 다로 쓴다.” 여기까지 가면 뭔가 상당히 큰일인 것 같습니다. 아이디어에 인격에 피에 잉크에 이런 걸 다 갖춰야 할 거 같아요.

라는 건 솔직히 잘 모르겠고, 실은 “어? 아이디어만 갖고 소설 쓸 수도 있는데??”라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정확히는 아이디어에만 충실해도 자기가 표현하려는 큰그림, 속임수, 전달하려는 의도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생각하는 쪽. 그런 재기발랄함을 평가하고 음미하는 단편소설 문화가 언제 어느 사회에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일단 지금 여기는 아닌 것 같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유리관 속 행복>이라는 작품도 재기발랄한 타입입니다. 짧은 분량에서 아이디어, 큰그림, 속임수, 의도를 싹 풀어내고 있습니다. 약간 거친 부분이라거나, 이런 부분은 좀더 분량을 늘리고 복선도 넣었으면 좋겠는걸 싶은 부분도 읽으면서 느끼긴 했는데요, 그런 아쉬운 부분은 사실 그 어떤 호평받는 아이디어형 단편소설을 봤을 때도 있었어요. 원망충족형 아이디어 소설로써 나는 이대로도 만족. 약간 뜬금없이 등장하는 초월적 존재들과 씁쓸한 결말이 재밌습니다.

이런 종류의 아이디어 작품은 계~속 많~이 쓸수록 작가의 실력이 붙어서 재밌어집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군요.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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