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픽1:우주를 유영하는데는 방향이 없지요 이달의큐레이션

대상작품: <어느 우주인의 소원> 외 7개 작품
큐레이터: 담장, 23년 4월, 조회 145

편집자의 추천과 편집장의 시선을 통해 작품을 소개하는 브릿G 운영자분들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부러워해서 제가 직접 큐레이션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읽으려고 침 발라둔 거 전부 운영자분들이 추천작으로 올려두시더라고요. 제 취향이 인정받는 것 같아 기쁘면서도 종종 추천평을 작성하는 분의 자리를 노리고 싶어지게 됩니다.

 

흔히들 우주, 하면 스페이스 오페라나 아주 먼 곳까지 가는 이야기를 상상하곤 하죠. 그러나 가장 가까운 곳이야말로 먼 곳이기도 합니다. 제가 인간 외의 존재가 인간의 속성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듯, 가장 먼 곳으로 돌아가야만 볼 수 있는 가까운 것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번에 제가 준비한 소설 몇 개는 우주를 탐험하는 낯설고도, 익숙한 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게 단편 위주로 준비했으며 중단편 소설 중에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도 몇 개 끼워넣어 두었습니다. 전부 다 제가 재밌게 읽은 작품들이지만, 그중에서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 작품에는  :heart: 를 붙여두었습니다.

 

 :heart: 어느 우주인의 소원

” A를 죽인 이유 말입니까?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탐사 대원 A의 사인은 자살이지 않습니까. “

다이애나 시리즈의 인공지능인 화자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먼 우주까지 도달하는 것이 목적인 탐사 프로젝트에서 모든 인간들을 상담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우주선의 함장 J는 탐사대원 A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고 상담용 인공지능이 그를 죽였다고 생각해 대화를 이어나갑니다. 함장의 대사는 나오지 않은 채 오로지 인공지능의 말만 등장시키며 그가 어떠한 대답을 했는지 추측하는 묘미가 색다른 SF 호러 단편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대화 끝에서 무엇을 알아낼 수 있을까요?

 

아이스크림

“지구인? 들리시나요?”

“당신의 집에는 냉장고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맞습니까?”

개구리가 노트북을 삼킨 포스트잇을 던지고 고양이는 샤프심과 함께 작동하다… 라는 알지도 못할 말이 번역기에 뜨고 ‘나’는 자신의 앞에서 초조하게 두리번거리는 외계인을 마주합니다. ‘나’는 집에 있는 냉장고를 빌려주면 금괴 5kg을 주겠다는 제안에 외계인을 선뜻 집 안으로 들입니다. 은은하게 유머스러운 SF 단편으로 다 읽은 후에는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작품입니다.

 

 :heart: 창공의 등대

“안녕, 기분은 어떤가요? 먼 우주에서 듣고 있을 낯선 사람…”

방송 전파 송신기를 뜯어 고치며 먼 우주로부터 들려오는 주파수를 몇 년이고 수집해온 에르벤은 외계에서 자신에게 보낸 다정한 음성을 들으며 그와의 만남을 꿈꿉니다. 아무런 의미도 없어보이던 신호를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는데 몰두하고, 그 해석이 비로소 끝났을 때 그를 만나러 아주 머나먼 행성으로 고민도 없이 떠난 에르벤은 얕은 물 속에서 해삼 모양의 외계인을 발견합니다. 사랑으로 울렁이는 무지개빛 비눗방울과도 같은 다정한 SF 로맨스 중단편으로, 사랑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은 사랑 이야기와 인외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heart: 어스

우리가 같은 유전정보를 가진 서로를 돕고 지키게 하는 것은 작은 스위치 하나를 켜는 것만큼이나 간단하고 명료한 일이었다.

