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가지의 소문이 있다. 한자 없이 한글로만 봤을 때엔 데칼코마니처럼 닮은 글자들. 하지만 국어사전에서 찾아봤을 땐 차이가 난다. 물론 한자가 다른 것이 특징이지만 그 것을 차치하고2 뜻만 봤을 때도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전자는 긍정과 부정의 성격을 모두 지니지만 후자에서는 긍정의 성격이 좀 더 강하게 나온다는 점인데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사람들의 말[語]로 탄생한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금서니 작가의 작품 <소문>을 통해 우리는 전자와 후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작가 코멘트에서도 작가가 밝혔듯이 이 작품은 ‘소문’이라는 주제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소문과 더불어 생각해 볼 것들이 군데군데 묻어나는 작품일 수 있다.
인사과 박 부장의 급작스런 입원 소식을 듣게 된 직원들과 회사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급기야 부인과 싸우고 자살을 기도했다는 극단적인 추측마저 나온다. 하지만 박 부장의 대사로 개업떡이 기도에 걸려 병원에 가게 됐음이 밝혀지자 근거없는 소문들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는 줄거리.
줄거리만 놓고 보면 피식 실소(失笑)를 흘릴 수도 있는 가벼운 분위기이지만 현실의 측면에선 마냥 ‘가볍게 볼 수는 없는’ 상황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부서를 이끄는 부장의 부재로 인해 부장의 업무가 차장이나 과장에게 집중되어 업무가 과중될 것이며 그로인해 인사과의 말단 직원까지 업무 과중으로 피로도가 증가하여 원활한 업무를 수행하기 힘들 것이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인사과 전 직원이 입원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갈 수도 있을 터이다! 사실 인사과의 업무가 과중되었다는 건 직원의 대사(“이사님이 하도 갈궈서 스트레스가 쌓여 그런 거야”)에서도 얼추 짐작이 가능하다. 이 건 후자의 소문(謏聞)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라고 읽히는데 회사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주인공이 윗선으로부터 시달렸다는 뜻이며 이 부분을 통해 작가는 직장 내에서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설움과 고단함을 간접적으로 표출하고 있고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 준다. 또한 직원들의 근거 없는 소문들 속에 급기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단어까지 나오게 되는 상황은 언론의 대표적 병폐인 ‘옐로 저널리즘’을 군상(群像) 속으로 녹여놓은 느낌마저 든다. 이러한 느낌이 드는 건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으나 선정적인 인간 내면의 저속한 모습을 가감없이 폭로하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결국 소문은 박 부장의 퇴원으로 사라지지만 인간 내면의 모습은 선명히 부각되며 직원들은 자신들에게도 소문이 돌 수 있을 거라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자신들 또한 타인들의 소문 속에서 극단적 최후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 이런 불안감은 실제로 우리 사회가 근거 없는 소문으로 인해 가엾은 존재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아픈 기억들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회사의 명성을 퍼뜨리기 위해(후자의 소문) 직원들의 목을 움켜쥔 채 흔들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가(전자의 소문)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거나 희극적 결말로 끝나는 현상은 비단(非但)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이보다 더 심하고 독한 일들이 많으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소문(所聞)과 소문(謏聞)의 갈림길 중 어느 곳에 서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