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의구심
이 작품은 주인공 ‘나(시현)’의 누나가 갑자기 누군가를 잊어버렸다며 괴로워하는 데서 시작한다. 실제로 나와 누나 외에 다른 이가 함께 찍힌 사진이 나타났고, 그로 인해 나와 누나는 잊어버린 그 사람을 떠올리려 애쓴다. 여기서 내용 전부를 밝힐 수 없으므로 줄거리는 이 정도로 요약한다.
작품을 읽으며 의구심이 많이 들었다. 첫 번째는 일기 형식을 차용한 것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일기에 대화 내용까지 생생하게 굳이 쓰는 편인지 좀 궁금했다. 날짜와 날씨를 써놓은 것 빼고는 완전히 소설의 형식이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일기 형식을 차용하지 않았다면 좋지 않았을까 했다. 만약 일기를 읽는 구성을 꼭 쓰고 싶었다면 대화문 부분은 빼고 일반적인 일기 형식을 빌렸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렇게만 써도 ‘누나’와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를 살릴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두 번째는 마지막 장면에 대한 의구심이다.
처음 누나의 남편이 사라졌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누나가 그토록 남편을 찾으며 괴로워하는 걸 보면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그저 기억을 잃어 혼란스러워할 뿐이다. 여기까지야 한 다리 건너 일이니 그렇다 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일기를 읽고 사라진 누나를 생각할 때의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가족이 사라졌는데, 이렇게 담백하게 생각하고 끝낸다고? 실제로 기억이 없다 해도 일기와 사진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있는데 너무 개의치 않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이토록 담백하게 전개될 수 있는 상황인 것인지 좀 많이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독자 입장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나타나는 주인공의 추측 말고는 진실에 다가갈 단서가 하나도 없다. 미스터리한 부분을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는 것도 좋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의 개연성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 하나가 사라진 것인데 파헤치려고 애쓰려 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는다는 점이 좀 의아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닫힌 결말도 아닌데 해석의 여지까지 없다는 것이 의아했다. 독자는 주인공의 추측과 상상만으로 이야기 속에서 자취를 감춘 인물과 시간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주인공 시현의 생각은 그럴듯하게 느껴질지는 몰라도 확신이 들게 하기에는 많은 것이 부족했다. 시현의 생각 말고도 현상이나 사건, 단서 등으로 이야기를 치밀하게 구조화시켰다면 독자도 좀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사실 미스터리나 추리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제대로 결말이 나지 않으면 꽤 답답해하곤 했다. 이번 작품도 그런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열린 결말도 납득할 만한 개연성이나 단서가 있다면 그렇게 기피하지는 않는데, 이 작품은 그런 부분도 찾기가 힘들었다. 갑작스러운 인물의 실종과 기억을 잃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시간의 구멍들이 미스터리함을 주는 것은 좋았지만, 그 때문에 구성의 치밀함을 놓친 것이 매우 아쉬웠다.
그러나 실종과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는 잘 살리면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을 탄생시킬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재밌는 작품들을 많이 써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