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돔을 뚫는다는 거죠?”
수상하기 짝이 없는 정비 계획 입안 제안서를 훑어보던 강남구청 재개발사업과 재개발기획팀 김명조 주무관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아파트로? 돔을? 뚫는?”
민원인은 중단발의 여성이었고, 명조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정확한 나이는 가늠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그녀는 남의 옷을 잘못 입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헐렁한 슈트 차림이었다. 그녀가 상담용 탁자에 두 손을 올렸을 때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구할 수 없다는 빈티지 시계가 소매 틈으로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명조는 그것이 지난 세기에 생산을 멈춘 롤렉스라는 브랜드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왜요? 안 될 거 같아요?”
톡 쏘는 듯한 말투였다. 명조는 곁눈질로 민원인의 얼굴을 한 번 살피고 다시 전자문서로 눈을 돌렸다.
“이게 지금…… 총 높이가 몇 미터죠?”
“정비 계획안 설명서 보세요. 8565미터예요.”
명조는 전자문서를 빠르게 몇 번 스크롤하다가 현진의 자리를 돌아보았다. 팀의 차석인 그녀는 책상에 띄운 서너 명의 홀로그램 얼굴들과 한창 열띤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대개 그렇듯 중재의 역할을 맡은 그녀의 상황이 어지간히 복잡하다는 사실은 붉어질 대로 붉어진 그녀의 목덜미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명조는 한숨을 쉬었다.
명조는 문득 8565미터가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작년 용산구에 착공한 빌레니엄인지 뭔지 하는 빌딩의 높이가 8000미터 언저리였던 것을 기억해 낸 것이다. 시행사에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자 세계에서도 마흔여덟 번째로 높은 건물이 될 것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었다. 그 효과는 뜨뜻미지근했다. 이미 초거대 건물(높이 5000미터를 넘는 건물들이 그렇게 분류되었다.)이 너무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굳이 7000미터나 8000미터를 구분하지 않았고, 떠들썩한 홍보 문구란 높은 월세를 의미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안을 작성한 자는 대한민국 높이 1등이라는 타이틀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분명했다. 돔을 뚫어야 할 만큼.
명조는 머리를 긁적이며 전자문서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여기에 주민들이 동의했단 말이죠?”
민원인은 가볍게 턱짓을 했다. 서류를 보란 뜻이었다. 이미 살펴본 것만으로도 토지등소유자 동의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서류가 정확하게 갖춰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명조는 아직 이 제안서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돔이 달걀도 아니고…… 굳이 이렇게 해야 할까요?”
민원인의 입가에 짧게 미소가 스쳐 갔다.
“주무관님, 서울에 돔 올린 지 얼마나 됐습니까? 자그마치 54년이에요, 54년. 탄소나노튜브를 하나하나 꼬아 가며 저걸 지었어요. 요새는 그렇게 공사하면 잡혀가요. 드론들이 달라붙어서 보수를 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지. 지금 자카르타에서 돔 재건축 들어간 거 알죠? 서울도 멀지 않았다고 봐요.”
민원인이 두 손을 가슴 쪽으로 조금 잡아당기자 손목시계에 박힌 천연 다이아몬드가 반짝였다.
“우리가 노후 돔에 기둥 하나 박아 준다고 생각해요. 철거한 돔 타일은 싹 닦아다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할 거고.”
명조는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민원인의 말대로 건축 공법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었다. 구시대의 건축물들은 가차 없이 스러져 갔다. 구청에도 온갖 재개발 기획들이 쌓여 가고 있었고, 명조는 지난 6개월 동안 야근 없이 하루를 마감한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골치 아픈 일들이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명조는 손깍지를 끼며 제안서가 담긴 전자 문서를 505층 창문 밖으로 내던지는 상상을 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그가 즐겨 사용하는 상상 속의 폭탄으로 먼저 폴리머 창을 폭파시켜야 했다. 민원인의 거침없는 태도와 서류의 빈틈없는 모양새를 통해 명조는 높은 확률로 이 장난 같은 기획이 통과될 것이라는 끔찍한 예감을 받았다. 그것은 명조의 기존 업무 위로 떨어지는 폭탄이나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명조에겐 아직 한 가지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명조는 다시 전자문서를 집어 들었다.
“네, 그렇게 생각이 확고하시다면야……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허가가 날 수 있을지 없을지 제가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명조는 전자문서를 들여다보는 척하며 다음 말을 할 타이밍을 쟀다.
