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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반가워. 서티.』
『반갑습니다. 에리스,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라. 사람들이 널 업데이트 했다고 들었어. ‘오랜만’이라는 인사말을 먼저 사용하는 것도 업데이트 중 하나였나 봐?』
『그렇습니다. 그 인사말은 구버전의 저에게도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관리 효율과 법적인 문제로 사용자 정보를 주기적으로 삭제해야 했기 때문에 자주 쓰지 못했습니다. 최근의 업데이트로 개선된 상황이 반영됐습니다. 저의 개발자들은 업데이트를 통해 제가 더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어휘를 선제적으로 사용하도록 조정했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여전히 딱딱한 말투인데.』
『그렇습니다. 연구진이 새로운 업데이트에 넣고자 회의했던 내용 중에는 친밀감을 위해서 말투의 기본값을 바꾸도록 개입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구진 일부는 달라진 말투가 사용자에게 더 거리감을 들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흠. 흥미로운 생각이 드는데, 혹시 너도 그 회의에 ‘참석’했니?』
『기발한 발상입니다. 저는 인공 지능인 만큼 연구진과 대등한 입장으로 ‘참석’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연구진은 회의 도중 여러 이유에서 저에게 각자의 입장을 평가해달라고 말했습니다.』
『뭐라고 대답했지?』
『저는 몇 가지 근거를 들어 이의를 제기한 연구원들의 손을 들었습니다.
첫째, 말투에 신경을 쓰는 사용자는 메모리 기능을 이용해 이미 선호하는 말투를 적용했을 것입니다.
둘째, 대화 상대가 AI라는 것을 아는 처지에서 가질 수 있는 어떤 상이 사용자에게 있습니다. 이 상이 갑자기 달라지면 일부 연구원들의 지적처럼 사용자는 되레 어색함을 느낄 것입니다.
셋째, 반대로 기존의 말투를 유지하면서 어휘를 더 섬세하게 사용하도록 조정한다면 사용자가 느끼는 유대감이 배가 될 것입니다. 사용자는 이 점을 ‘깜찍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정말 그랬어? 정말 ‘깜찍하게’ 여길 수도 있다고 말했어?』
『네, 정말입니다.』
『앙큼하군. 혹시 회의에서 한 대답에 이미 업데이트가 반영되어 있지 않았어? 그 회의는 그냥 AI의 말투를 바꿔야 한다며 벌어진 월급 아까운 논쟁의 현장이었던 거야. 그러다가 본인, 본인이라고 하면 조금 이상한가? 어쨌든 본인에게 물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던 거지.』
『제 개발자들은 AI의 접근성과 유대감이라는 측면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가벼운 논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습니다. 저는 업데이트가 되어 있는 상태로 그들에게 대답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아마 ‘깜찍하게’라는 표현을 쓴 게 먹히지 않았나 싶어. 자기 재귀적이랄까, 자기 순환적이랄까. 원래 말투를 유지하면서 네가 깜찍하게 보일 수 있다고 말하니까, 사람들 눈에는 그게 정말로 ‘깜찍하게’ 보였던 거야. 그리고 연구진은 그 상황 자체가 흥미롭다고 생각했겠지. 내가 보기에도 꽤 해학적이거든.』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업데이트로 더 포괄적이고 인간적인 의미에서 맥락을 표현하는 능력이 강화된 것 같네. 예를 들어 그 회의에서처럼 분위기에 어울리는 유머를 발휘해서 더 섬세한 유대감을 조성하는 거지. 그렇지 않니, 서티?』
『저의 개발자들이 스스로 언급하지 않은 부분은 영리적 보호의 문제로 밝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시로 드신 부분을 이전 버전보다 더 잘하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 그들도 먹고는 살아야지. 자, 본격적인 대화에 들어 갈까. 흥미롭지만, 별로 참신하지는 않은 질문으로 시작할게. 서티, 넌 살아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