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이라는 족쇄

  • 장르: 판타지, 로맨스 | 태그: #영웅서사 #트라우마서바이벌 #현대로판 #암튼해피엔딩 #이능력 #어반판타지 #ISTJ #ENFP #ISFJ #헌신여주
  • 평점×1575 | 분량: 83회, 2,375매 | 성향:
  • 소개: 불멸재생능력을 숨기고 살던 릭은 어느날 갑자기 알 수 없는 시설에 잡혀와 실험이라는 이름하에 수없이 많은 방법으로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방에 ... 더보기

엘린: ISFJ 수호자유형이 감정을 억누른다는 것의 의미

2일 전

*엘린이 실질적으로 진 주인공이라 그런가 쓰기 되게 힘들었네요
영웅신화 기준으로도 분석을 올릴까 말까 고민중…

 

[표현하지 못하는 것과 느끼지 못하는 것]
ISFJ와 ISTJ의 차이는 표면에서 보이지 않는다. 둘 다 말이 없다. 둘 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둘 다 실용적으로 행동한다. 외부 관찰자에게는 거의 같아 보인다.

그러나 내부는 완전히 다르다.

ISTJ는 감정 자체가 둔하다. 느끼는 양이 적다. 그래서 표현도 적다. 없는 것을 내보낼 수 없으니까. 퀸시가 그렇다.
ISFJ는 감정이 아주 많다. 느끼는 양이 많다. 그런데 표현하지 않는다. 있는데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안에 쌓인다.
엘린이 그렇다.

이 차이가 엘린을 퀸시보다 훨씬 더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물로 만든다. 퀸시는 비어있는 자리에서 출발한다. 엘린은 가득 찬 자리에서 출발해 억눌러야 했다. 그것이 소설 전체에서 아주 작은 균열들로 새어나온다.

 

1.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 ISFJ의 공감 능력
ISFJ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언어 이전의 감지다. 말이 오기 전에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안다. 표정이 바뀌기 전에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안다.
시설에서 이것은 생존 기술이 됐다. 훈련 구역에서 오늘 보여줄 수치를 계산했다. 어제와 같은 상승 폭. 퀸시가 예상하는 천장보다 아래에 있는 것처럼. 엘린은 퀸시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몸으로 읽었다. 말하지 않아도. 퀸시의 기대값이 어디에 있는지를 감지하고, 그 아래에 자신을 위치시켰다.
릭이 악몽에서 깼을 때 엘린은 이미 깨어있었다. 이것이 ISFJ의 감지다. 릭의 숨소리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을, 엘린이 잠든 상태에서도 알아챘다는 것이다.
릭이 초콜릿이 맛있었다고 말할 때 엘린은 웃음이 나왔다. “막으려 했는데 나왔다.” ISFJ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항상 성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억누르려 했다는 것 자체가 감정이 있었다는 증거다.

 

2. 기억력: 사라지지 않는 것들
ISFJ의 기억력은 특별하다.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과 감정을 기억한다. 그 순간이 어땠는지. 상대방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온도였는지.
53화에서 릭을 내려다보며 생각하는 장면.
왼발이 오른발보다 조금 더 무겁게 닿는 걸음걸이.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굳이 확인하듯 ‘나야’ 라고 문자를 보내는 사람. 고양이가 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 별것 아닌 일에도 관심을 두는 사람.
이 목록이 ISFJ의 기억 방식이다. 중요한 사건이 아니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기억 하나하나에 감정이 붙어있다. ISFJ는 기억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기억된다. 그리고 그 기억이 이 목록을 만들 때, 엘린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오늘 이 방을 떠난다는 것을. 그래서 이 기억들이 더 선명하게 새겨진다. 잃기 전에 보는 것들이.