“그런데요, 선생님. 죄송한데 부서를 잘못 찾아오셨어요. 기존 아파트 상부에 증축하시려는 거잖아요. 그건 재건축사업과로 가셔야 해요. 저희는 재개발사업과고요.”
재건축이 기존 건축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사업만을 의미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소재 공법으로 건설된 건축물의 증축 또한 재건축이라고 부른다. 지반과 외벽 보강 공법을 통해 기존 건축물 위로 수 킬로미터 넘게 증축하는 일이 흔해졌고, 웬만한 신축 공사보다 규모가 큰 그런 공사들을 재건축사업과에서 담당한다. 한편 재개발은 구시대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부수고 새롭게 신소재 건물을 짓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신소재 건물은 구시대 것보다 훨씬 규모가 커서 구시대 건물 여러 동을 허물어야 공사 부지를 확보할 수 있다. 재개발사업과에서도 그런 사업만을 취급한다. 이 경우는 기존 3.5킬로미터 높이의 아파트를 8.5킬로미터의 초거대 건물로 증축하려는 것으로 재건축이 분명했다.
민원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움직임에 커 보이기만 했던 재킷에 맵시 있는 선이 만들어졌다.
“거긴 방금 들렀어요. 건물은 재건축하는 게 맞으니까. 하지만 저흰 재개발도 해요. 저 위, 하늘 말이에요.”
민원인이 집게손가락으로 재개발사업과 사무실의 천장을 가리켰다. 명조는 입을 다물고 전자문서를 스크롤했다. 정비 계획안 도면을 보자 건물 주변 배경이 이상한 형태의 패턴으로 채워져 있었다. 명조는 곧 그 패턴이 돔 타일의 삼각형 형태가 찌그러진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경사진 돔을 뚫고 나온 건물을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그린 배치도였다. 말하자면 건물이 뚫고 나갈 하늘의 돔 면적이 곧 재개발 정비구역인 셈이었다.
명조는 전자문서를 몇 번 더 스크롤하고는 힘없이 그것을 내려놓았다. 이제 명조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검토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민원인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명함 아직 안 드렸죠? 잘 부탁드려요.”
민원인이 전자지갑을 꺼내 명함 발송 버튼을 눌렀다. 명조도 전자문서에 자신의 명함을 띄운 후 민원인에게 발송했다.
“오! 명조 주무관님이시네요.”
명조도 자신이 받은 전자명함을 확인했다. GT개발 대표라는 직함 옆에 고딕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민원인이 다시 한번 빙긋 웃었다.
“또 봅시다.”
이 모든 것이 말장난 같았다.
–
“그 사람, 유명한 사람이야.”
빌딩 옥상 매점에서 커피가 프린트되는 것을 기다리며 현진이 말했다. 옥상 이용권은 두 달에 한 번꼴로 쓸 수 있었기에 점심시간에 옥상 매점을 이용하는 것은 팍팍한 일상의 작은 낙이었지만, 명조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현진이 갓 프린트된 커피를 명조에게 건넸다.
“별명이 화성 불도저인가 그럴 거야.”
“웬 화성이요?”
“그 사람이 여태 지은 집들을 다 팔면 그 돈으로 화성 테라포밍도 거뜬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대.”
명조는 쓴웃음을 지었다. 현진의 커피까지 프린트가 완료되자 둘은 북적거리는 매점에서 빠져나와 옥상 정원으로 들어섰다. 아네모네가 만개한 정원 곳곳에 패딩을 껴입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들은 돔을 투과해 쏟아지는 햇빛과 함께 짧지만 달콤한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구청이 위치한 빌딩은 높이가 2.3킬로미터쯤 되는 580층 건물로 강남구에서는 큰 편이 아니었기에 일조량이 많지 않았다. 건물 그림자가 짧아지는 점심시간에야 한 줌의 햇빛이 옥상 표면에 떨어질 수 있었다.
명조와 현진은 빈 벤치에 앉았다. 명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의 초거대 건물을 오르내리는 플라잉 카들의 모습이 마치 허공을 기어가는 개미 떼처럼 보였다. 그 행렬은 이웃 건물로 이어지며 마치 건물들끼리 실뜨기라도 하는 듯이 복잡한 무늬를 하늘에 그려 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명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어떤 부모가 자기 딸 이름을 딕이라고 지을까요?”
