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이라는 족쇄

  • 장르: 판타지, 로맨스 | 태그: #영웅서사 #트라우마서바이벌 #현대로판 #암튼해피엔딩 #이능력 #어반판타지 #ISTJ #ENFP #ISFJ #헌신여주
  • 평점×1575 | 분량: 83회, 2,375매 | 성향:
  • 소개: 불멸재생능력을 숨기고 살던 릭은 어느날 갑자기 알 수 없는 시설에 잡혀와 실험이라는 이름하에 수없이 많은 방법으로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방에 ... 더보기

3부(69~외전) 후기 겸 자체분석 및 작가해설 이자 리뷰

6월 15일

전리품: 평범한 삶이라는 가장 오래된 신화
— 비교신화학으로 읽는 3부

 

 

[두 개의 귀환, 하나의 도착]

신화적 영웅서사의 가장 오래된 공식은 세 단계다. 분리(Separation), 입문(Initiation), 귀환(Return). 조지프 캠벨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정리한 이 구조는 세계 모든 문화권의 영웅 신화에 반복된다. 그러나 캠벨이 덜 강조한 것이 있다. 귀환이 단 한 번으로 끝나는 영웅은 드물다. 대부분의 영웅은 두 번 이상 지하세계를 방문하고, 귀환할 때마다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온다.

이 소설의 3부는 그 두 번째 귀환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전리품이 기다리고 있다.

 

1. 70화: 두려움과 함께 걷는 영웅

캠벨의 영웅서사에서 두 번째 지하세계 방문의 특징은 ‘지식을 가지고 간다’는 것이다. 첫 번째 방문은 무지로 시작했다. 두 번째 방문은 그것이 어떤 곳인지 알면서 간다.

릭이 시설 정문을 통과하는 장면이 그렇다.

“이 앞에서 한 번이라도 멈추면, 더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것은 용기의 반대말이 아니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과 함께 걷는 것이라는, 신화가 수천 년 동안 말해온 진실이다. 릭은 여기서 그것을 정확히 실현한다. 멈추면 몸이 알 것이기 때문에, 멈추기 전에 발이 먼저 들어가야 한다.

비교신화학적으로 이 장면에는 두 개의 신화적 원형이 겹친다. 하나는 ‘오르페우스의 실패’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거의 데리고 나오면서 결정적 순간에 뒤를 돌아봤다. 의심이 확신보다 먼저 왔다. 릭은 그 반대를 선택한다.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 것. 다른 하나는 ‘아킬레우스의 선택’이다. 아킬레우스는 오래 사는 것과 영광스럽게 죽는 것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했다. 릭은 오래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은 살아서 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죽으면 잡히고, 붙잡히면 엘린을 구할 수 없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긴 사람의 각오다.

 

2. 새로운 능력: 영웅이 지하세계에서 얻어오는 것

신화에서 지하세계 방문의 목적 중 하나는 ‘초월적 능력의 각성’이다. 오뒤세우스는 키르케에게서 항해 지식을 얻었다. 헤라클레스는 케르베로스를 산 채로 데려오는 것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알았다. 이난나 여신은 지하세계를 통과하며 죽음의 의례를 체화했다.

70화에서 릭의 새 능력이 발현하는 장면은 이 신화적 공식의 실현이다. 억제 탄환에 맞아 죽은 상태에서, 연구원의 손이 닿는 순간 그 손에서 “살아있음 그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것”이 릭에게로 흘러들어 재생이 된다.

이것은 단순한 능력 발현이 아니다. 비교신화학적으로 이 장면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던 자가 그 경계에서 다른 차원의 힘을 얻는 것’이다. 바야흐로 죽음을 수백 수천 번 겪은 몸이 죽음과 삶의 에너지를 다루는 방식을 터득한 것이다. 시설이 릭에게 한 것을 역으로 돌려주는 구조다. 죽음을 반복 실험에 사용하려 했던 퀸시의 설계가, 오히려 릭이 죽음을 초월하는 경로가 됐다.