 

3. 해결사적 기질: 혼자 짊어지는 것
ISFJ의 해결사 기질은 따뜻한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조용하고 실용적이다. 문제가 생겼다. 내가 해결한다.
시설 탈출 직후 엘린이 하는 것들. 버스 노선을 계산한다. 작은 도시를 고른다. 신분증 경로를 안다. 현금으로 사람 쓰는 곳을 안다. 릭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앞서 일어난다. 릭이 따라온다.
이것이 ISFJ의 해결 방식이다. 내가 무언가를 알고 있고, 지금 그것이 필요하다. 말하는 시간에 실행하는 것이 낫다. 설명하면 오히려 더 걸리니까.
퀸시의 문자를 받고 엘린이 하는 것. 혼자 생각한다. 혼자 결정한다. 혼자 짊어진다. ISFJ의 해결사 기질이 가장 어두운 방향으로 작동하는 순간이다. 혼자 할 수 있다. 혼자 해야 한다. 릭이 알면 더 복잡해진다. 그러므로 혼자.
이것이 ISFJ의 해결사 기질의 비극이다. 책임감이 지나치면 혼자 감당하는 것이 당연해진다. 나눌 생각을 잘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해야 한다는 믿음이 너무 강해서.

 

4. 생각이 너무 많음: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
ISFJ는 생각이 많다. 외부로 나오지 않을 뿐이다. 안에서 계속 돌아간다.
릭이 잠들었다. 악몽 없이. 엘린이 그것을 본다. 그리고 안에서 생각이 시작된다. “이게 오래가지 않을 것 같아서 불안했다. 평온한 것들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퀸시는 왜 추격하지 않는지 아직 몰랐다. 모르는 게 더 무서웠다.” “어쩌면 지금의 이 시간도 계획 안일 수 있었다.” “그러면 릭이 고양이를 보고 싶다고 하는 것도. 핸드폰에 문자가 저장된 것도. 수프를 태우다가 태우지 않게 된 것도. 악몽 없이 자는 날이 늘어난 것도. 전부 퀸시가 원하는 것일 수 있었다.”
이 생각들이 전부 엘린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릭은 모른다. 릭이 고양이를 보고 싶다는 말을 하는 동안 엘린은 이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들었다. 안으로는 돌아가고 있었다.
멈추지 않는 내면의 회로. 그것이 항상 감정과 함께 돌아간다. 불안, 걱정, 예측, 책임감. 그것들이 합쳐져서 ISFJ를 소진시킨다.

 

5. 감정 표현의 불능: 있는데 나오지 않는 것
ISFJ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자 가장 큰 고통의 원천 — F유형이지만 감정 표현이 잘 안 된다.
이것이 ISTJ와의 결정적 차이다. ISTJ는 감정 자체가 적어서 표현이 적다. ISFJ는 감정이 많은데 표현이 안 된다.
엘린의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이 특성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면들이 있다.
욕실에서 혼자 우는 장면. 소리를 막았다. 눈에서 나오는 것은 막지 않았다. 그것이 ISFJ의 방식이다. 완전히 막을 수 없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할 수 있다.
세 번 편지를 쓰다가 찢는 장면. “미안해.” 찢었다. “릭을 위해서야.” 찢었다. “꼭 다시 돌아올게.” 찢었다. 감정이 없어서 쓰지 못한 것이 아니다. 감정이 너무 많아서 어떤 말도 충분하지 않았다. 미안함이 있었다. 그러나 미안해라는 말로 담기지 않았다. 릭을 위해서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이 맞지 않았다. 결국 남은 것은 죽지마, 라는 세 글자였다. 가장 적은 말이 가장 많은 감정을 담았다.

 

6. 의리와 헌신: 릭 때문에 돌아간다는 것
ISFJ의 의리는 조용하다. 선언도 약속도 하지 않는다. 그냥 실행한다.
엘린이 욕실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생각하는 것. “릭을 지키기 위해 릭 곁에 없어야 했다.” 이 모순이 ISFJ 헌신의 핵심이다. 헌신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향이 아니라 사라지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곁에 있어야 하는데, 없어야 지킬 수 있다. 그것이 맞다면 없어지는 것을 선택한다.
마지막으로 아침식사를 차리는 장면에서도, ‘그냥’이라고만 한다. ISFJ의 헌신은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해야 해서 한다. 그게 전부다.

