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동물은 진화한다. 인간도 동물이다. 고로 인간은 진화한다.
오늘도 지하철은 한산했다. 출근하는 사람으로 붐벼 발 디딜 틈 없다던 이야기는 모두 옛말이었다. 이러다 적자가 나 지하철 운행을 멈추는 게 아닐까 걱정될 만큼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의자 끝자리는 모두 채워져 있었다. 나는 하는 수없이 의자 중앙에 앉았다. 3년 전 대대적인 수리와 함께 의자 좌판 길이를 늘리면서 백팩을 벗지 않고도 편히 앉을 수 있게 되었다. 대신 목을 받칠 수 없어 목베개가 지하철 탑승 필수품이 되었다. 요즘에는 내 옆자리 여자의 것처럼 백팩에 목베개가 붙어 나왔다. 내 백팩은 성장이 끝난 7년 전에 산 것으로 목베개가 없었다. 나는 등만 기대고 앉아 스쳐 지나가는 서울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 앞으로 백팩을 멘 사람들이 지나갔다. 백팩 위에 크로스백을 메거나 핸드백을 든 사람은 있어도 백팩을 메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사무실은 사당에 있지만 오늘은 현장으로 출근하는 날이었다. 나는 강남역에서 내렸다. 벌써 스물다섯 번째 청소를 부탁한 지현 씨네 집이 그곳에 있었다. 지난번까지만 해도 성수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이직을 했다더니, 새 회사 근처로 자리를 옮긴 듯했다. 잘된 일이었다. 다음 고객의 집이 역삼에 있었다. 지현 씨네 청소가 빨리 끝나면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을 듯했다. 오늘은 달콤한 바닐라 라테가 끌렸다. 나는 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현 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도착하기 10분 전입니다.
우리 민달팽이 클린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 중, 이 문자에 답하는 고객은 백 명 중 한 명뿐이었다. 꼭 답을 주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십 분 뒤에 청소가 불가능하거나 위치가 바뀌었을 경우 연락을 주는 것이 예의인데, 약속된 장소에 도착해서야 그 사실을 통보하는 고객이 대다수였다. 그뿐인가, 약속 시간을 어기는 것은 당연하고, 당장 처리해야 할 급한 일이 있다며 하염없이 집 밖에 세워두는 고객도 수두룩했다. 그런데 지현 씨는 어떤가. 특별한 일이 없어도 도착 예정 문자에 답을 주고, 청소가 끝나면 고생하셨다는 문자까지 보내주었다. 부득이하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기운 없던 직원이 방문하자 청소할 거리가 아직 남았음에도 이만하면 됐다며 돌려보내고 따뜻한 차까지 대접한 사람이 바로 지현 씨였다. 그런 지현 씨가 약속된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도 답이 없었다. 그리고 약속한 장소에도 보이질 않았다.
다섯 통 넘게 전화를 걸었지만 지현 씨는 받지 않았다. 여섯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 지현 씨의 핸드폰이 고객님이 통신 불가 지역에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회사에 연락해 내가 맡지 않았던 지난 열두 번의 신청 중에 오늘과 같은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내가 알고 있던 대로 회사는 지현 씨가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는 답을 주었다. 아무래도 지현 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 듯했다. 나는 고민 없이 근처 지구대를 찾았다.
“어떤 일로 오셨어요?”
“실종 신고하러 왔는데요.”
“가족이세요?”
“아니요, 저희 고객이 연락을 받지 않아서요.”
키보드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순경의 손이 일순 멈추었다.
“그러니까 연락이 안 되는 고객을 찾아달라는 말씀이세요?”
“네.”
“못 받으신 돈이라도 있으신 거예요?”
“아뇨. 그건 아닌데…….”
순경의 손이 키보드에서 완전히 내려왔다.
“저기 선생님, 요즘 실종자가 몇이나 되는지 아십니까?”
내 대답을 듣고자 한 질문이 아니었다. 순경은 내가 숨을 들이켜는 사이 제멋대로 대답을 해버렸다.
“하루에만 몇 천 명이에요, 몇 천 명. 뉴스 안 보세요?”
순경은 마치 내가 그 일의 주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혐오스러운 눈빛을 숨기지 않더니 교대 시간이라며 냅다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순식간에 진상 민원인이 되었고, 지구대 밖으로 나올 때까지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의 못마땅한 시선을 뭇 감내해야 했다. 답답한 마음에 편의점에 들러 탄산음료를 구매했을 때에야 나는 깨달았다. 그들이 내게 불친절했던 이유를 말이다. 백팩이 없었다. 약속 시간 전에 들렀던 지하철 화장실에 가방을 두고 온 것이다.
민달팽이 클린 서비스 직원으로서 맨등을 보이는 것과 그냥 나, 정한율로 맨등을 보이는 것은 엄연히 달랐다. 민달팽이 클린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내가 등껍질이 없는 무갑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 사람들은 백팩을 메고 있으면 내가 무갑인인지, 유갑인인지 몰랐다. 백팩 안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지만 허락도 없이 타인의 가방 안을 확인하는 건 범죄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무갑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범죄가 아니었다. 아직까지 그건 비도덕적 행위에 불가했다.
나는 서둘러 강남역 화장실로 향했다. 다행히 가방이 그대로 걸려있었다. 다행이지 않은 건, 그 가방의 주인이 누구인지 보기 위해 지하철 미화원 몇몇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쑥덕거리는 목소리와 신기해하는 눈빛을 애써 외면한 채, 백팩을 둘러맸다.
“무겁던데 그냥 두고 다니지 그래요?”
같은 복장에 같은 머리, 같은 색 립스틱까지 발라 어떤 한 가지 특징으로 특별할 수 없는 두 사람 중 미세한 차이로 키가 작은 미화원이 내게 말했다.
“놀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껍질 없으면 뭐 어떻다고. 나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집 좀 받게. 무갑인은 나라에서 집 주잖아요. 우리는 이것도 집이라고 한 평도 안 주잖아. 길거리 생활 지긋지긋해. 밤에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으면 아주……!”
나는 두 미화원 사이를 파고들 듯이 빠져나와 지하철 개찰구를 향해 내달렸다. 카드를 찍고 내려오자 지하철이 도착했고, 나는 어디로 가는 지하철인지도 모르면서 몸을 실었다. 숨을 헐떡이는 내게 쏠렸던 시선은 지하철이 출발하면서 산산이 흩어졌다. 나는 승객들 사이에 몸을 섞지 못하고 출입구에 붙어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지현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현 씨는 아직도 부재중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남겼다.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이 문자 보면 바로 연락 주세요. 기다리고 있을 게요.
다음 고객에게 가려면 반대쪽에서 지하철을 탔어야 했지만 2호선은 순환선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지현 씨와의 약속이 취소되면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나는 지하철 의자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서서 검은 창에 비치는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직 한 집도 청소하지 않았는데 다섯 집은 청소한 것처럼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일찍 퇴근하고 싶지만 두 건의 청소가 남아있었다. 유갑인이었다면 가까운 노지에 등껍질을 펴고 한숨 돌릴 텐데. 나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텅 빈 백팩을 메고 있는 무갑인이었다. 나는 다음 약속 장소에서 이십 미터쯤 떨어진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우리의 고객은 모두 유갑인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등껍질 안을 청소하는 사람들이었다. 유갑인 스스로 등껍질 안을 청소할 수 있지만 말 그대로 등껍질, 등에 붙어있는 껍질이다 보니 손이 닿지 않는 곳이 많았다. 그곳까지 꼼꼼히 손을 넣어 청소해 주는 것이 바로 우리 민달팽이 클린 서비스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