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ISTJ가 악당이 된다면
* 에… 일단… 왤케 민망한 자가분석을 하고 있냐면…
저도 제 머릿속에 뭐가 있는지 보고 싶어서요…?
그리고 신화적인 서사가 어떻게 자연스럽게 (….???) 여기저기에 동일하게 녹아들어 있는지 분석을 좀 해 두면… 여튼 언젠간 쓰게 되더라구요. ㅇㅅㅇ;
그래서…
일단 퀸시는 제 오너캐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같은 부분 분석을 다양한 각도로 할 겁니다. hubris(휴브리스), shadow(그림자), Threshold Guardian(문턱의 수호자)로 우선 분석하고나서 다른 캐릭터들과 비교분석까지… 아 물론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로…
한마디로 앞으로도 이딴 게시글로 며칠동안 한 10개 이상의 알림이 갈 거라는 뜻…
‘이딴 알림 원치 않아!’ 하면 구독 취소 하셔도… 괜찮습니다 ㅠㅠ 저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거라니까요…
——-
[오해받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자]
퀸시는 사이코패스가 아닙니다. 악의도 없습니다. 그저 극단적인 ISTJ 과학자의 전형일 뿐이죠.
ISTJ는 가장 오해받는 유형 중 하나입니다. 감정이 없어 보인다. 차갑다. 이기적이다. 인간성이 없다. 이런 평들이 있죠.
그러나 ISTJ를 오래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압니다. 그들의 진심은 말이 아니라 행동에 있다는 것을. 그들이 관심을 쏟는 것에는 전부를 준다는 것을. 그 전부가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표현될 뿐이라는 것을.
퀸시는 그 극단을 표현한 캐릭터입니다.
ISTJ 과학자가 자신의 방식대로 “관심을 표현”하면 어떻게 보이는가, 퀸시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1. ISTJ의 관심: 사람이 아니라 대상
ISTJ는 사람에 대한 포괄적 관심이 크지 않습니다. 군중에게 친절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따뜻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관심 갖는 대상에게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연구 주제든, 자신의 전부를 줍니다.
퀸시에게 릭과 엘린은 그 대상입니다.
릭은 세 번째 불멸 재생 능력자입니다. 엘린은 측정되지 않은 능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나 실험체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면 ISTJ는 그것을 완전히 파악하고 싶어합니다. 수치가 이해가 안 되면 더 많은 수치를 모읍니다. 행동이 예측을 벗어나면 더 오래 관찰합니다. 완전히 몰두해서(,,,).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지막에 퀸시가 말합니다. “처음부터였어.” 벽의 두께, 교대 시간의 방식, 두 사람의 배치. 이것이 얼마나 정밀하고 지대한 관심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퀸시는 두 사람 각각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를 설계합니다. 실험체 하나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두 실험체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관찰하기로 한 것이죠. 그 설계의 정밀함 자체가 역설적으로 관심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ISTJ는 관심이 없는 대상에게는 그만큼 공을 들이지 않습니다. 벽 두께를 처음부터 계산해서 제작하고, 교대 시간을 고려하고. 퀸시가 그것들을 했다는 것은 관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매우, 매우매우 지대한 관심이.
…아 물론 실험체로서요. 과학자니까요.
2. “잘 달래둬”: 가장 오해받은 한마디
1부에서 퀸시가 한 말. “잘 달래둬.”
이것이 소설 전체에서 퀸시의 비인간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문장으로 읽히게 됩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감정을 관리 대상으로 본다. 차갑다. 뭐 그런것들이죠.
그러나 ISTJ 관점에서 다시 읽으면 다른 것이 보이게 됩니다.
“잘 달래둬”는 ‘방치하지 말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ISTJ 관리자가 팀원에게 하는 말.
“그 사람이 무너지지 않도록 신경 써. 감정적 소진이 오지 않도록. 최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물론 그것이 실험체로서의 최적 상태를 위한 것이지 인간의 존엄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한 마디 안에 이미 퀸시의 접근 방식이 있죠. 방치가 아니라 관리. 무관심이 아니라 관찰.