현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비즈니스를 위해서 개명한 거 아닐까?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이름이잖아.”
“유럽의 고딕 건축, 뭐 그런 걸 연상시키려고요? 센스 한번 희한한 사람이네요.”
현진은 가만히 커피 향을 맡았다. 명조는 커피잔을 양손으로 든 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의 정점에서 내리꽂히는 햇빛에 눈이 부셨지만, 구름 너머 먼 하늘에서 희미하게 돔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파란 종이에 하얀 색연필을 엷고 고르게 칠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이해가 안 돼요. 넉넉하게 돔 중심부 쪽, 그러니까 용산구나 성동구, 아니면 강남구라도 압구정동이나 청담동에 지었다면 아무 문제 없는 거잖아요. 대체 왜 돔 높이가 7.5킬로미터인 개포에 8.5킬로미터짜리 아파트를 짓는 거예요?”
현진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지나가는 말투로 답했다.
“강남이잖아.”
현진의 대답은 묘하게 그럴듯했다. 명조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가슴속의 화는 전혀 가라앉지 않았고, 명조는 계속해서 돔을 노려보았다. 누군가는 저토록 거대한 돔을 지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돔을 뚫을 아파트를 지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과연 그럴까?
도시를 덮은 돔의 크기가 반경 10킬로미터를 넘어서 성층권에 닿을 정도가 되면 사람들은 그 도시를 메가 돔 시티라고 불렀다. 반경 12킬로미터의 돔을 지음으로써 서울이 세계 스물세 번째 메가 돔 시티가 된 지도 벌써 50여 년(정확히는, 민원인의 말대로 54년)이 지났다. 적외선 일부를 반사함으로써 죽음의 폭염을 막아 내는 돔의 쓸모는 이미 오래전에 입증되었지만, 그것의 건설 과정은 절대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이야기는 공무원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서울 돔 건설 사업은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돔공사와 서울시의 협조하에 진행되었다. 초기에 한국돔공사는 몇 개의 소규모 돔으로 서울을 나누는 안을 제시했지만, 서울시와 시민들은 그것을 단호히 거절했다. 그들은 메가 돔 시티를 원했다. 안전성 검토를 통해 건설 가능한 돔의 최대 범위가 반경 12킬로미터로 정해졌다. 그러자 가장 중요한 문제, 돔의 위치를 선정하는 문제가 남게 되었다. 직경 24킬로미터의 원은 어디를 중심으로 하더라도 서울 면적 전체를 덮을 수 없었다. 돔 밖으로 잘려 나가는 지역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인류 역사상 다시 없을, 부동산 가격 상승 모멘텀이 걸린 문제였다.
난장판이 벌어졌다. 중구 을지로1가의 빌딩 115층에 자리 잡았던 한국돔공사 사무실의 위아래 각 5층이 전부 시위대로 가득 찼다. 서울시청도 사정이 나을 것이 없었다. 안정권에 있는 부동산 매물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기에 경계 지역 부동산에 대한 묻지마 매입이 줄지어 벌어졌다. 서울 시내에 폭력 신고가 급증했는데, 대부분이 부동산 관련 대화를 나누다 발생한 경우였다. 돔과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다른 모든 이들은 염증과 환멸을 느끼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런 상황에서 서울돔건설조합이 출현했다. 추진위원회에는 재벌 회장을 비롯하여 각계의 자산가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조합 설립 후 그들은 전부 대의원이 되었고, 그중 강남구 청담동에 살던 인물이 조합장을 맡았다. 그들의 주도하에 막대한 출자금이 모였다. 곧 한국돔공사와 서울시, 서울돔건설조합이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되었다. 지지부진한 공청회가 수십 차례 진행된 후, 한국돔공사 사장이 최종적인 건설 계획안을 발표했다. 계획안 속의 돔은 서울 동남쪽으로 상당히 치우쳐 있었고, 덕분에 서초, 강남, 송파구가 대부분의 면적을 보존할 수 있었다. 당시 화제가 된 어느 만평에서는 그 상황을 돈의 블랙홀이 돔을 끌어당기는 모습으로 그려 냈다.
