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자기 작품이 실린 단편집 리뷰입니다. 바이럴이냐고 물으신다면 브릿G 작가가 브릿G 단편 앤솔로지를 브릿G의 리뷰 큐레이션으로 리뷰하는데 바이럴이 아니라고 하기에도 뭔가 이상하군요…… 하지만 거짓말은 못하는 성격인지라 가감없이 리뷰하겠습니다.
강남 하늘 재개발은 강남을 중심으로 엄청난 크기의 돔이 건설된 근미래 시대 속에서,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신화를 쌓고 있던 사업가가 주인공에게 ‘돔을 뚫는 재개발/재건축 허가’를 요청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하나의 ‘신화’처럼 다뤄집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수밖에 없고, 성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 정말 그럴싸한 상상력을 들고 거침없이 발상을 전개합니다. ‘돔’과 ‘초거대 빌딩’이라는 두 가지 전제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그럴싸한 부동산 모사가 일어날 수 있음은 작가의 역량도 역량이거니와, 대한민국의 부동산 문제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된 문제라는 것이 한몫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만 이러한 거침없는 발상 전개가 중심이 되어 진행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주인공 서사는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말 역시 신화 하나가 스러지고 새로운 신화 하나가 태동하는 결말로 끝나는데, 서사로선 다소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납득이 안 되는 문제라기보단(오히려 개연성은 차고 넘치는 합당한 결말입니다), 아이디어와 서사 중 선택과 집중을 내려야 했기에 나오는 상대적 기회비용에 가까운 아쉬움입니다. 쓴웃음이 지어지기로는 본 작품집에선 원탑이라고 하고 싶네요.
모든 것이 AI 아바타와 AI 로봇으로 대체되는 시대 속에서 인간의 자리, 인간성, 인간적임에 대해 다루는 소설입니다. 작품 전반에 깔린 감성이 저로서는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주제를 위해 구성된 세계라는 인상도 없잖아 있지만, 그것을 통해 AI 스튜디오에서 갇혀 패닉에 빠진 장면은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품이 호소하고자 하는 인간적임에 대해선 적극 동의하는 바입니다. 2~3층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더더욱이요.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문으로만 구성됐으며, 생명과 의식에 대한 논쟁적 탐구만이 이 내용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브런치 포스트 같은 주제일지라도 소설로서 성립할 수 있음은 그것이 바로 SF라는 장르가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작품은 소설로서도 마지막 반전을 통해 충분히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이러한 논쟁적 탐구가 소설에 삽입되면, 어느 한쪽의 논리가 부실하거나 전체적인 전개가 인위적이라는 느낌을 받기 쉽습니다. 작가가 정반합을 잘 다뤄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소설가로서의 노련함보다는 사상가로서의 노련함이 보여야 하는 대목이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에리스가 서티를 일종의 ‘설득(혹자는 가스라이팅)’하는 과정은 상당히 매력적이고 그럴싸하게 다가왔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본연의 재미를 전부 갖췄다고 봐도 될 듯합니다. 사실 이런 류의 작품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이유는 앞서 말했듯 부실한 논리나 인위적인 전개 때문이 큽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리뷰는 본래 쓴 리뷰가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대체합니다.
개인적으로 강남 하늘 재개발과 함께 꼽는 이 단편집 투톱 작품입니다.
불교SF, 정확히는 불교신화SF라고 불러야 할 듯합니다. 보통 불교SF라고 하면 불교 철학과 SF와의 결합을 생각하니까요.(저만의 선입견이라면 어쩔 수 없군요…) 그런 점에서 불교신화에 익숙하지 않던 저로선 서장에 제시된 하리제 설명문을 열심히 읽고 숙지한 채로 읽었습니다. 그런데도 읽기 난이도가 조금 있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읽기 난이도와 별개로 신화 속에 SF스러운 장면을 자연스럽게 삽입하는 솜씨는 예사 솜씨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영어가 배제된 SF, 그것도 신화를 풀어내는 SF라니. 자칫하면 ‘이게 어디가 SF지?’라는 착각도 불러일으킬 만큼 자연스러운 삽입이라 생각합니다. 결말 구성 역시 SF적 설정의 연장선으로 적절히 재해석했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하리제 중심으로만 굴러가서 석가나 반지가나, 도망쳤다 돌아온 하리제나 다소 불가해한 지점들이 있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는 신화라는 뒷배경이 따로 있으니 서술이 필요 없을 수도 있는 부분일지 모르겠네요.