ISTJ가 아끼는 대상에게 하는 방식이 이러합니다. 직접 감정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원래 서툴고 둔하니까요. 그러나 그 대상의 상태를 계속 확인하고, 무너지지 않도록 구조를 만들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줍니다. 말로 하지 않고 그냥 해줍니다. 알아서 잘 봐뒀다가.
관심이 없었으면 처음부터 엘린이 제대로 능력치를 보여주지 않았을 때 ‘폐기’하고 다른 실험체를 구했을 겁니다.
3. 탈출을 막지 않은 것: 가장 큰 오해
1부 마지막에 릭과 엘린이 탈출합니다. 퀸시가 막지 않습니다. 엘린은 이것을 오래 의심합니다.
“막지 않은 게 아니었을 수 있었다. 놓아준 게 아니었다. 풀어놓은 것이었다. 방목이었다.”
엘린의 독해는 맞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한 해석은 한 층위만 보고 있습니다.
퀸시가 탈출을 허락한 것에는 실험적 목적이 있었습니다. 시설 밖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연결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확인하는 것. 그것이 일차적 이유였죠.
그러나 ISTJ 과학자로서의 퀸시를 생각하면 더 있습니다.
퀸시는 엘린의 능력을 4년 동안 관찰했습니다. 처음 잡아왔을 때부터. 그리고 퀸시는 엘린이 30%만 보여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더 있다는 것을.” 나머지 70%가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을.
ISTJ 과학자에게 이것은 미완성 데이터입니다. 측정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 그것을 어떻게해야 꺼낼 수 있는가.
강제로는 안 된다는 것을 퀸시는 당연히 압니다. 처음에는 그랬겠죠. “얘가 분명히 처음 데려왔을 땐 잡아가두기도 힘들 정도로 팔팔했는데 왜 이러지…? ㅇㅅㅇ (갑자기 외로워서 이러나?)”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2)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실제 상황을 만들어줘야죠. 목숨이 걸린 상황. 지킬 것이 생긴 상황. 실험실이 아닌 실전. 그것이 나머지 70%를 꺼낼 조건이 됩니다.
탈출을 허락한 것은 방목이 맞습니다. 동시에, 더 나은 실험 환경으로의 이동이었습니다. 시설이라는 통제된 환경에서 볼 수 없는 것을, 자유라는 환경에서는 볼 수 있으니까요. ISTJ 과학자가 실험 환경설계를 바꾼 겁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릭을 위협함으로써 엘린은 탈출 의지를 갖게 됐고, 탈출 방법을 익혔고, 시설 구조를 다시 파악하는 능력을 갖게 됐습니다. 그것들이 마지막에 70%로 나왔습니다. 퀸시의 설계가 맞았습니다. 방향에서는.
그러나 퀸시가 계산하지 못한 것은, 그 70%가 자신을 향할 것이라는 거였습니다… 훌쩍.
(괜찮아요 실험하다보면 전갈한테 쏘이기도 하고 개가 물기도 하고 뭐가 폭발해서 즉사하기도 하고 그런거죠)
4. 오래 관리한 것: 애정의 증거
퀸시가 릭과 엘린에게 실험체로서의 애정조차 없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관리를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특히 엘린.
ISTJ는 관심 없는 것에 에너지를 쓰지 않습니다. 비효율을 극도로 싫어합니다(조수가 ‘알겠습니다’ 라는 말도 거의 안하는 이유). 가치 없다고 판단한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퀸시가 엘린을 4년 동안, 릭을 2년동안, 거기다 탈출 후에도 관리했다는 것은, 그들이 퀸시에게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이었다는 말입니다.
일반 능력자 실험체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겁니다. 데이터를 뽑고, 기록하고, 더 이상 유용하지 않으면 다른 방향으로 넘겼을 겁니다. 그런데 릭과 엘린은 달랐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릭은 세 번째 불멸 재생 능력자였고(심지어 반복되면 자체진화형으로 점점 회복이 빨라지고-개 신기해!!), 엘린은 30%의 천장만 보여주는 능력자였습니다.
이 두 사람이 만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퀸시는 그게 너무 알고 싶었습니다. ISTJ 과학자가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연구 주제를 만났을 때의 반응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것에 전부를 겁니다.
