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가장 불편한 괴물의 귀환

대상작품: <악취> 외 3개 작품
큐레이터: 김시인, 22년 12월, 조회 45

 

바야흐로 괴물들의 전성시대다.

이제 막 작가의 상상 속에서 발아한 신생 괴물부터 좀비처럼 족보 있는 괴물들까지 매체를 종횡무진 휩쓸고 다닌다. 장르문학을 사랑하는 입장에선 퍽 반가운 일이지만 이러한 괴물들의 대호황 이면에는 그만큼 짙은 그늘이 져 있기 마련이다. 세상이 그들 외부로 쫒아냈던 혐오스런 타자, 괴물이 다시 등장하는 건 대개 두 가지 경우다. 사회 내부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공동의 적이 필요하거나, 더 이상 그런 미봉책으로는 안정되지 않을 만큼 사회가 불안하거나.

『내 몸을 임대 합니다』는 종교, 이데올로기, 과학.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던 모든 것들이 더 이상 확실시 되지 않는 이 혼돈의 시대를 대표할 괴물로 신체강탈자를 불러올린다. ‘적과 아군을 구별 할 수 없다’는 신체강탈자의 장르 문법에서 그가 처음 태어나던 1938년과는 다른, 이 시대만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려는 것이다.

 

1. 고장 난 괴물 탐지기

 

앞서 말했지만 신체강탈자의 가장 큰 특징은 ‘적과 아군을 구별 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한 번 생각해보라. 아군들 틈에 변장하고 숨어 있는 괴물을 찾아야 하는데 철석같이 믿고 있던 괴물 탐지기가 고장 나 버렸다면?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악취」의 신체강탈자는 주인공인 최설진이 고장 난 괴물 탐지기로 인해 차근차근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즐거워한다. 실로 ‘악취미’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믿습니까」의 신체강탈자는 어떨까?

사실 그는 「악취」의 신체강탈자와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점잖아 보인다. 누구처럼 주인공을 졸졸 따라다니며 그가 망해 가는 걸 즐겁게 지켜보는 괴물과 달리, 그는 지구를 멸망에서 구원하는 영웅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믿습니까」의 세상에 멸망이 도래 한 것은 신체강탈자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기술력 때문이다.

어찌 보면 「믿습니까」의 신체강탈자는 소설 속 인물들과 독자들의 괴물 탐지기를 고장 내다 못해, ‘적’이 존재한다는 확신까지 빼앗는다는 점에서 「악취」의 신체강탈자보다 성격이 나쁘다.

 

2. 지워지고 바꿔치기 당한 이름표

 

자, 이렇게 괴물 탐지기가 망가지고나자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나’는 ‘나 아닌 것’인 괴물을 보며 내가 누군지 확인해왔더랬다. 그런데 탐지기가 망가지는 바람에 괴물이 보이지 않게 되었으니, 이젠 도무지 내가 누군지 확인할 길이 없어진 것이다! 서둘러 가슴팍을 살펴봐도 남은 것은 이미 지워졌거나 누군가 바꿔치기 해놓은 텅 빈 이름표뿐이다.

 

 

「자애의 빛」에서는 『내 몸을 임대 합니다』의 그 어떤 괴물보다도 약삭빠르게 선과 악의 이름표를 바꿔단 신체강탈자가 등장한다. 「자애의 빛」의 주인공 ‘나’는 콜드 슬립에서 해동된 후 낯설게 변해버린 누나를 관찰하며 혼란에 빠진다. 괴물로 변하고 나면 보통 무감정해지거나 포악해지거나 하는데, 독특하게도 누나는 지독한 이타주의자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처럼 「자애의 빛」은 차근차근 ‘나’를 새로운 궁지로 몰아가며 ‘적과 아군을 구별할 수 없’는 신체강탈자 장르 문법의 지경을 확장해나간다. 이제 신체강탈자는 주체와 타자의 경계를 지워버리면서 ‘나’의 자아마저 확신할 수 없는 새로운 혼란 속으로 독자를 이끌어 가기 시작한다.

 

 

한편 「맑시스트」의 신체강탈자는 소장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시스템 그 자체로, 그는 주인공인 유소유와 독자들에게 ‘자아’란 곧 ‘몸’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괴물이다.

「맑시스트」의 배경은 지금보다 극단으로 치달은 미래의 자본주의 사회다. 따라서 사람들이 종교와 이데올로기에서 찾지 못한 자아감을 몸에서 찾는 경향이 현실보다 더욱 심화되어 나타나며, 몸은 소유주의 개성, 계급, 자본을 결정하는 육체자산으로 거듭난다.

이처럼 「맑시스트」의 신체강탈자는 ‘몸’이 곧 ‘자아’라고 속삭이면서도 결코 그 몸을 온전히 소유 할 수 없도록 함으로서 ‘자아’를 확신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우리를 몰고 간다.

 

3. ‘우리’에 대한 두 가지 가능성.

 

적과 아군, 너와 나를 더 이상 구별 할 수 없다면 이제 가능한 것은 ‘우리’ 뿐이다.

「맑시스트」와 「트루플래닛」은 지금까지 신체강탈자가 보여주지 못했던 그 너머로 상상력을 뻗어 나간다. 「맑시스트」와 「트루플래닛」이 보여주는 ‘우리’의 전망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흥미롭게도 ‘우리’에 대한 전혀 다른 상상력을 보여주는 「트루플래닛」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트루플래닛」의 주인공 고윤아는 현실세계에선 방구석 폐인이지만 게임 세상에선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이처럼 「맑시스트」와 「트루플래닛」은 신체강탈자가 도달할 수 있는 양 극단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탐사함으로서 아직 우리가 도달하지 못한 상상력의 미개척지가 남아 있음을 알린다.

 

이처럼 인간과 퍽 달라 보이는 괴물들에게도 생로병사는 존재한다. 그들은 시대적 불안과 공포 속에서 태어나 당대의 문제를 성찰하게 하고, 더 이상 그 상상력이 유효하지 않을 때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인간과 달리 괴물은 또 다시 그들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찾아오면 멋지게 부활하기 마련이다. 『내 몸을 임대 합니다』는 신체강탈자가 가진 가능성을 여러 방면으로 실험하고 주제의식을 확장시키며 부활의 토대를 차근차근 닦아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괴력난신의 시대에 가장 불편하고, 가장 피하고 싶은 괴물로서 화려하게 귀환할 신체강탈자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 본 리뷰는 제 2회 신체강탈자 문학 공모전 수상작품집 『내 몸을 임대 합니다』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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