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과학동아를 자주 읽곤 했는데
거기에 두 페이지 가량 분량으로 짤막하게 올라오던 SF소설들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참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 읽었었는데
여기 브릿g에 오면서 다시 그 때의 기분을 다시 접하게 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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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주인공 토마스의 이야기입니다.
토마스는 작품 소개에 쓰여져 있는 바와 같이 모종의 임무를 마치고 장거리 우주여행의 반환점을 막 돈 참입니다.
항상 그렇지만 장거리 여행 혹은 항해에는 미칠듯한 외로움이 함께하곤 합니다.
중근세 항해의 경우에는 도중도중 항구에 기항하여 회포를 풀 수 있지만
빛의 단위로 거리를 논하는 우주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비유하자면 마젤란의 태평양 항해(동남아시아 도착 전) 당시의 고난이 여기에 비유되지 않을까요?
어디까지 왔는지도 알 수 없고, 지금 어디인지도 알 수 없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할 지도 알 수 없는…
그나마 마젤란의 항해에는 (비록 반란을 꿈꾸는 선원이 적지 않았지만..;)
동료 선원들이 있어 이야기 상대라도 있었지만
많은 것이 기계로 대체된 효율성의 시대에는 이야기할 상대도 없이 홀로 모든 것을 이겨내야 합니다.
예전에도 그런 경향은 있었지만 무게 1kg을 올릴 때마다 천문학적으로 발사비용이 올라가는 우주여행이라면
더더욱 그러하겠지요.
그러나 효율성의 극한 끝에 홀로 긴 우주여행을 나서야만 한다는 파일럿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가지로 스트레스가 많은 여행에서 혼자 장거리 여행이라는 것은…
어쩌면 망가지기 쉬운 환경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기업의 입장에서는 곤란한 일입니다.
우주선의 거의 모든 기능은 인간보다 훨씬 싸고 가벼운(특히 ‘유지’ 측면에서)
기계로 대체할 수 있으므로 만약을 대비해서 인간 한 명 태우는 게 제일 효율이 좋지만
그렇다고 혼자만 달랑 태워서 보냈더니만 자꾸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건 뭐 토끼도 아니고 뭐가 저렇게 외롭다고 징징대냐는 이야기가 나올 법 하지만
그게 어떻게 꾸짖거나 깜짝 놀랄정도의 돈을 얹어준다는 등의 방법으로 해결될 일도 아닌지라
뭔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을 하나 더 태워보내긴 싫습니다.
너무 비싸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아마 누군가 아주 예전에 지구에 있었다던 ‘시리’라도 떠올렸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들은 사람 대신 사람과 거의 비슷하게 모든 걸 수행할 수 있는 ‘말벗’을 만들어보기로 합니다.
이 글에서 나오는 ‘ECHO’가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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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어! 이제 모두 해결되었어!!
라고 기업인들은 생각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현장에서는 이런저런 불만이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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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도 그 중 하나입니다.
ECHO는 그 사이 많은 버전업이 되어 파일럿의 소중한 사람을 거의 완벽하게 ‘흉내’낼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업체에는 망설이는 토마스에게 쓰지 않아도 좋으니 데려나 가라며 설득한 뒤
연인 ‘레이’에게서 ‘필요한 부분’만을 복사한 ECHO를 배에 설치해두었습니다.
토마스의 입장에서는 어쩐지 이것이 바람을 피우는 것 같아 망설여졌지만
쓰지 않아도 좋다는 말에 이것을 납득합니다.
이 업무까지 수행하면 과거 사고로 인해 외골격 슈트를 사용해야 하는 연인을 돌봐줄 수 있으니까요.
까짓거 그냥 다녀오면 됩니다.
에콘지뭔지는 그냥 적당히 잊어먹고 있다오면 되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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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변은 발생하고
배는 표류하기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애써봤지만 무리였고
결국 통신모듈을 포함한 주요기능이 침묵합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독의 순간에 연인으로부터의 메시지는 31번째 메시지를 끝으로 더 이상 받을 수 없었고
방치된 고독에 몸서리치던 토마스는 결국 ECHO를 켜고 맙니다.