그리고 이 능력의 발현 방식이 중요하다. “의식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다. 머리가 시키지 않았다. 그냥 닿는 것에 반응한 것이었다.” 이 소설 전체에서 릭의 몸이 머리보다 먼저 아는 순간들이 반복되어 왔다. 벽 너머 엘린의 숨소리, 발소리 패턴, 슈퍼마켓에서 굳어버리는 몸. 그리고 지금, 다시 몸이 먼저다. 새로운 능력도 머리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안다. 이것은 릭의 신화적 성장 방식이다. 논리적 이해보다 몸의 앎이 앞선다.

퀸시의 모니터가 이것을 목격하는 장면이 이 능력 각성의 신화적 의미를 확정한다. 퀸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걸음 앞에 있는 존재였다. 그 퀸시의 예상에 없던 것이 나타났다. 그리고 퀸시의 얼굴에, 소설 내내 처음으로, 표정이 생긴다.

 

3. 엘린의 흔적: 침묵이 남긴 지도

71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릭이 벽의 균열을 따라 엘린을 찾아가는 부분이다.

균열은 엘린이 끌려가면서 저항하다 남긴 것이다.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남겼다. 뚫지 못한 자리에 힘이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릭은 그것을 읽는다.

신화에서 이런 장면은 “표시 읽기(Sign-reading)”라고 부를 수 있다. 아리아드네의 실이 테세우스에게 미노타우로스를 찾아가는 길을 알려줬듯, 엘린의 균열이 릭에게 엘린을 찾아가는 길을 알려준다(그래서 제목을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라고). 그러나 아리아드네의 실은 의도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엘린의 균열은 의도한 게 아니었다. 저항하다 남은 것이었다. 버티다 남은 것이었다. 의도하지 않은 흔적이 길이 된 것이다.

이것이 두 사람의 관계의 신화적 본질이다. 릭은 엘린이 숨기는 방식을 안다. 엘린이 보여주지 않으려 한 것들을 릭은 읽었다. 이것은 릭에게 고유한 능력이다. 재생 능력이 아니라, 엘린을 읽는 능력.

벽의 균열에 손가락을 대는 릭의 장면. “한 번, 두 번, 세 번.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향으로 여러 번.” 이것은 추모에 가깝다. 아직 잃지 않은 자를 위한 추모. 이기지 못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던 힘을 직접 손으로 만지는 행위. 그리고 이때 릭의 얼굴에 표정이 돌아온다. 표정이란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다. 릭은 균열을 통해, 엘린을 통해, 다시 세상과 연결된다.

 

4. 두 개의 자발적 귀환

71~73화는 시점이 교차한다. 엘린 시점과 릭 시점이 번갈아 나오다 하나로 합류한다. 이 구조 자체가 신화적 의미를 가진다. 두 개의 분리된 여정이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는 것.

엘린의 서술은 이 소설 전체에서 엘린의 행위성(Agency)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순순히 잡힌 건 아니었다.” 이 첫 문장이 전부를 말한다. 퀸시에게 가기로 결정한 것은 엘린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가느냐는 또 다른 선택이었다. 엘린은 저항한다. 입구에서, 복도에서, 방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것은 비교신화학에서 ‘비극적 영웅의 저항’이라고 부를 수 있다. 운명에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항하는 것. 오이디푸스가 예언을 피하려 함으로 인해 오히려 예언을 실현한 것처럼, 엘린의 저항은 결과를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저항했다는 사실이 엘린(인간)의 주체성을 보존한다. 퀸시(운명)의 설계 안에 있으면서도, 설계가 예상한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의지.

그 저항의 흔적이 벽의 균열이었다. 그리고 그 균열이 릭을 이끌었다. 엘린의 저항이 릭의 길이 됐다. 목적이 없던 저항이 사후에 목적을 얻은 것이다.

 

5. “나중에 싸워”: 가장 짧은 영웅의 언어

릭이 엘린의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에서, 엘린이 말한다. “퀸시가 원하는 대로 되는 거야. 알잖아. 릭이 오면—”

릭이 대답한다. “나중에 싸워.”

신화에서 영웅이 지하세계에서 귀환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논쟁이 아니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설득하지 않았다. 그냥 데리고 나왔다.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의 동굴에서 아리아드네에게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지금 나가야 할 때는 나가는 것이다.