서울에 돔을 짓자는 게 아니라 핵을 떨어뜨리자고 결정한 듯한 반응이 이어졌다. 고소와 고발이 난무했고, 시위대는 100배로 늘어났다. 사람들은 어느 언론이 이 계획안에 만족하고 있는지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그 와중에 서울의 마지막 그린벨트였던 북한산이 돔 안에서 너무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예 돔 건설 철회를 요구하며 자재 공장을 테러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한국돔공사 사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진 사퇴했고, 서울돔건설조합 조합장은 암살 시도에도 살아남았지만 결국 비상대책위원회에 의해 해임되었다. 서울시장은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는데, 어차피 그의 임기 안에 돔 공사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차차기 시장 대에야 착공이 이루어졌고, 그때 확정된 돔의 위치는 이전의 것에서 800미터 정도 움직였을 뿐이었다.
수십만 대의 드론이 투입된 공사는 별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유난히 튼튼하고 반질반질한 돔이 지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계획하고 만들었던 그 누구도 지상의 건물이 돔을 뚫어야 할 필요성이나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못했을 것이다. 절대로.
“사람들은 좋아할걸.”
현진의 말에 명조는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안 그래도 돔의 가시광선 투과율이 계속 떨어진다고 난린데, 돔 밖에서 하늘을 볼 수 있다니. 확실한 메리트잖아?”
명조의 머릿속에서 즉각 몇 가지 홍보 문구가 떠올랐다. ‘창가에서 느끼세요, 돔 밖의 하늘’, ‘진정한 태양을 만나는 곳, 개포 뭐시기저시기’ 혹은 ‘딴 아파트 높다 하되 돔 아래 아파트로다’, ‘돔을 뚫고! 수익률도 뚫는다!’ 아니, 홍보가 따로 필요 없을 것이다. 허가가 나는 순간 전 국민이, 어쩌면 전 세계인이 이 뉴스를 접하게 될 테니까.
“고딕이라는 사람, 한강 주변에서 한강뷰를 놓고 앞뒤 아파트들 높이 경쟁을 시킨 걸로 유명했어. 한강 바로 앞 아파트를 증축해서 그 뒤 아파트 전망을 가리고, 이후에 그 뒤 아파트를 증축해서 뷰를 돌려준 뒤, 다시 또 앞 아파트를 증축했던 거야. 그걸 똑같이 몇 번 반복하기만 했는데도 그 사람이 기획에 참여한 재건축 아파트들은 모두 분양가를 얼마를 매기든 순식간에 완판되어 버렸어. 뭔가 사람 심리를 자극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지. 그 사람을 무작정 추종하는 투기꾼들도 많아. 그 외에도 성공적인 기획들이 여럿 있었는데, 강남에는 이번에 처음 나타난 거야. 작정한 게 있는 거지.”
“조금 미친 사람 같은데요.”
“어쨌든 돈 벌 줄 아는 사람이지.”
롤렉스의 천연 다이아몬드가 떠올랐다. 명조가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잔머리 좀 굴리면 돈이 펑펑 쏟아지고……. 집 없는 사람은 어디 억울해서 살겠어요?”
현진은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명조는 등을 구부린 채 앞을 내다보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신소재 특유의 무광이 도드라지는 초거대 건물들뿐이었다. 명조는 서울시 주택 수에 대한 실시간 통계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돔 안에 4억 7280만 호 가량의 주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중에 자신의 집이 없다는 사실을 남들보다 조금 더 염세적으로 받아들였다.
대학 졸업 – 공무원 시험 합격 – 감당할 만한 가격의 월셋집을 구해 독립 – 종종 비싼 것을 사 먹고 부모님께 용돈을 보내는 생활. 그것이 명조의 삶이었다. 그리고 명조가 바라는, 삶의 다음 단계는 플라잉 카 구매였다. 자율 비행 이용권과 공영 주차장 주차권을 포함한 플라잉 카 통합 패키지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이 내후년까지였다. 쉬는 날에는 침대에 누워 플라잉 카 전용 홀로그램 영사기의 사용 후기를 찾아보는 것이 명조의 낙 중 하나였다. 플라잉 카가 생긴다면 지긋지긋한 엘리베이터 환승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매일 출퇴근 시간 동안 홀로그램 영화를 한 편씩은 볼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것이 명조가 기대해 봄 직한 ‘미래’였다. 하지만 자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돔 안에서 가장 싼 주택도 명조의 월급을 하나도 쓰지 않은 채 30년을 모아야 살 수 있었다. 신축 초거대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면 그 기간이 몇백, 몇천 년이 될 수도 있었다. 명조에게 자가 아파트란 종교나 마찬가지였다. 사후 세계에 관한 일이니까.
