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을 지향한다는 것 공모(비평) 공모채택

대상작품: 이름없는 영화와 고립의 숲 (작가: 코코아드림, 작품정보)
리뷰어: 탁문배, 19년 11월, 조회 42

창작의 재료로 글자를 택하면 이점이 많습니다. 영화처럼 배우나 배경 문제로 머리 아플 일은 당연히 없고, 미술처럼 비싼 물감이나 재료를 구하러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키보드, 그나마 여의치 않으면 종이랑 펜만 있어도 어지간한 건 다 만들 수 있습니다. 시간, 공간, 자원의 제약 없이 역사 다큐멘터리에서 스페이스오페라까지 내키는 대로 지어내면 됩니다. 물론 B급영화를 만들 수도 있지요. 다만 이걸 재생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오로지 독자의 두뇌 뿐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스포일러가 좀 있을 수 있습니다.

 


 

벨기에에서 살인 누명을 썼을 수도 있고 안 썼을 수도 있는 주인공은 프랑스로 밀입국하여 고어 영화를 좋아하는 가빈과 함께 죽은 호수일 수도 있고 검은 호수일 수도 있는 집 근처 호수에서 경찰관을 살해한 뒤 해필리 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에버에프터하게 살아갑니다.

B급 영화 이야기를 하자면, 뭘 지칭하는지 어느 정도 짐작은 되나 실상 B급 영화가 아닌 영화들이 다 A급 영화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되므로 어디까지나 편의적인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또 같은 B급 영화라도 그 수준은 천차만별이구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영화에는 아카데미급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그 영혼에는 여전히 B급 갬성이 있다고 있다고 하지요. 재미있는 점은 당연히 B급 영화보다 B급 소설이 역사상 먼저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타란티노 감독의 출세작은 제목 자체가 싸구려 소설입죠. 그런데 또 짚어보면 장르소설 자체가 순수문학(?)의 입장에서는 이미 B급이 됩니다. 그러나 더 기어올라가면 소설 자체도 시에 비하면 천것들이나 읽는 이야기책인 B급이 되겠지요.

중언부언하고 있지만 요는 무언가를 B급으로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거기에 담긴 정서지 매체나 소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꿈은 높은데 개판인 현실과 타협하느라 심히 왜곡된 작품들도 B급 영화가 되긴 합니다. 그러나 소설을 쓰는데 B급 영화의 열악한 제작환경을 가져올 수는 없겠지요. 이면지에다 모나미펜으로 글을 쓴다고 해서 문체가 쌈마이해지지는 않으니까요. 대신 이걸 누가 좋아할까? 이게 돈이 되겠냐? 라는 질문에 응 내가 좋아함 하면서 중지를 세우는 작품이 B급의 정서를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방면에 있어서는 이미 투명드래곤이 한 획을 그은 바가 있습니다. 반투명드래곤도 있던데 불투명드래곤은 언제 나오는지 모르겠군요.

그런 의미에서 B급 영화에 심취해서 집필하신 본 작품의 독후감은 상당히 당혹스럽습니다. 의도적으로 퇴고를 거치지 않으셨기 때문에 세부적인 문제는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의도한 효과가 무엇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는 굳이 예전의 후시녹음 방식을 택하기도 하고,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화면 규격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소설도 일부러 옛스러운 문체를 차용하고, 없던 단어를 만들어서 쓰기도 합니다. 독자에게 의도한 효과를 주기 위해 그럴 필요가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고, 미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퇴고를 거치지 않은 본 작품에서는 의도적인 난잡함이 아니라 순수한 혼란이 느껴졌습니다.

순수하게 난해한, 혹은 해체적인? 가방끈이 짧아서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그런 의도로 집필된 작품도 물론 있습니다. 심지어 교과서에서도 본 것 같구요. 그러나 본 작품은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또 그런 방식으로 충격적이지는 않습니다. 또한 형식상의 파격을 즐기자면 기본적으로 파격적인 분위기가 깔려 있어야 할 텐데, 서술 자체는 평범한 1인칭 시점이라 그런지 안타깝게도 함께 정줄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이 작품이 다 때리고 부수고 죽이는 아주 말초적인 재미를 추구하고 있냐면, 인물의 성향을 보아 어쩐지 나중에 가면 고어하고 폭력적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으나 의외로 폭력의 강도가 낮았습니다. 유일한 직접적인 살인 장면도 의외로 절제된 표현으로 넘어갔지요. 차라리 마지막에 주인공과 가빈이 지하실에서 전기톱을 꺼내와서 경찰들과 말 그대로 Slaughterhouse를 찍었으면 뭔가 해소되었을 법도 한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더군요전반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읽는 사람이 보기에 어떤 작품을 쓰고 싶으셨던 것인지에 대한 고려가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입니다.

누구의 말과 달리, 아무리 재료가 싸고 맛이 단순해도 떡볶이는 맛있는 음식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맛있게 만들려고 해야 맛이 있습니다. B급의 무언가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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