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이라는 족쇄

  • 장르: 판타지, 로맨스 | 태그: #영웅서사 #트라우마서바이벌 #현대로판 #암튼해피엔딩 #이능력 #어반판타지 #ISTJ #ENFP #ISFJ #헌신여주
  • 평점×1575 | 분량: 83회, 2,375매 | 성향:
  • 소개: 불멸재생능력을 숨기고 살던 릭은 어느날 갑자기 알 수 없는 시설에 잡혀와 실험이라는 이름하에 수없이 많은 방법으로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방에 ... 더보기

2부(37~68) 후기 겸 자체분석 및 작가해설 이자 리뷰

6월 4일

68화쯤에 올렸었어야 했는데… 딴거 생각하고 퇴고 하다가…

 

심리적 지하세계와 자발적 귀환: 영웅서사의 역전
— 비교신화학으로 읽는 2부

 

[탈출했으나 돌아오지 않은 자들]

신화적 영웅서사에서 지하세계 탈출은 결정적인 전환점이다. 하강하여 시련을 겪고, 무언가를 얻거나 변화하여, 지상으로 귀환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2부는 그 공식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를 뒤흔든다. 릭과 엘린은 시설을 물리적으로 탈출했지만, 신화적 의미에서의 귀환을 이루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지하세계를 만들어내고, 그 안으로 다시 걸어들어간다. 2부의 진짜 주제는 탈출 이후다. 탈출한 자들이 어떻게 다시 지하세계를 재현하는가, 그리고 왜 스스로 귀환을 선택하는가.

 

1. 세속적 지하세계: 폐건물과 반지하

폐건물은 시설의 거울 이미지다. 결박이 없다. 흰 가운이 없다. 형광등이 없다. 그러나 그 부재가 곧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재가 낯섦이 된다.

릭이 폐건물에서 경험하는 것은 비교신화학에서 ‘귀환 후 재통합(Reintegration)’ 실패의 전형적 증상이다. 오뒤세우스가 이타케에 돌아와서도 변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됐던 것처럼, 영웅은 지하세계를 통과한 후 지상의 질서로 곧바로 복귀할 수 없다. 2년간의 시설 생활이 릭의 인지 체계를 재편했다. 슈퍼마켓 라면 매대 앞에서 5분을 서 있는 장면은 이 소설 전체에서 가장 정밀하게 포착된 외상 후 증상이다. “2년 동안 고른 게 없었으니까.” 선택 능력의 위축. 자율성의 말소. 그것이 시설이 한 일이었다.

반지하는 그 전환 공간의 물질적 구현이다. 비교신화학에서 ‘림보(limbo)’, 즉 지상도 지하도 아닌 중간 공간이 있다. 반지하는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도 그런 공간이다. 절반은 땅 아래, 절반은 땅 위. 창문으로는 지나가는 발들만 보인다. 세상은 있는데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위치. 릭과 엘린이 이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은 그들이 아직 지상 세계로의 귀환을 완료하지 못했다는 신화적 표시다.

2. 재활의 리듬: 일상이라는 의식(儀式)

비교신화학에서 귀환한 영웅의 재통합은 의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반복적이고 작은 행위들, 공동체와의 접촉, 새로운 역할의 수행. 41~50화에 걸쳐 펼쳐지는 일상의 파편들 — 라면 고르기, 편의점 알바, 계란말이 실패 — 은 단순한 서사적 여백이 아니라 이 의식의 구성 요소들이다.

기본적인 인삿말을 거울 앞에서 연습하는 릭의 장면은 그 핵심이다. 이것은 어떤 신화의 어떤 영웅도 거치지 않는 종류의 시련이다. 오뒤세우스는 키클롭스를 눈멀게 했고 칼립소의 섬에서 7년을 견뎠다. 그러나 편의점 알바에서 손님 인사에 굳어버리는 시련은 없었다. 이 소설은 영웅서사의 지평을 확장해보았다. 지하세계에서 살아남은 자가 겪는 진짜 시련은 일상으로의 귀환 자체라는.

이 의식적 반복의 구조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엘린의 역할이다. 엘린은 릭을 지상으로 안내하는 “사이코폼(Psychopomp)”, 즉 영혼의 인도자 역할을 수행한다. 헤르메스가 영혼을 지하세계로 인도하듯, 엘린은 릭이 지상 세계의 질서를 다시 배우도록 인도한다. 라면을 집어주는 행위, 하늘로 시간을 읽는 법, 이것들은 기능적 안내이기 이전에, 삶의 형식을 되돌려주는 행위다.

역설적인 것은 엘린 자신도 지상에 완전히 속하지 못하면서 릭을 인도한다는 점이다. 53화에서 엘린은 릭의 악몽 없는 잠을 보며 “이 온기가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는지” 생각한다. 인도자가 자신이 가야 할 곳을 미리 알면서 다른 이를 인도하는 것 — 이것은 헤르메스의 비극적 버전이다.