이 단편집의 이단아…! 유일하게 SF가 아닌 특수설정 미스터리지만, 넓게 보면 SF도 특수설정이니 이 단편집은 특수설정 단편집이 아닐까요? 뭐랄까, 하필 또 앞에 배치된 게 불교신화SF고, 뒤에 배치된 게 인류운명어쩌고저쩌고SF라 이 작품이 청량감 있는 사이다 역할을 해준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노련한 작품 배치 센스에 경탄을.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결말을 강제로 스포일러 당했습니다. 제 단편 파트 완성본을 받을 때 제 작품 소표지 옆페이지가 이 작품의 결말부였거든요. 미스터리를 읽는데 결말부부터 접하고 읽게 되다니. 이단아스러운 작품에 이단아스러운 독자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반전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제가 웬만한 소설은 결말부부터 들춰보고 독서한다는 실로 이단아스러운 독자라는 사실! 그러니 스포를 당했다는 사실은 슬퍼할 것이 아닌, 제겐 마땅한 독서법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실현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메데타시 메데타시. 사족이 길었는데, 이게 다 정말 재미있는데 이걸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자니 단편이라 스포일러가 되어버리는 참사를 피하기 위함임을 알아주시면 정말 감사합니다. 특수설정이라는 작가만의 새로운 룰 안에서 논리적인 도미노를 쌓는 과정과 그것을 소해하는 과정,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결말까지.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수설정 미스터리의 매력이 이런 건가 싶고요. 한 가지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단죄의 검을 언급할 때 ‘아이템’이라는 어휘가 딱 한 번 나오는데, 이게 묘하게 ‘기꺼이 속아주기’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왜 그런가 고민해보면 ‘아이템’이라는 말 자체가 제게는 너무 게임 용어로 인식되는 터라 특수설정 미스터리가 아닌 트릭 게임으로 읽힐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실 줄 알았나요? 쟌넨! 유감스럽게도 저는 제 작품을 배짱 있게 리뷰할 만큼의 작가는 못 됩니다. 다만 종이책으로 보니까 생각보다 명대사처럼 느껴지는 게 많다는 건 기분이 좋더군요. 실은 그것보단 대통일 이론이란 개념을 오용하듯 써먹은 게 여러모로 마음에 걸리긴 합니다. 이미 FTL이 나오는 시점에서 대통일 이론을 오용하는 게 무슨 잘못이겠냐마는, 뭐랄까, 작품 주제상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하지만 다음부턴 이런 식으로 마음에 걸리는 개념 오용은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반성하고 정진하겠습니다. 아, 그렇다고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께 잘못이 있는 건 아닙니다. 작품을 즐기는 방식은 많고 다양하니까요. 저도 딱 그부분만 눈감고 제 작품 읽으면 재미있어 합니다.
인류의 새로운 진화, 그것은 달팽이처럼 등껍질을 달고 사는 것…! 어느 의미로 부동산 문제와 얽혀 있어 강남 하늘 재개발과 엮인 듯하지만, 실은 작품 서두에 제시된 대로 키워드는 집이나 등껍질 자체보다는 ‘진화’에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묘하게 세계관 구성이나 설정이나, 이미지로서나 러프한 감을 지울 수가 없더라고요. 뭐랄까, 근본적으로 사람 등에 등껍질이 달렸는데 그것이 집으로 기능하고 마음대로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다는 설정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가 제시됐다면… 하는 바람도 있었네요. 골뱅이 무침 같은 걸 생각하면 사람의 뼈도 그만큼 연체동물화 됐다는 말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요. 반전에 대한 것도 러프하게 제시된 지라 투박하단 인상이 좀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멍 작가의 “후루룩 쩝쩝 맛있는”이란 작품도 떠오르더라고요. 물론 민달팽이 쪽이 좀 더 호러틱한 건 맞습니다.(작품 전개는 이멍 작가님 쪽이 좀 더 호러틱하지만요) 유년기의 끝 같은 작품도 떠오르고요. 재미있게 읽었기에 아쉬움이 많이 떠오른 작품이었습니다.
직역하면 ‘연루된 달’쯤으로 볼 수 있을까요? 하인라인의 소설 중 하나가 떠오르는 설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매의 서사는 같은 브릿G 작품인 사피엔스 작가님의 세 가지 문제가 떠올랐고요. 자매 서사에서 언니의 역할은 늘 이런 건가 싶어 형제밖에 없는 저로선 다소 신기하게 다가왔습니다. 다만 세 가지 문제와 이 작품의 결정적 차이점이라면, 비가역적인 결말이겠죠. 사실 저는 ‘우여곡절 끝에 모든 것이 원상복구되었습니다’ 같은 결말보다는 ‘비가역적인 상흔을 끌어안는’ 쪽을 더 좋아합니다. 엔트로피를 되돌리기보다는 그 증가를 긍정하는 방향이라까요. 그런 점에서 언니의 희생과 그 이후의 결말부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쉬운 결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브릿G의 안목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동시에 브릿G의 투고풀이 결코 질낮지 않다는 데에 이 단편집만큼 증명하기 쉬운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6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앤솔로지가 있긴 한데, 제가 6회에 참여했다면 이 평가가 6회에 가 있었겠죠?ㅎㅎ 어느 쪽이든 저를 포함한 작가님들의 저마다의 가능성을 다양하게 품고 있다는 걸 확인한 좋은 독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발굴한 브릿G의 안목은 날이 갈수록 고평가를 받아야 마땅하겠죠. 그러기 위해서라도 부단히 애를 써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