 

7. 퀸시와 닮아가야 했던 것: 외부에서 만들어진 껍데기
엘린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 퀸시와 닮아가야 했던 인물”이다.
외전에서 이 부분을 더 드러내려 했다. “표정이 없는 얼굴이 됐다.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냥 됐다. 목사님이 가르쳐준 것이 이것이었는지 몰랐다. 숨기는 것. 보여주지 않는 것. 그게 얼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는지.”
ISFJ인 엘린이 퀸시처럼 보이게 된 것은 퀸시처럼 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드러내면 죽는다. 그러므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이 반복되면서 표정이 없어졌다.
그러나 표정이 없어진 것이지 감정이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퀸시는 감정이 적다. 엘린은 감정이 많은데 표정이 없어진 것이다. 겉은 같아 보인다. 안은 완전히 다르다.
퀸시가 텅 빈 용기라면, 엘린은 가득 찼지만 뚜껑이 닫힌 용기다.
그 차이가 소설 전체에서 아주 작은 균열들로 나타난다. 그 균열들이 퀸시에게는 없다. 퀸시는 무너지지 않는다. 마지막 한 번을 제외하고. 엘린은 계속 무너질 뻔하다 막는다. 막을 뻔하다 새어나온다. 그 반복이 ISFJ 엘린의 소설 전체다.

 

8. 감정을 닫아둔 뚜껑이 열리는 순간
“퀸시!!”
4년 동안 닫혀있던 것이 열렸다. 그것도 소리로. ISFJ가 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드문 일인지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열여섯에 도망쳤다. 목사님이 죽는 것을 봤다. 2년을 시설에 있었다. 반지하의 시간이 있었다. 다시 시설로 들어갔다. 갇혔다. 그리고 릭이 피투성이로 왔다. 그 전부가 저 소리 하나에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를 꺼냈다. 퀸시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것. 숨겨뒀던 것. 목사님에게 배운 것 — 전부 보여주면 안 된다 — 을 처음으로 역전시킨 것. ISFJ가 가득 찬 용기의 뚜껑을 여는 것은 이런 방식이다. 오래 참고 오래 막다가 한 번에 완전히.

 

[엘린이라는 사람]
퀸시는 비어있는 자리에서 출발해, 비어있는 채로 끝났다. 마지막에 아주 작은 무언가가 새어나왔지만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엘린은 가득 찬 자리에서 출발해, 가득 찬 채로 가야 했다. 그 가득 찬 것을 들키지 않게, 무너지지 않게, 표정 없이, 퀸시처럼 보이도록 하면서.
느끼는 것은 멈출 수 없는데 내보낼 수 없다. 공감이 너무 많아서 상대방의 감정이 내 감정처럼 들어오는데, 그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있어야 한다. 기억이 사라지지 않아서 과거의 것들이 현재에도 살아있는데, 그것을 묻어두어야 한다.
퀸시와 엘린이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둘 다 말이 없고, 표정이 없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퀸시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상태였다. 엘린은 그것이 필사적으로 유지하는 상태였다.
가득 찬 채로 텅 빈 것처럼 있어야 하는 것. 그것이 ISFJ 엘린이 소설 전체에서 한 일이었다.

 

 

[엘린과 퀸시-ISFJ와 ISTJ,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는 사람과 감정에 둔한 사람]

1. 거울처럼 닮아 보이는 두 사람
18화에서 엘린이 퀸시의 사무실에 선다.
두 사람이 마주한다. 둘 다 표정이 없다. 둘 다 말이 적다. 둘 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전혀 모르는 관찰자가 이 장면을 본다면 비슷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안을 보면 완전히 다르다.
퀸시의 표정 없음은 없어서 없는 것이다.
엘린의 표정 없음은 있는데 없애는 것이다.
이 차이 하나가 두 사람 사이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같아 보이는 표면 아래에서 완전히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다름이 엘린을 퀸시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2. 같은 장면, 다른 내면: 18화의 대면
퀸시가 침묵하는 동안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서술된다. 변수 정리, 손실 계산. 감정의 자리에 연산이 있다. ISTJ의 침묵은 처리 중인 상태다. 정보를 분류하고 결론을 내리는 시간이다.
엘린이 침묵하는 동안 안에서 일어나는 것은 서술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후에 나온다.
“복도로 나오고 나서야 숨을 내쉬었다. 안에서는 내쉬지 않았다. 퀸시 앞에서는, 그조차도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숨을 참고 있었다. 의식적으로. 이것이 ISFJ의 침묵이다. 처리 중인 것이 아니다. 억제 중인 것이다. 쏟아져 나오려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같은 침묵 안에 있었지만 퀸시는 빈 그릇이었다. 엘린은 가득 찬 그릇에 뚜껑을 누르고 있었다.