ECHO를 켠다는 것.
그녀와 모든 것이 똑같지만 그것은 과거에 입력된 그녀.
그런 그녀로부터 위안받고 그녀를 연인과 같이 대한다는 것.
토마스는 그 의미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를 업데이트하지 못하고 현재의 그녀를 밀어냅니다.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낸 그녀를 함께하는 상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
이건 정상인가?
아마 정상이 아닐겁니다.
적어도 인간으로서는 정상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파일럿이죠.
파일럿이 기나긴 시간동안 ECHO의 정체를 인지하면서도 자신의 반려로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정신적인 불안을 떨쳐버린채 계속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저런, 토마스가 좀 맛이 간 것 같다구요?
그건 그냥 복사한 인격의 특수성에 기반한 문제일 뿐이고,
오히려 그런 이상한 인격을 케어할 정도로 ECHO의 성능이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할 뿐,
게다가 설령 그렇다해도 그게 항행에 어떠한 문제를 주고 있던가요?
그리고 기업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아마 암시된 바와 같이 양산되어 모든 임무의 효율성을 극적으로 끌어올리겠지요.
*
이 글에서 생각해 볼 부분은 이겁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나는 토마스(인간)의 입장에서 제기됩니다.
기업의 부속으로 인간이 부품과 같이 취급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 그것입니다.
ECHO를 작동시키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몰입하게 되거나,
혹은 대상의 인격이 해리되거나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그것은 가벼운 것으로 취급되고, 그보다는 기업의 성장과 확장을 주목합니다.
이는 시대가 흐를수록 점차 물상화되어가는 인간과 그렇게 보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줍니다.
다른 하나는 ECHO(인격)의 입장에서 제기됩니다.
글에 의하면 ECHO는 특정 인간을 복사하여 아바타 개념으로 제공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 복사하는 시점에서는 동일하겠지만, 거리가 멀어지면서 점차 다른 것이 됩니다.
같은 피를 타고 난 쌍둥이라도 환경을 달리하여 자라면 다르게 자라나는 것과 같이,
거리를 멀리하여 점차 업데이트가 늦어지는 아바타의 경우 점차 다른 무언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토마스의 경우와 같은 케이스에서 이 ‘레이’는 과연 무엇일까요?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반응할 수 있는 AI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후의 변화는 그저 ‘인풋’의 내용 차이일 뿐이죠.
마지막에 결국 ‘인풋(혹은 업데이트)’를 포기하는 토마스의 결정은
이 부분을 무겁게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반면 유명한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보면,
스타로드의 연인 가모라는 양아버지 타노스에 의해 희생됩니다.
이후 과거의 가모라가 나타나 다시 그 모습을 이어가지만 보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가모라는 스타로드가 사랑하던 그 가모라가 맞나?
딱 스타로드 만나기 직전의 그 가모라인데?
스타로드란 또라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가모라야 거시기를 걷어차고 도망가버렸지만
일정시기까지 자신이 알던 네뷸라와 같았던 스타로드는 그녀를 여전히 사랑하고 연인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정 시기 이후 스타로드에 대한 업데이트가 없는 그녀가 과연 스타로드가 알던 ‘가모라’가 맞는걸까요?
사실 이런 관계에 대한 고찰은 SF의 역사와 함께 이어진 꽤 오래된 질문입니다만
이 글에서는 우주공간에서의 거리에 의한 정보의 전달을 매개로 흥미진진하게 잘 풀어냈습니다.
마지막에 친절하게 오해의 여지가 없게끔 잘 마무리된 점도 좋았네요.
개인적으로도 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덧) 도중도중 토마스의 기억의 플래시백은 아예 ‘*’ 표시 등으로 명확히 구분해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약간 여기서부터 플래시백인가 긴가민가하면서 읽게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