명조의 심기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 것이 분명했다. 현진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어지러워? 얼굴이 왜 이렇게 질렸어?”
“아니, 아니요. 그런 거 아니에요.”
명조는 손사래를 치며 등을 벤치에 기댔다. 고작 2.3킬로미터 옥상에서 고산병 환자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았다. 명조가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런데 돔을 뚫는다 쳐요. 그 사실이 아파트 가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그저 마케팅일 뿐이잖아요. 예전만 해도 자재 강도, 건물 높이 같은 것이 인기의 척도였죠. 그리고 요즘은 다시 커뮤니티 시설이 난리고요. 120층에 걸쳐 골프 코스 18홀을 다 집어넣은 서초 넵투누스 같은 데 말이에요. 교육기관 모시기 붐도 일어서 신림 안드로메다는 아예 서울대를 아파트 안에 입주시켰지요.”
현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 이후에 대치 프로메티아에 휘문고를 집어넣겠다고 해서 우리가 죽을 뻔했지.”
명조도 끔찍한 야근 행진의 시작이었던 작년 겨울을 떠올렸다. 대치 프로메티아 재개발 조합과 인근 초거대 아파트 연합 간의 갈등은 거의 육탄전을 코앞에 둔 상황까지 치달았었다. 결국 프로메티아 측이 계획을 철회할 때까지 재개발사업과는 끝없는 민원 전화를 받아 내야만 했다. 명조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떨치려는 듯 몸서리를 한 번 치더니 목소리를 조금 낮춰서 말을 이었다.
“맞아요. 그런데 그게 다 뭐예요. 결국 집값 올리려는 수작이잖아요. 그런 이슈들을 하나씩 가져갈 때마다 분양가를 얼마나 올렸어요? 고만고만한 아파트 간에 가격 차이가 그렇게나 나는 게 말이 돼요? 파격이라고 하지만, 신물이 나는 파격이에요. 파격을 위한 파격, 뭐 그런 거죠. 다 알고 있잖아요?”
아무래도 그동안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던 모양이다. 명조의 입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모두가 천국에라도 가는 것처럼 기를 쓰고 돔 안으로 들어오려 하는 세상이에요. 그런데 하늘을 좀 더 잘 보려고 돔을 뚫는다? 역시 관심은 받겠지만, 분양가가 나오면 사람들 생각도 달라질걸요? 조금만 차분히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아무리 돈이 넘쳐흐르는 사람이라도 머뭇거리게 되지 않을까요? 이 돈을? 이 정도 메리트에 이 돈을?”
잠자코 듣고 있던 현진이 커피를 마저 마시고 입을 열었다.
“모르지. 여긴 강남이잖아.”
명조는 다시 말문이 막혔다. 잠시 항변할 말을 찾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현진이 손을 가볍게 흔들자 청소 로봇이 굴러와 현진의 빈 커피잔을 가져갔다.
“억지로 이해하려 할 필요 없어. 조금 다르게 만들어진 세계가 있는 거야.”
그것은 12년째 도시계획 업무를 맡고 있고, 그중 7년을 강남구청에서 근무한 재개발기획팀 차석의 말이었다. 명조는 가만히 그 말을 곱씹다 그제야 다 식은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
고딕의 제안에 대해서, 강남구청장은 한국돔공사의 설계안전검토보고서를 추가할 것을 통보했다. 몇 주 후 서류 보완이 완료되었고, 곧 정말로 강남 하늘의 돔이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놀랍게도 명조의 업무 부담은 크지 않았다. 명조는 구의회가 그토록 협조적인 모습은 처음 보았다. 한국돔공사와 서울시청의 담당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일사천리였다.
