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책 단편선

대상작품: <항문을 열어라> 외 5개 작품
큐레이터: bard, 19년 11월, 조회 141

Bard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이 “만들어야겠다!”라는 (무신론자의) 하늘의 계시가 내려와서 브릿G에 접속하고서 큐레이션을 만든다면 그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제 일은 대체로 정리되지 않은, 마치 여러 겹의 지층과도 같은 느린 축적 속에서 점차 구체적인 형태로 변환되어 갑니다. 이번에 제가 작품 큐레이션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작가는 아그책 님입니다. 원래 니그라토 작가를 비평적으로 다루는 큐레이션을 만들어 볼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도 전에 비마커 님이 이런 글을

https://britg.kr/reviewer-novel-curation/79480/

적어 주셔서 제가 굳이 만들 필요는 없겠다 싶었어요. 제목도 “대우주의 왕 니그라토”라고 지었습니다만 수고가 줄어서 참 다행이죠.

아그책은 현재 1998년생으로, 모 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재학 중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문창과에 다니는 분들이 여기에는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우선 아그책 님하면 떠오르는 작품이죠.

항문을 열어라. 사실 브릿G의 자유게시판에서 벌어진 논란과는 다르게 읽고 난 감상은 제법 평범했습니다. 설정도 좀 뜬금없고, 결말도 조금 엉뚱했어요. 일종의 커밍아웃물이라면 커밍아웃물인데 제 생각보다 지나치게 논란이 되고 토론이 벌어지면서 세상에는 여러 의견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작품은

S. 짧은 단편이지만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우선 여성의 설정이 문창과를 다니다가 자퇴를 하고 요구르트를 팔고 있는 ‘요구르트 아줌마’가 되었다는 점이 좋습니다. 그 후에 실종된 여성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나’는 그녀를 구하고 소설을 완성할 수 있을지, 그리고 “늘 자유롭기를”이라는 글귀는 복선을 회수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증이 피어오르는 소설이었습니다.

탈반. 작품 분류가 호러, 일반으로 되어 있는데 호러 요소는 양념으로 들어가 있다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작품을 관통하는 동성애자의 느낌, 형에 대한 감정, 갑자기 나타나는 강령술과 밝혀지는 진실까지. 모든 면에서 아그책 작가님의 특징이 살아 있는 단편입니다. 만약 제게 딱 하나만 추천하라고 하면 저는 이 작품을 고를 것 같습니다.

나. 그러고 보면 아그책 님의 제목은 짧은 제목이 많습니다. 가장 긴 제목이 “슬픔의 뒷면에서 그를 기다릴 때”로 13자고, 나머지 제목들은 전부 13자 미만입니다. 이 작품은 작품 성향에서 잔인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읽으면서 제가 느낀 감정은 잔인과 공포보다는 오히려 죄책감과 슬픔에 가까웠습니다. ‘나’는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그것이 숨겨진 성향에서 왔음을 인지합니다. ‘나’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블록. 감상을 전달하기 가장 어려운 작품입니다. 일단 레고를 조립하는 아버지는 작중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나와 노가다판에서 일하는 형과 아버지의 동료 뿐입니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할 의지가 없어 보이지만 아버지는 그의 삶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발을 건 남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그게 아버지라면 어쩌면 납득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9. 아그책 님의 작품은 여러 가지 특징이 있는데 9에서는 모든 특징이 집약되어 있네요. 사람의 실종, 아파트, 동성애자, 환상과 현실의 경계. 67매의 길이는 모든 요소를 조합해서 보여주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이 이룬 작은 성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결말이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문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너무 작위적이어서 작품의 성취를 흐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여섯 편의 소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모든 작가들이 그렇기는 하지만서도 아그책 님의 작품은 정말이지 독자를 가립니다. 호불호가 매우 강한 매운 요리 같은 느낌이랄까요. 사실 저는 호러를 많이 읽지도 않는데, 작가님의 글을 읽게 되는 것을 보면 기존의 호러와는 다른 매력이 작품 속에 녹아 들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담이긴 한데 저는 퀴어소설이 과연 정체성을 긍정하는 것으로 끝나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작가를 보고 싶습니다. 사람의 정체성은 단순히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은 이어지고 편견은 영원할 것입니다. 아그책 님의 소설은 ‘소설 이후’의 삶을 다루고 있다는 의미에서, 제게는 (개별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색다른 즐거움을 줍니다. 물론 즐거움 뿐만 아니라 생각의 여지도 남겨 두고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