3. 두 종류의 악몽: 심리적 지하세계의 구조

비교신화학에서 지하세계 귀환 후 영웅이 겪는 가장 큰 위기는 “지상에서의 고립”이다. 지하세계를 보고 돌아온 자는 더 이상 본 적 없는 자들과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존재할 수 없다.

릭과 엘린의 악몽은 이 심리적 지하세계의 두 형태다.

릭의 악몽은 재침입형이다. 눈을 감으면 거기가 온다. 흰 천장이, 형광등이, 비명이, 시설의 이미지가 능동적으로 침입한다. 이것은 외상 후 스트레스의 임상적 표현이기도 하지만, 신화적으로는 “지하세계가 영웅을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의 석류를 먹었기 때문에 완전히 귀환할 수 없었듯이, 릭의 몸이 총소리에 쓰러지는 반응은 시설이 그의 신경계 안에 심어놓은 씨앗이다.

엘린의 악몽은 예방형이다. 눈을 감으면 거기가 올 것 같아서 눈을 감지 못한다. 침입이 아니라 예상. 이것은 더 정교한 외상의 형태다. 릭은 지하세계에 당했고, 엘린은 지하세계를 안다. 아는 것이 더 나쁜 종류의 공포를 만든다. 44화의 새벽 장면에서 엘린이 릭을 안는 것은 두 개의 악몽이 서로를 막아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릭의 숨소리가 엘린의 지하세계를 멀어지게 하고, 엘린의 온기가 릭의 지하세계를 멀어지게 한다. 이것은 신화에서 동반자가 서로를 구원하는 방식이다. 외부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상호적 버팀목으로서.

4. 퀸시의 문자: 헤르메스의 메시지 혹은 사탄의 유혹

55화에서 퀸시의 문자가 온다. [잘 지내고 있나. 피험체 R도.] 이 한 줄이 이후 모든 것의 기폭제다.

비교신화학에서 지하세계의 신이 지상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소환이다. 페르세포네는 결국 하데스가 원할 때 돌아가야 했다.
다른 하나는 유혹이다. 사탄이 예수에게 제안했듯이, 지하세계의 힘은 지상의 존재에게 무언가를 제시한다.

퀸시의 문자는 두 가지를 동시에 행한다. 감시의 현존을 알리고(소환), 아직은 없다는 여유를 주며(유혹). 그리고 곧 연락하겠다는 말로 기다림을 강제한다. 엘린이 정확히 파악하듯, 아는 위험보다 모르는 위험이 더 소진시킨다. 이것은 퀸시가 처음부터 사용해온 방법이다. 통제는 직접적 강압보다 불확실성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59화에서 엘린이 받는 두 번째 메시지 — 재생 억제 조건의 발견과 2주 기한 — 는 이 소환의 성격을 확정한다. 그것은 조건부 협박이다. “오지 않으면 릭을 죽인다”가 아니라 “릭을 영구적으로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위협.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릭이 죽어도 살아나면 족쇄로서의 기능이 제한된다. 그러나 영구적 죽음이 가능하다면, 릭의 존재는 완전한 족쇄가 된다.

엘린이 욕실에서 소리 없이 우는 장면은 이 무게를 감당하는 방식이다. 신화에서 이런 장면은 대개 영웅이 선택 앞에서 무너지는 순간이다. 아가멤논이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기로 결정한 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러 가는 새벽. 사랑하는 자를 구하기 위해 사랑하는 자를 잃어야 하는 모순. 엘린은 릭을 지키기 위해 릭 곁을 떠나야 한다.

5. 비밀의 무게: 혼자 짊어지는 자의 비극

61화의 아침 식사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 중 하나다. 엘린이 스크램블드에그, 베이컨, 버터 바른 토스트를 만드는 것은 마지막 식사다. 그러나 릭은 모른다. 엘린은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것을 감춘다.

이것은 신화에서 ‘자기희생 영웅’의 전형적 행위다. 아킬레우스가 예언을 알면서도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이후 전장으로 돌아간 것처럼, 엘린은 결과를 알면서 선택한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죽음을 선택했다. 엘린은 릭을 살리기 위해 자기자신을 다시 지하세계로 돌려보낸다.

릭한테 말하지 말라는 퀸시의 조건이 이 비극을 구조화한다. 말하면 릭이 뛰어들 것이다. 릭이 뛰어들면 퀸시가 그것을 이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혼자 감당해야 한다. 이 고독한 결정이 영웅적인 것이냐, 아니면 퀸시가 설계한 또 다른 통제 구조냐, 소설은 이 질문을 열어둔다.

엘린이 세 번 편지를 쓰다가 찢는 장면은 이 구조의 핵심이다. “미안해” — 미안함으로 덮을 수 없다. “릭을 위해서야” — 설명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 “꼭 돌아올게” — 확신 없는 약속은 할 수 없다. 결국 남는 것은 “죽지마” 뿐이다. 설명도, 이유도, 약속도 없이. 그것이 지금 진실인 것만. 죽지 말아달라는 것. 내가 돌아올 수 있는 사람으로 있어달라는 것.