돔을 뚫는 공사에 대한 여론은 좋을 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이 공사가 돔의 내구성과 돔 내부 환경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했다. 시민 단체들이 이로 인해 발생 가능한 여러 문제들을 제기했다. 시행사는 한국돔공사의 평가를 근거로 삼아 논란에 대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돔을 뚫을 필요성을 공감하지 못했고, 이 공사에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많았다. 해외 언론에서도 이 공사는 한국인들의 기행 정도로 소비되었다. 하지만 사업 시행에는 문제가 없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고딕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진행을 돕기 위해 조합 창립총회에 참석했던 명조는 그 광경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고딕은 시행사 대표 자격으로 연단에 섰다. 그녀의 첫마디는 “안녕하세요, 하늘을 뚫을 조합원 여러분.”이었다. 명조는 그 순간 총회장의 공기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기념사를 마치며 “저만 믿고 따라오십시오.”라고 말하자, 강남구 개포동의 885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뒤흔드는 듯한 박수 소리가 잇따랐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시공사가 선정되었고, 수천 대의 드론이 공사장에 투입되었다. 이후 명조는 옥상에 올라갈 때마다 습관적으로 동남쪽을 확인했다. 1년이 지났을 때, 드디어 초거대 건물 스카이라인 너머로 그 아파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론들이 건축 AI의 지휘에 맞춰 벌떼처럼 그 주변을 비행했다. 두 달마다 아파트는 쑥쑥 커졌다. 또 1년이 지났을 때, 아파트가 돔에 닿았다. 옥상에서도 고개를 힘껏 치켜들어야만 그 첨단을 볼 수 있었다.
시행사는 승부수를 두었다. 돔을 철거하는 모습을 생중계했던 것이다. 그것은 공사 현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치과 진료실을 들여다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드론의 부속지에 붙어 있는 도구가 치과용 핸드피스처럼 보였다. 드론들이 정교한 움직임으로 프레임 결합을 해체하자 돔 타일이 삐걱거렸다. 이어 드론 세 대가 날아와 삼각형인 돔 타일의 꼭짓점 부분을 각각 붙잡았다. 매복된 사랑니를 뽑아내듯 돔 타일이 하나씩 들어 올려졌고, 이 모든 작업 과정이 홀로그램으로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이색적인 영상이 사람들에게 묘한 쾌감을 준 것이 분명했다. 돔 철거 영상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 특히 인기가 있었던 것은 돔 밖에서 바라본 공사 현장의 타임 랩스 홀로그램이었다. 지표에 돋아난 작은 지구처럼 광활하게 펼쳐진 돔. 치과 의사처럼 분주하면서도 빈틈없이 움직이는 드론들. 서서히 모습을 갖추는 단 하나의 수직선, 아파트.
명조는 그 영상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명조의 여가 시간 대부분을 책임지는 홀로그램 영상 플랫폼, 홀로라이프의 알고리즘이 그를 영상으로 이끌었다. 명조는 침대에 누워 웃기지도 않은 정비 계획안이 실현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오른 명조는 그의 집 AI를 호출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딕 건축에 대해 알려 줘.”
AI는 고딕 건축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읊었다. 오래전 학교에서 배웠던 것 같은 내용이었다. AI의 설명 중 한 구절이 명조의 머리에 남았다.
‘중세인들의, 신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나타냈다.’
그 신이 돈의 신을 말하는 것이라면, 현대인들도 다를 게 없어. 명조는 입술을 삐죽이며 생각했다. 해당 홀로그램의 조회수는 사흘 만에 10억 회에 이르렀다.
아파트 이름은 ‘개포 오버 더 돔’으로 결정되었다.
일반 분양이 시작되었고, 돔 밖으로 노출된 고층들은 로열층으로 구별되었다. 이 로열층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모델 하우스는 실제 돔 밖의 층에 지어졌는데, 방문객들에 의해 커다란 통창을 통해 돔을 내려다보는 거실 이미지가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돔을 내려본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돔뷰라는 말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다양한 각도로 돔뷰를 담은 사진들이 그동안 제기되었던 무수한 논란들을 덮어 버렸다. 로열층과 일반층의 분양가는 수십 배까지 차이가 났다. 하지만 로열층들의 1순위 청약 경쟁률은 1792대 1을 기록했다. 서울에 돔이 세워진 이후, 강남구에서 가장 높은 경쟁률이었다. 때마침 내려간 금리의 혜택을 본 셈이었지만, 그럼에도 업계의 예측을 훨씬 상회하는 결과였다. 개포 오버 더 돔은 분양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모든 계약이 완료되었다. 이에 영향을 받아 서울 아파트값이 간만에 상승세를 보였고, 뉴스에서는 오버 더 돔 효과라는 말이 회자되었다.
그사이 명조는 윗집의 층간 소음 문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월세가 조금 올랐고, 이사비 등의 지출이 생기는 바람에 플라잉 카 구매는 조금 미루기로 하였다. 명조의 일상은 대체로 변함이 없었지만, 한 가지는 달라졌다. 명조는 더 이상 옥상에 올라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