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급했다시피 퀸시는 저의 오너캐(owner character)입니다.
“이상 없습니다”의 수리기사도, 이 소설의 퀸시도, 전부 모든 것을 합리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고 기록하려고 하는 인물들입니다. 뭐든 논리적인 설명이 가능할 거라 믿는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그 논리를 박살내는 것을 목격했을 때,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것을 마주했을 때, 그들의 행동은 완전히 정지해버립니다. 퀸시의 마지막 “흥미롭더군”이라는 말과 아주 작은 미소도, 실은 그 정지의 순간에서 나온 것입니다. 데이터 바깥의 ‘경이로운’ 것을 마주한 사람이 평생 처음으로 보이는 반응. 경이로움의 가장 억압된 형태.
현실의 저는 이들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당연하겠죠. 제가 쓴 소설이니까요.
다만 저는 그 과정이 반대입니다.
어릴 때부터 이상한 것들, 과학이나 논리로는 설명 안 되는 것들을 자주 보고 듣고 경험했습니다. 항상 무서웠어요. 그래서 더더욱 이학 분야, 과학 분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전공도 그렇게 택했고요. ‘오컬트 하는 과학도, 과학하는 마녀’ 라는 소개글은 그렇게 나온겁니다.
다행히(?) 경험한 것들 중 몇 가지는 과학으로 설명이 가능했습니다. 확률적으로느으으은… 아직 완전히 납득 못할 여러 가지가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론상 설명 가능한 것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그 사이에 과학도 많이 발전했죠.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전공을 물리학으로 택하고 나서는, 오히려 과학 그 자체에서도 그 경이로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양상은 달랐지만요).
어떻게 물질이 다른 딱딱한 물질의 표면에 아무 상처도 내지 않고 통과하지? 입자들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고? 근데 어떻게 이동해? 어떻게 광속에 가까워지면 시공간이 뒤틀리지? 왜? 왜? 대체 왜??????
어릴 때 나를 무섭게 했던 것들을 설명하려고 과학 쪽으로 걸어왔더니, 과학 안에도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아니 설명은 되는데 도무지 납득이 안 되는 것들이 가득했던거죠. 양자역학도, 상대성이론도, 그 자체로 충분히 이상하고 충분히 무서웠고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무서웠던 것을 이해하려고 걸어온 길에서, 이해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니까 퀸시나 수리기사와 제가 닮은 것은 표면뿐입니다. 그들은 논리가 전부인 세계에서 출발해 논리 밖의 것을 만나 정지하지만, 저는 논리 밖의 것에서 출발해 그것을 어떻게든 나 스스로에게 설명해보려고 과학 쪽으로 걸어온 사람입니다. 시작점이 다르니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보여도 향하는 방향이 다릅니다.
때문에, 제 표면상의 모습이 퀸시나 수리기사와 닮아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제 내부에서는 그런 ‘경이로움’을 놓지 못합니다. “우와…….” “세상에……”
‘대체 그게 뭐였을까.’ ‘대체 어떻게 그렇게 된 걸까.’ 설명이 되면 된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그 질문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 과학자가 되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경이로움’을 놓지 못하기에 과학자가 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논리가 전부라고 믿어서가 아니라, 논리 바깥에 있는 것이 너무 궁금해서. 무서웠던 것을 이해하고 싶어서(그래서 자꾸 호러 소설로 손이 가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신’이 대체 무엇인지가 너무 궁금해서. 너무너무너무나 궁금해서. 그래서 오히려 과학자인데 상징이나 신화에 관심이 많고 재밌어 하는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퀸시를 쓰면서 저는 제 안의 한쪽 면을 꺼내 극단까지 밀어본 셈입니다. 만약 그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을 완전히 닫아버린다면 어떤 사람이 될까. 감정을 판단에서 완전히 분리하고, 모든 것을 수치로 환원하고, 설명되지 않는 것을 “데이터가 더 필요하다”는 말로 미뤄둔다면.
그 끝에 있는 사람이 퀸시였습니다.
결국 이 소설에서 제가 썼던 것은 릭과 엘린의 영웅서사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퀸시라는 그림자 원형을 통해 논리와 경이로움이 같은 사람 안에서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어찌보면 릭과 엘린은, 퀸시의 세계에서는 너무나 이상하고 너무나 무서운 것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죽었다 부활하고, 맨손으로 벽을 뚫고, 직접 보지 않고도 구조를 파악하는-을 아무렇지 않게 일으키니까요. 그래서 어떻게든 그들을 데이터화하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해놓고 싶었던 건지도요(원래 모티프가 된 꿈 내용도 신급 영역의 이야기긴 했죠^^;;).
아무튼 허접한 분석글 포함해서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소설 또한 약간 비틀린 영웅서사긴 하지만, 언젠가는 또 이런 영웅서사를 써보고 싶네요.
지하세계에서 올라오는 영웅 이야기는 언제나 매력적이니까요.
ps. 퀸시를 통해서 릭과 엘린의 신화적 역할도 분석을 넣긴 했지만… 아예 얘들만 따로 분석해주실 분 있으면… 그때는 리뷰작성 열어드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