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젠다 세팅 (Agenda setting)’이란 매스미디어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현행 이슈에 대한 대중의 생각과 토론을 설정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용어다. 흔히 ‘의제설정 (議題設定)’이라고도 한다. 매스미디어가 특정 이슈를 선정하여 그것을 중점적으로 다루면 대중의 관심은 그 이슈에 집중되고 여타의 이슈는 슬그머니 잊혀진다. 따라서 매스미디어가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 등을 통해 중요하다고 보도하는 주제 (미디어의 의제)가 대중에게도 중요한 주제 (대중의제)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윤지응 작가의 <괴담의 의미>는 발상이 참 재미있는 엽편이다. 괴담(怪談)이란, 말 그대로 괴이하거나 무서운 이야기를 의미한다. <괴담의 의미>는 ‘괴담의 기원과 그 존재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에서 탄생한 이야기다. 정부가 매스미디어를 이용하여 중요의제에서 대중의 시선을 분산시킨다는 아젠다 세팅 이론을 작가는 그 차원을 몇 단계 올려서 적용하고 있다. 즉, 지구를 넘어 태양계 전체를 총괄하는 신이라는 존재가 있고, 그 신이라는 존재가 태양계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 중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태양계에 살고 있는 생물체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괴담’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하긴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도 수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시시각각으로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태양계 전체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발생할까? 그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 중에서 중요하고 긴급하게 해결을 요하는 문제를 선별하고 해결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 신의 입장에서 ‘괴담’의 존재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엽편이라는 지면적 한계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괴담의 묘미와 독특한 특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괴담의 의미>에서 포착한 괴담의 의미와 존재이유, 활용목적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괴담은 철저히 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따라서, 괴담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거나 당대 현실의 세태, 사건사고, 시대정신 등을 반영하여 꾸며낸 이야기들이 많다. 예를 들면 백화점이나 한강다리 붕괴사고가 일어났던 시기에는 부실공사로 인한 건물 붕괴의 피해자들이 나오는 괴담이 유행했고, 사이코패스 범죄가 악명을 떨친 시기에는 이런 범죄를 다루는 괴담이 성행했다. 또한, 납치, 유괴, 인신매매가 성행했던 시기에는 이와 관련된 괴담이 많았다.
<괴담의 의미>는 신선하고 독특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엽편이다. 하지만, 신이 직접 구현해내는 ‘괴담’이라는 걸 감안했을 때, ‘자유로에 출몰하는 귀신’ 같은 약간은 식상한 괴담 보다 뭔가 더 현실적이고 시대를 반영한 괴담이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