그러니 이 스위치가 켜져 있어야만이 개체는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의 존재와 우주의 존재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먼 미래에 모행성처럼 우주의 다른 곳에 연결될 수도 있고 우주에서 온 존재이고 우주와 하나가 될 거라는 걸 고민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유전 정보이자 서로가 얽혀 있는 커다란 군집입니다. 그들은 먼 우주를 향해 떠나는 길고 긴 여행 동안 유실될 위험을 무릅쓰고 안정적인 전송 방법을 택하기 위해 몇 가지 스위치를 켜 자신들이 이주할 행성에 생명을 만들기로 합니다. ‘우리’는 유전 정보이고 이주한 행성에서 처음부터 다시, 모든 것을 새롭게 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유전적으로 새겨진 정보, 마지막 세 번째 스위치로 인해 언제나 우주 너머의 모행성을 그리워 하겠죠.

 

외계행성 지구에 대한 기록

아 참고로, 잠에 들기 전까지 저는 이 모든 걸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제가 우주에서 온 여행자라는 사실을요. 그래야 더 잘 겪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고, 저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여행자가 그런 선택을 합니다.

지구 방문 계획이 있는 우주인이라면 참고하시오, 라는 작품 소개처럼 서문에서는 우주인인 화자가 지구로 여행을 와 지구의 모든 것들을 경험하고 가겠다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우주인은 지구에서의 일을 조금 더 잘 경험하기 위해 지구에서 머무는 동안의 모든 기억을 잠시 지워버린다고 하죠. 가장 가까운 것이야말로 가장 먼 것이라 하던가요, 지구에 사는 우리는 우주를 궁금해 하면서도 정작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은 때때로 두렵고, 끔찍하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가 지구에 잠깐 여행 온 우주인이라면, 그래서 우리를 지구인이라고 생각하고 이곳에서 살고 있는 거라 생각하면 어떨까요. 소설보다는 수필에 가까운 이 다정한 시선을 지구인의 마음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주 동물원

우주에는 은하마다 개성 넘치는 생명체들이 살고 있었고, 정복 과정에서 멸종되어 가는 토착민들을 불쌍히 여겼었다.

M87 성단의 황제는 멸종 위기 생물들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습니다. 고향 행성이 사라져 우주를 떠도는 동물들과 우주 곳곳에 살고 있는 희귀한 생명체들을 한데 모아, 그는 동물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성단 가장자리에 있던 블랙홀에서 보이저 1호가 걸려들게 되죠. 초단편 SF 소설이지만 그 짧은 문장들의 집합 속에서 끝내 멋진 가능성을 내어주는 작품입니다. 결말부에서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단편이 장편으로도 연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블루, 가끔 무지개

추락하는 우주선의 운전석에 앉아, 나는 처절하게 후회했다. 벼락치기로 면허를 따는데 그친 짧은 경험을 가지고 혼자 이 먼 곳에 오다니. 첫 여행지로 지구를 택하다니. 용감하게 무식했구나.

사고로 인해 예정에도 없던 지구에 불시착하게 된 외계인 블루는 산을 헤매던 도중 집에서 홀로 살고 있는 어린 아이 산하를 만나게 됩니다. 비를 부르는 외계인 블루는 산하의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아이와 함께 지내기로 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집은 블루를 졸졸 쫒아다니는 비 때문에 눅눅해지고 곰팡이까지 끼게 됩니다. 함께 하면 행복하지만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 관계를 블루와 산하는 어떻게 마주볼 수 있을지 따라가는 것이 이야기의 묘미입니다. 잔잔하면서 따뜻한, 위로를 주는 어른 동화책을 읽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heart: 나의 단도박수기

기계 인간들은 몇 가지 미덕을 가지고 있다. 상대할 때에는 단점이고 같은 편일 때에는 장점인 특성이다.

카지노를 밥 먹듯이 들락날락거리는, 아니, 숨 쉬듯이 들락거리는 조종사 ‘나’는 기껏 끌어모은 돈마저 전부 잃고도 도박을 끊지 못해 엄마와의 연이 끊기는 상황에 놓입니다. 그러나 충격도 잠시, ‘나’는 잃은 돈을 다시 복구하겠다는 그야말로 중독자다운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소흥에게 특급 배송에 관한 정보를 얻고 기계인간인 의뢰인을 만나게 됩니다. 날 것인 말투가 굉장히 생동감이 넘치며 꼭 선하지만은 않은 자들의 스릴 넘치는 에피소드에 푹 빠져 다 읽고 난 뒤에도 종종 생각나는 SF 중단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