6. 릭의 지하세계: 총성과 바닥

66화와 67화는 릭의 자발적 지하세계 하강이다.

엘린이 모든 걸 내려놓고 나가려는 것을 본 순간부터 릭의 세계가 무너진다. 퀸시에게, 라는 네 글자. 그리고 일어서지 못하고 무릎을 꿇는 장면. 이것은 기도처럼 보이지만 기도가 아니다. 불가항력 앞에 무너지는 것이다. 릭이 무릎을 꿇는 상대는 엘린도, 퀸시도 아니다. 자신이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다.

서랍의 총. 이것은 예정되어 있었다. 47화에서 총이 등장했을 때부터, 그것이 이 방향으로 사용될 가능성은 사실상 확정되어 있었다. 릭이 총을 서랍에 넣고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했을 때, 그것은 제거가 아니라 유예였다.

66화에서 릭이 총으로 자신을 반복해 쏘는 것은 자살 시도가 아니다. 불멸이기 때문에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그것은 더 정확히는 ‘무감각을 향한 하강’이다. 의식이 꺼지는 그 순간 동안 아무것도 없다. 엘린이 없다는 것도, 퀸시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자신이 족쇄라는 것도. 그 무(無)를 향해 반복적으로 들어가는 행위.

이것은 신화적 의미에서 스스로 지하세계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다. 이난나가 자신의 의지로 지하세계의 문을 두드렸듯, 릭은 자신의 의지로 의식의 소멸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난나의 하강에는 목적이 있었다. 릭의 하강에는 목적이 없다. 그저 여기가 아닌 곳에 있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웅서사의 가장 어두운 변형이다. 목적 없이 반복되는 하강, 왜인지도 모르고 자동으로 돌아오는 귀환.

7. 죽지마: 세 글자의 신화

68화의 쪽지 발견 장면이 이 2부의 핵심이다.

죽지 않는 사람에게 죽지 말라고 쓰는 것, 이 역설이 모든 것을 말한다. 릭은 불멸이다. 총을 쏴도 살아난다. 그래서 이 메모는 물리적 사실에 대한 요청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무언가에 대한 요청이다. ‘살아남는 것과 살아있는 것은 다르다’는 엘린의 앎의 전달이다.

릭이 할 수 있는 것은 몸을 살리는 것이 아니다. 몸은 어차피 살아난다. 엘린이 요청하는 것은 ‘마음을 살리는 것’이다. 포기하지 말 것. 무너진 채로 있지 말 것. 여기 돌아올 수 있게 기다릴 것.

신화에서 이런 메시지는 대개 신이나 예언자의 입에서 나온다. 그러나 여기서는 엘린—동반자 영웅—이 쓴다. 설명도 없이, 이유도 없이, 약속도 없이, 그냥 세 글자만. 이것이 엘린의 방식이다. 필요한 말만, 필요한 만큼. 그리고 지금 릭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이것뿐이었다.

릭이 식빵을 물에 적셔 먹기 시작하는 것은 신화적 귀환의 시작이다. 2부 초반에도 그랬듯이, 영웅이 지하세계에서 돌아올 때는 언제나 무언가를 먹거나 마신다. 그것이 삶의 영역으로의 재진입을 표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지하세계]

이 소설 2부의 비교신화학적 독해에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하는 것은 이것이다. 두 번째 지하세계 하강은 강제된 것이 아니라 선택된 것이라는 점.

퀸시는 엘린을 강제로 데려가지 않았다. 엘린이 걸어서 갔다. 릭이 강제로 바닥에 눕혀진 것이 아니다. 릭이 스스로 총을 들었다. 이 자발성이 2부를 1부와 근본적으로 다르게 만든다.

1부의 지하세계는 ‘당하는 것’이었다. 목에 뭔가 꽂혀 의식을 잃고 시설에 깨어났다. 선택이 없었다.

2부의 지하세계는 ‘선택하는 것’이다. 엘린은 릭을 위해 퀸시에게 돌아가기로 선택한다. 릭은 엘린의 부재를 견디지 못해 의식의 소멸을 선택한다.

이 하강을 선택하는 주체성이, 역설적으로 이들을 영웅으로 만든다. 무너지면서도 선택한다는 것. 포기처럼 보이지만 포기가 아닌 것. 엘린의 지하세계 귀환은 헌신이고, 릭의 바닥은 상실이지만, 그 상실 안에서도 쪽지를 집어들고 식빵을 먹기로 하는 것은 여전히 선택이다.

신화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들은 두 번 지하세계를 방문한다. 한 번은 타의에 의해서, 한 번은 스스로. 두 번째 방문에서 그들은 첫 번째 방문에서 몰랐던 것을 가지고 돌아온다.

릭과 엘린이 두 번째 지하세계에서 무엇을 가지고 돌아올지, 그것이 3부의 질문이고, 그에 대한 답은 이미 2부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