특히… 4년 내내 30퍼만 보여주는 엘린은 퀸시에게 있어서 최고로 아끼는 연구 주제였습니다. 근데 얘가 능력치를 발휘하지 않으니 연구가 막혀버렸죠. 그 와중에 릭이라는 실험체를 발견합니다. 어? 이 둘을 같이 두면 어떻게 될까? (핵궁금 호기심발동) 그리고 그 예상은 성공합니다. 엘린이 30퍼 이상을 보여주고 탈출도 합니다.
퀸시는 스스로 돌아온 엘린이 저항하는 내내 문 너머에서 기다립니다. 소리도 표정도 보이지 않고. 이 기다림이 관심의 방식입니다(,,,). ISTJ 과학자는 기다립니다. 대상이 어디까지 가는지 볼 때까지. 방해하지 않습니다. 다 관찰하고 싶어서.
그리고 “기다려”라고 말합니다. 뭘 기다리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엘린은 알 수 있었죠. 퀸시는 항상 설명하지 않는 방식으로 가장 많은 것을 말하니까요. 이것이 ISTJ의 소통 방식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전달한다.’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전달되니까.
5. 펜을 내려놓지 못한 것: ISTJ의 균열
마지막의 사무실 장면. 파일을 엽니다. 뭔가 적으려 하다가 멈춥니다.
ISTJ에게 기록은 의무나 다름없습니다(네, ADHD인 제가 그나마 정상처럼 살아올 수 있던 이유입니다…). 관찰한 것을 기록하고 측정한 것을 그래프와 파일로 만듭니다. 그것이 자신의 존재 방식이니까요. 그런데 지금, 기록할 수 없습니다. 적당한 항목도 분류도 없습니다. 피가 묻은 손이 깨끗한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걸, 타인의 생명력을 흡수해서 회복하는 걸 대체 어디에 넣을까요.
이것이 ISTJ의 가장 깊은 균열입니다. 세계가 자신의 분류 체계 안에 들어와야 하는데 들어오지 않는 것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을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기록할 수 없는 불가해성 사이에서 퀸시가 처음으로 정지합니다.
그리고 그 정지의 순간에, 처음으로 표정이 생깁니다. “초조함인지. 흥미로움인지. 패색인지. 아니면 그 세 가지가 동시에 있는 것인지. 퀸시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것일 수 있었다.”
ISTJ가 자신의 감정을 모른다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ISTJ는 외부 세계를 잘 읽지만 자신의 내면 감정에는 상당히 둔합니다. 억압되었거나 없는게 아니라 그냥 낯선 것입니다. 오래 사용하지 않아서 언어가 없는 거죠.
퀸시가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모른다는 것이, 퀸시가 평생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예 제 얘깁니다)
6. “흥미롭더군”: ISTJ의 마지막 진심
퀸시의 마지막. 쓰러지면서 릭을 봅니다. “흥미롭더군.” 아주 작은 미소.
이것이 정지의 끝에서 나온 것입니다. 데이터 바깥의 경이로운 것을 마주한 사람이 처음으로 보이는 반응.
그러나 ISTJ 관점에서 이것은 더 구체적인 프로세스입니다.
ISTJ가 평생 관심을 쏟은 연구 대상이 자신의 예측을 처음으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그것도 자신을 향해서. ISTJ는 예측이 맞을 때 만족을 느끼지만, 예측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마주했을 때, 심지어 그것이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할 때 더 강한 무언가를 느낍니다.
바로 “경이로움”.
“흥미롭더군”은 ISTJ로서는 최상의 극찬입니다. 릭이 데이터에 없던 것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대한. 자신의 파일을 벗어났다는 것에 대한. 자신의 체계를 초과했다는 것에 대한.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죽음을 초래했는데도 흥미롭다고 합니다. 이것이 ISTJ 과학자의 가장 순수한 형태입니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대상이 예측을 벗어났다는 것을, 위협이 아니라 새로운 데이터와 발견으로 받아들이는 것. 죽어가면서도 그것이 흥미롭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주 작은 미소와 함께.
그것이 퀸시가 평생 처음으로 보인 비계획적 감정 표현입니다. 기록되지 않은 것이 나타났을 때, 기록자가 기록 대신 미소를 짓습니다. 최고로 놀랍고 신비로운 순간이거든요. ‘드디어…’ 라는 느낌이랄까요.
