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에서 떨어지는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섬뜩함 공모(감상) 공모채택

대상작품: 해리성둔주 (작가: 메르카토르, 작품정보)
리뷰어: 이야기악마, 20년 4월, 조회 46

인간은 이성적이지만 자신에게는 비이성의 탈출구를 열어두는 동물이다. <나는 특별하다.>, <나 정도면 보통보다 낫다>는 명제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생각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런 긍정을 가지고 살아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그런데 도플갱어가 나타나면 어떨까?

고대나 중세에 그들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은 지역, 관습, 계급, 문화, 성씨 등 다양했으며 그들은 고유의 정체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전설 속의 도플갱어 이야기에서는 하나의 정체성을 놓고 싸운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서로를 죽이려 한다. 절대적인 적의를 가지고 서로를 죽이려 하며 결국 승자가 하나의 정체성을 독차지한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어떤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우리는 지역을 뛰어넘어 같은 교육과정, 문화, 이념, 유행 속에서 살아간다. 심지어 인터넷 쇼핑몰에 <개성> 키워드가 찍힌 청바지는 만 벌 이상 팔려 또 다시 감사 할인을 한다. 나름 유튜브와 블로그로 공부한 패션으로 무장하여 밖으로 나가면 나와 비슷하게 입은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이 현대의 도플갱어들이다. 나는 나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여기고 나 정도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나와 같은 이들을 만날 때 우리는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내 존재가 수학적 정규분포에서 정확히 가운데에 있다고 느끼는 순간에 우리가 느끼게 되는 것은 안심이 아니다. 나의 <위기>이다.

<나의 위기>는 주인공의 내부 소설 <도플갱어의 섬>에서 잘 나타난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자기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장면에서, 읽는 이도 섬뜩함을 느끼는 것은 <정체성의 위기>를 같이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해리성둔주>는 질병이 아니라 치료약일 수 있다. 지금까지의 기억을 모두 던져버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시도는 정규분포에서 도망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현대 개인의 몸부림을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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