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입니다.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붓 도막 (작가: Ophie, 작품정보)
리뷰어: 탁문배, 19년 12월, 조회 52

Ars longa, Vita brevis. 아주 오랫동안 오역되어온 격언입니다. 인생은 더럽고 예술은 비싸지요. 세상은 곽철용처럼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또 예술 하면 넌, 거렁뱅이가 된다. 세상에는 가난한이라는 수식어가 학명처럼 붙어있는 직종들이 있습니다. 화가, 시인, 연극배우 기타등등, 과연 밥은 먹고 다니는지 참 궁금한 분들이 오늘도 어딘가에 있는 골방에서 눈동자를 빛내며 영혼을 불사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이라는 게 반드시, 모두 다 완전연소 하는 것도 아니지요. 스포일러 있습니다.

 


 

화자의 이웃에 살던 노인은 비록 그림을 그리지만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는 화가가 아니며, 이제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도 않습니다.

엄밀히 말해 반드시 그런 형식은 아니지만 읽다 보면 두런두런 들려오는 듯한 독백 같은 소설입니다. 어차피 화자 자신의 일도 아니고, 모두 들은 일이나 본 일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묘하게 거리를 두고 먹먹한 감정이 잘 느껴졌습니다. 약간 냉소적인 태도를 지닌 화자가 끝에 가서 뭔가 짤막한 평가를 붙이는 것도, 어딘가 간만에 보는 고전 수필 같은 느낌이라 간질간질하니 즐거웠습니다.

주제 자체는 특별히 놀랍거나 새롭지는 않습니다. 노인은 화가로서 자신의 재능이 자신의 안목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말 그대로 절필하지요. 그리고 본인이 그렸던 모든 작품들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집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약간은 묘합니다. 화가로 살려면 슬프고, 슬퍼서 살 수가 없으니 살기 위해 화가 되기를 그만 두겠다는 것입니다. 이걸 생명존중 사상이라고 보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마는.

예술가만큼 자의식과잉이 아닐 수 없고 오히려 미덕으로 치는 직종(인종?)도 드물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술가를 다룬 이야기는 싸이코 서스펜스만큼이나 막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약 자해 방화 살인 자살 기타등등. 하늘은 어찌하여 살리에리를 낳고 또 모차르트를 낳았단 말인가! 그러나 노인은 자기파괴에 몰두하는 대신 절필을 하고, 나머지를 정리한 뒤 홀연히 수명을 다 하고 죽습니다. 화자는 그 인생관이 지리멸렬하다고도 합니다마는, 글쎄요.

텔레비전 광고를 보면 뭐 아무튼 도전을 하고, 그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새하얗게 태울 때까지 부딪치라 합니다. 한마디로 열정! 뭐든 간에 그렇게 불을 지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지요. 그런데 인생은 60초짜리 광고가 아니기 때문에 보통은 잘 안 됩니다. 잘 되고 안 되고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동구청장배 사생대회 입상을 일생의 목표로 삼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아마도 없겠지요. 뭐 꼭 남의 인정을 받지 않더라도, 알량한 양심이란 게 있다 보니 나 자신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 내심 누구도 쉽게 인정하지는 않지만 우리들 중 대부분은 패배자입니다. 뭐 최선을 다한 모두가 승자입니다 같은 이야기는 관둡시다. 최선 안 다한 거 알고 있으니까. 제가 최선을 다한 결과 지금 내장지방이 이렇게 쌓인 게 아니잖습니까? 그렇게 꿈을 품고 어영부영 살다가 어떤 순간이 오면 이제는 뜬구름 같던 가능성도 그리 많이 남아있지는 않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노인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고 나면 더욱 그렇겠지요. 결국 품고 있던 이상이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 노인은 붓을 꺾습니다. 패배를 인정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노인은 패배자의 여생을 살아갔습니다. 저런, 하고 혀를 차야 할까요? 저는 오히려 그 방식이 우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특별히 허무주의자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승리는 순간입니다. 불멸의 역작이니 어쩌구 하지만 결국 누구나 제목만 알고 보지는 않는 무언가가 될 운명입니다. 꼭 예술만이 아니라 돈, 권력, 사랑 등 인생에서 무엇을 추구하든 우리는 승리의 순간에 머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굳이 애써 요절할 필요는 없겠지요. 무슨 미시마 유키오도 아니고. 어쨌든 제게 있어 꺾어버린 노인의 붓 도막은, 그런 순간의 승리조차 거머쥐지 못한 자기 한계에 대한 담담한 시인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오직 그것 만을 세상에 남겨놓았지요. 그런 퇴장에 비하면 어쨌든 내가 인정 안 했으니 아직 진 게 아니라는 태도가 오히려 구차한 게 아닐까요?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작중에서 화자는 그냥 일상을 살아가는(생각난 김에 성탄절 장식이나 할까 하는)사람이라는 점이고, 노인은 그의 이웃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것도 적당히 친한 이웃이지요. 그런 점이 예술론에 접해 자칫 마구 가라앉을 수도 있었던 이 이야기의 무게를 상당부분 덜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심각한(사실 우울증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고뇌에 쌓인 예술가의 이야기면서, 그냥 옆집에 살았던 어떤 사람의 이야기이도 한 것이지요. 이야기에 훈기를 불어넣는 요소였다고 생각합니다.

리뷰를 하며 특별히 이런저런 부분이 아쉬웠다~ 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물론 작가분의 입장에서는 그런 부분이 듣고 싶으실 수도 있겠지만, 아쉬운 점을 찾아볼 수 없다기 보다는 읽는 동안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을 어떻게든 개선하려면 무언가가 더 비장하거나 위대해져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제가 생각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작중 노인의 태도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왠지 수긍이 가는 점이 있었고 무엇보다 꺾인 붓의 이미지가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슬슬 한겨울이 오는지 날은 춥고, 많은 것이 저물어가는 계절이라 더욱 그랬나 봅니다. 쓸쓸하네요. 내년은 다르겠지요.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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