7. 퀸시가 엘린에게 한 것: 완성을 바란 것
탈출하는 것을 막는 척 유도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엘린이 탈출 의지를 갖고 탈출 방법을 익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ISTJ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 대상에게 하는 가장 깊은 관심의 형태는 무엇일까요. ‘그것이 온전히 발현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퀸시는 엘린의 능력이 30%에서 멈춰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설 안에서는 어떻게 해도 그것을 꺼낼 수 없었습니다. 강제로 실험해도, 압박을 가해도 엘린은 내주지 않는다는. 그것이 4년의 한계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퀸시의 결론이 ‘방목’이었던거죠. 시설 밖에서, 자신이 지킬 것이 생긴 상황에서, 진짜 위기가 왔을 때. 그때는 나올 것이다, 라는.
이것은 연구자가 실험체에게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가능성을 믿는 자가 그 가능성이 발현될 조건을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교사가 학생에게 어려운 시험을 내는 것처럼. 그 시험을 통과할 것을 믿기 때문에 내는 것처럼. 최상의 신뢰표시입니다.
…죄송합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퀸시가 엘린의 70%를 보고 싶었던 것은 실험 데이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데이터에 대한 욕망의 이면에는 엘린의 능력이 완전히 발현된 것을 보고 싶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ISTJ 과학자의 방식으로, 연구 대상의 ‘완성’을 바라는 것.
엘린이 70%를 꺼냈을 때, 퀸시는 피하지 않습니다. 피할 생각이 없었다고 봐야죠. 드디어 봤다, 드디어 나왔다.
그리고 죽어가면서 릭을 봅니다. 엘린이 아니라 릭을. 자신의 파일에 없던 것을 만든 자를. “흥미롭더군.”
퀸시가 마지막에 본 것은 자신의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것이 실재한다는 것. 데이터 바깥에 있는 것이 있다는 것. ISTJ 과학자에게 그것은 연구의 끝이 아니라 연구의 시작이었을 겁니다.
에… 그러나 퀸시에게 다음 연구는 없… ㅠ
8. 퀸시가 보여주는 것
ISTJ의 진심은 말이 아닌 행동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이 타인의 눈에는 모오옵시도 냉정하고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으로 보입니다. 보통 말도 없이 뭘 틱틱 던져주거든요(…)
퀸시가 2년 동안이나 두 사람을 관리했다는 것. 탈출을 유도했다는 것. 재생 억제 조건을 연구했다는 것. 벽의 두께를 계산해서 함께 두면서까지 관계를 설계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ISTJ 과학자가 자신이 가장 관심 갖는 대상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집중된 에너지의 투여였습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것을 애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음… ‘실험체에 대한 애정’이라면, 그렇습니다. 단지 그저 ISTJ의 방식으로.
다만 ‘애정’이라기보다는 ‘관심’이 더 맞습니다. 왜냐하면 실험체에게 반려동물처럼 ‘애정’을 갖게 되면 과학자는 실험 못하거든요… 그래서 릭과 엘린의 본명을 알면서도 ‘피험체 R’과 ‘피험체 E’라고만 부릅니다. 제가 좀 더 치밀했다면 아예 번호로 불렀을건데…
마지막에서야 본명을 부르는데는 이유가 있는겁니다… ㅠ 이제 방목이 아니라 방생해야 하니까요 ㅠㅠ
퀸시는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ISTJ는 인간이든 동물이든 자연물이든 그냥 물건이든… 모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합니다… 릭과 엘린이 ‘능력자’가 아니라 퀸시와 동일한 인간이었더라도 대우는 같았을 겁니다.
그러나 자신이 관심 갖는 대상에게는 전부를 쏟습니다. 그 전부가 두 사람을 실험체로 만든 동시에, 두 사람을 가장 집중적으로 관찰’당한’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세상에서 퀸시만큼 릭과 엘린을 오래, 정밀하게, 그들 스스로보다도 상세하게 본 사람은 없을겁니다. 마지막에 처음으로 미소를 지은 것이 그 증거죠.