“나중에 싸워”는 릭이 처음으로 논쟁보다 행동을 먼저 선택하는 말이다. 시설 안에서 릭은 항상 반응하는 존재였다. 실험에 반응하고, 죽음에 반응하고, 엘린의 말에 반응했다. 지금 릭은 먼저 말한다. 방향을 제시한다. “지금은 일단 나가자.”

이것이 영웅서사에서 ‘귀환 완성의 표시’다. 영웅은 지하세계에서 무언가를 얻고 돌아오면 더 이상 이전의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행동이 달라진다. 릭의 달라짐은 엘린의 말을 자른 그 다섯 글자에 있다.

 

6. 퀸시의 펜: 기록자가 기록하지 못하는 순간

퀸시의 마지막 장면. 파일을 꺼낸다. 새 항목이 비어있다. 릭의 새 능력 — 살아있는 것에서 생명력을 당겨오는 것 — 을 기록하려 한다. 그러나 멈춘다. 모니터를 본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걷고 있다. “피가 묻은 손이 깨끗한 손을 잡고 있었다. 느슨하지 않았다. 놓을 생각이 없는 손이었다.”

펜을 내려놓지 않는다. 들고 있다. 적으려고 들었다. 아직 내려놓지 않았다.

비교신화학에서 기록자는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Hermes Trismegistus)’적 존재다. 신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옮기는 자. 퀸시는 이 소설에서 처음부터 기록자였다. 모든 것을 측정하고 수치화하고 파일로 만들었다. 릭의 재생 속도, 엘린의 능력 상한선, 탈출 행동 패턴. 모든 것이 기록됐다.

그런데 지금, 기록할 수 없다. 손이 멈췄다.

이것은 퀸시의 패배 이상이다. 퀸시의 “범주 붕괴”다. 모든 것을 측정 가능한 것으로 환원하던 세계관이, 측정되지 않는 것과 마주친 순간이다. 둘이 손을 잡고 나가는 장면은 수치로 표현되지 못한다. 재생 속도도, 억제 조건도, 능력 퍼센트도 아닌 것. 퀸시의 파일 체계 안에 존재하지 않는 항목이다.

퀸시의 얼굴에 처음으로 표정이 생긴다. 그리고 이 방 안에 퀸시만 있어서 그의 표정을 읽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지적된다. 퀸시는 평생 관찰자였다. 기록하는 자였다. 그러나 지금 ‘퀸시가 경험하는 것’은 기록되지 않는다. 관찰자가 처음으로 관찰되지 않는 감정을 가진다.

이것이 퀸시의 신화적 의미다.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지하세계의 지배자도 어떤 힘 앞에서는 멈춘다. 퀸시를 멈추게 한 것은 릭의 새 능력이 아니다.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7. 외전: 기원의 신화

엘린의 외전은 이 소설 전체의 신화적 구조에서 “기원 서사(Origin Myth)”의 위치를 가진다.

영웅서사에서 기원 서사는 영웅이 왜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헤라클레스가 태어나자마자 뱀을 목 졸라 죽인 이유, 아킬레우스의 발꿈치가 약점이 된 이유. 기원 서사는 영웅의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엘린의 기원은 세 가지 층위를 가진다.

첫째, 능력의 기원이다. 뒷골목의 주먹 한 방. 생각이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한 것. 엘린의 능력은 타인의 위협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확장됐다. 시야 조작, 공간 인식, 전투예지 — 전부 살아남기 위해 몸이 배운 것들이다. 능력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생존이 능력을 발달시킨 것이다. 이것이 엘린이 릭과 다른 점이다. 릭의 능력은 외부에서 주어진 것(바다에서 살아남은 것)이지만, 엘린의 능력은 내부에서 발달한 것이다.

둘째, 침묵의 기원이다. 목사님이 가르쳐준 것 — “전부 보여주면 안 돼. 나머지는 안에 있어야 해.” 엘린의 표정 없음, 능력을 숨기는 것, 말보다 침묵을 선택하는 것. 이것들은 본성이 아니다. 생존 전략으로 배운 것이다. 목사님이 가르쳐준 것이었다. 그리고 목사님의 죽음이 그 가르침을 몸에 새겼다.