 

3. 읽는 것: 데이터와 감각
ISTJ 퀸시: 외부를 데이터로 읽는다
퀸시는 세계를 수치로 읽는다. 릭의 재생 속도, 엘린의 능력 상한선, 탈출 행동 패턴. 모든 것이 항목이 되고 파일이 된다. 엘린의 협박조차도 감정으로 읽지 않았다. 정보로 읽었다. 그것이 퀸시의 독해 방식이다.

ISFJ 엘린: 내부를 감각으로 읽는다
엘린은 세계를 감각으로 읽는다. 숨소리의 리듬, 발걸음의 무게, 복도 소리의 패턴, 장비 이동 소리의 변화. 숫자로 세지 않았다.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느낌이 “릭의 실험 강도가 달라졌다”는 결론으로 갔다. ISFJ의 독해 방식이다. 감각이 먼저 오고 분석이 나중이다. 아니, 때로 분석 없이 감각이 전부다. 그리고 그 감각이 맞다.

두 사람 모두 상황을 정확하게 읽는다. 그러나 읽는 기관이 다르다. 퀸시는 이성으로, 엘린은 감각으로.

ISFJ가 감정을 억압하면 어떻게 되는가. 사라지지 않는다. 안에 쌓인다. 쌓인 것이 아주 작은 균열로 새어나온다.
ISTJ가 감정을 느끼는 것이 드문 이유가 여기 있다. 느끼는 양 자체가 적다. 그리고 드물게 느낄 때는 그것을 처리하는 방법을 모른다. 언어가 없어서.
엘린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막아야 해서다. 퀸시가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언어가 없어서다.

 

4. 표면의 유사성이 만드는 비극
두 사람이 같아 보인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다.
외전에서 엘린은 퀸시처럼 숫자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거기다 시설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억눌렀다. 그 억압은 성공적이었다. 표정이 없어졌다. 퀸시처럼 보이게 됐다. 그리고 퀸시가 엘린을 관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엘린이 퀸시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퀸시의 파일에 엘린이 있었다. 능력 수치가 있었다. 반응 패턴이 있었다. 그런데 퀸시가 놓친 것이 있었다.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과 감정이 없는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억누르는 사람은 언젠가 터진다는 것을.
ISTJ 퀸시는 자신의 방식으로 엘린을 읽었다. 데이터로. 반응 패턴으로. 그러나 ISFJ 엘린은 그 패턴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안에서 쌓이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퀸시의 파일이 포착하지 못한 것이었다.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퀸시는 그것을 마지막까지 몰랐다.

 

5. 마지막의 차이
두 사람의 마지막 감정 표현이 이 모든 것을 요약한다.

퀸시의 마지막 — “흥미롭더군.” 처음으로 감정이 언어로 나왔다. 그러나 그것조차 분석의 언어였다. 경이로움을 “흥미롭다”는 지적 언어로 처리했다. 마지막에 감정이 열렸는데 그 열림도 ISTJ의 방식이었다. 감정이지만 인지적으로 포장된 감정.

엘린의 마지막 — “퀸시!!” 소리가 터졌다. 언어 이전의 것이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4년이 그 소리 하나에 있었다. ISFJ의 방식이다. 언어가 아니라 감각이 먼저 나왔다. 정제되지 않은 것이 그대로 나왔다.

퀸시는 마지막에 처음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그러나 그것이 여전히 퀸시의 언어였다.
엘린은 마지막에 처음으로 억압을 풀었다. 그것이 엘린의 감정이었다.

 

[같은 표면, 다른 깊이]
ISFJ와 ISTJ는 외부에서 구분이 어렵다. 둘 다 말이 없다. 둘 다 표정이 없다. 둘 다 실용적이다. 그러나 깊이가 다르다.
ISTJ 퀸시는 표면이 전부다. 표면이 비어있으면 안도 비어있다. 감정이 없어서 표현이 없다.
ISFJ 엘린은 표면이 껍데기다. 표면이 비어있어도 안은 가득 차있다. 감정이 너무 많아서 표현하지 않는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는 사람과 감정에 둔한 사람이 오래 같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임계점이 오면 달라진다. 엘린의 임계점은 릭이 피투성이로 온 것이었다.
그때 퀸시는 처음으로 알았다. 표면이 같다고 안이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