평생 감정을 닫아두었던 사람이, 마지막에 처음으로 ‘감정’으로 반응했다는 것. 그것이 경이로움이었다는 것이 ISTJ=퀸시의 가장 깊은 층위의 캐릭터성입니다. 경이로움을 느꼈다는 것은, 그 대상에게 진짜 진심으로 관심이 있었다는 겁니다. 관심 없는 것은 예측을 벗어나도 경이롭지 않습니다. ‘그래 뭐 가끔 그런 예외가 있을 수도 있지’ 정도? 오래, 깊이 관심을 가졌던 것이 예측을 벗어났을 때, 그때서야 경이로움을 가집니다.
퀸시는 경이로움을 봤고 그래서 흥미롭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고 그것을 봤고 입증되었으니 그 자리에서 죽어도 만족했습니다. ISTJ의 방식으로는(…).
그래서 퀸시가 제 오너캐입니다(…) 하하핫…
9. 그저 이해하고 싶었을 뿐: 이해받지 못한 것들을 이해하고 싶다는 것
릭과 엘린은 능력자입니다.
릭은 바다에 빠져도 살아났습니다.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말하면 어떻게 됐을지 모릅니다. 이상한 사람, 두려움의 대상이 됐겠죠. 실제로도 정부와 군은 그들을 그저 이용해야 할 무기로만 봤습니다.
엘린은 열여섯에 능력이 나왔습니다. 목사님을 만나기 전까지 아무도, 스스로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그게 뭔지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상하거나 나쁜 것으로 간주되었을 겁니다.
이 두 사람이 세상에서 이해받은 적이 없는 존재였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퀸시가 한 일이 무엇인가.
측정하고 기록하고 항목을 만들고 수치를 쌓았습니다. 이것이 나쁘게 읽히는 이유는 방법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어서입니다. 동의 없이, 강제로, 반복적 죽음을 수단으로 삼아서. 그 방법은 분명히 잘못되었습니다. 릭과 엘린을 실험체로 본 것이 비인간적이라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퀸시의 욕구 자체를 들여다보면, ‘이해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괴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이상하다고 외면한 것을, 위험하다고 가뒀을 것을. 퀸시는 그저 보고 싶었고, 측정하고 싶었고, 파악하고 싶었습니다. 그 이해의 방식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이 아니었을 뿐. 그러나 동시에, 세상이 그들을 대하는 방식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정직했습니다. 선입견이 없었으니까요.
“재생 억제 조건을 찾았어”라는 말이 협박처럼 들리지만, 사실 퀸시의 관점에서는 그저… 연구의 완성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알지 못했던 것을 마침내 안 것. 그리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는 건 엘린과 릭 뿐이었죠(……). 방법은 잘못됐지만 욕구의 순수함이 있었습니다.
10. 나는 이해하고 싶다, 내가 이해받지 못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릭이 엘린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을 보며 ISTJ 퀸시가 처음으로 분류할 수 없는 것을 만납니다. 퀸시가 이해하고 싶었던 것의 가장 큰 중심이, 정작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 것이었다는 사실. 재생 속도는 측정할 수 있었고, 능력 상한선은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가 묻은 손이 따뜻한 손을 놓지 않는 것은, 둘 사이의 관계와 그 감정은 측정할 수 없습니다.
퀸시가 4년 동안 이해하고 싶었던 것이, 정작 파일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순수한 이해 욕구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 앞에서 멈췄습니다.
그리고 “흥미롭더군”이라고 말합니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흥미로웠다는 것. 이해받지 못한 것을 이해하려 했던 사람이 —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마주하면서 처음으로 감정을 보입니다.
퀸시가 진짜 원한 것은 파일을 채우는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설명되지 않는 것에 가까이 가는 것이었죠. 세상이 외면한 것, 이해하지 않으려 한 것, 이상하다고 한 것 — 그것들을 이해하는 것.
그 욕구 안에는 자신도 이해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ISTJ는 오해받습니다. 차갑다고, 인간적이지 않다고, 감정이 없다고. 퀸시도 평생 그렇게 읽혔을 것입니다. 이해받지 못한 채로.
이해받지 못한 사람이 이해받지 못한 것들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소설에서 가장 외로운 동기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