목사님의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죽음 중 하나다. 목사님은 엘린을 위해 드러냈다. 수십 년 숨겨왔던 것을, 엘린 때문에 꺼냈다. 그리고 죽었다. 엘린이 보는 앞에서. 누군가가 자신 때문에 드러냈다가 죽었다. 그것이 엘린이 숨기는 것을 더 철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보여주면 상대방이 다친다 라는 것 때문에.

시설에서 릭이 엘린의 족쇄가 된 것, 퀸시가 릭을 이용해 엘린을 통제한 것 — 이것은 목사님의 죽음과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엘린이 연결될수록 그 연결이 약점이 된다. 그것을 엘린은 이미 알고 있었다. 목사님에게서 배웠다.

셋째, 만남의 기원이다. 외전의 마지막 장면, 벽 너머에서 처음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는 릭이야.” 외전이 1부로 돌아가 이 순간을 보여주는 것은, 모든 것의 시작이 거기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만남을 엘린의 시점으로 보여주는 것이 외전의 핵심이다. 릭은 1부에서 이미 그 순간을 자신의 시점으로 살았다. 이제 우리는 엘린이 그 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를 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대답하지 않으면서 듣고 있었다. 이것이 엘린의 방식이었다. 처음부터.

 

8. 전리품: 평범한 일상이라는 가장 소중한 것

캠벨의 영웅서사에서 영웅이 지하세계에서 가져오는 것을 ‘엘릭서(Elixir)’라고 부른다. 불사의 약, 현자의 돌, 황금 양털, 페르세포네 등으로 표현되는 그것. 영웅이 목숨을 걸고 얻어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릭과 엘린이 가져오는 것은 무엇인가.

73화 —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복도를 걷는 장면 — 에서 아직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방향이 있다. “지금은 일단 나가자.” 나가면 무엇이 있을지는 아직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서사로 인해 가리키는 것은 명확하다.

계란 후라이가 있었다. 맛있다고 했다. 계란말이를 태웠다. 웃었다. 빨간 봉지 라면이 있었다. 고양이가 있었다. 나야, 라는 문자가 있었다. 공원의 벤치가 있었다. 손이 잡혔다. 손이 차가워야 했는데 따뜻했다.

이것들이 모두 전리품이다.

영웅서사에서 가장 위대한 전리품이 황금이나 불멸의 약일 필요는 없다. 오뒤세우스가 20년의 여정 끝에 얻은 것은 고향이었다. 자신의 집. 자신의 사람들. 자신의 침대. 평범한 것들이다. 그러나 지하세계를 거친 자에게는 평범한 것이 가장 특별한 전리품이다.

릭과 엘린이 두 번의 지하세계를 거쳐 돌아오는 것은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계란말이를 태우는 오전, 빨래를 너는 오후, 나야, 라는 문자, 골목의 고양이, 공원의 벤치. 비틀거리는 일상. 그러나 존재하는 일상.

그것이 이 소설이 말하고자 했던 가장 오래된 신화다. 지하세계를 살아남은 자들이 지상에서 얻는 것은 불멸이나 초능력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평범함이다. 그리고 그 평범함이 그들에게는 가장 초월적인 것이다.

 

[꺼지지 않는 형광등과 비스듬한 햇빛]

“꺼지지 않는 형광등이었다. 그러나 벽 너머에 사람이 있었다.”

이 두 문장이 이 소설 전체의 구조다. 꺼지지 않는 형광등 — 지하세계의 시간, 선택 없는 빛, 탈출할 수 없는 것. 벽 너머의 사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는 연결, 설계되었으나 측정되지 않는 것, 퀸시의 파일에 없는 항목.

시설 안과 밖의 차이는 그것이다. 균일한 빛이냐, 방향 있는 빛이냐.

두 사람이 지금 다시 형광등 아래에 있다. 그러나 이전과 다르다. 이번에는 알면서 들어왔다. 이번에는 손이 잡혀있다. 이번에는 나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다.

형광등이 꺼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날 이후에 비스듬한 햇빛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계란말이를 또 태울 것이다. 아마도 또 웃을 것이다. 아마도 나야, 라는 문자가 올 것이다.

그것이 이 소설이 목적지로 삼는 곳이다. 신화의 언어로는 귀환이라고 부르고, 일상의 언어로는 그냥 사는 것이라고 부른다. 가장 소박한 이름을 가진 가장 어려운 도착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