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하면 수박, 장마, 바닷가 등등 다양한 주제가 떠오르겠지만 뭐니뭐니해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공포’라고 생각합니다. 공포는 공포 영화, 공포 만화, 공포 소설 등 우리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 알고보면 나름 친숙한 존재입니다. 먹구름이 잔뜩 껴 습한 여름 어느 날 자습 시간에 교실 티비에 공포 영화를 틀어놓고 친구들과 다 같이 모여 ‘저러다 주인공 어떻게 되는 거야?’, ‘무서운 거 지나갈 때 까지 내 눈 좀 가려줘’ 등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며 조마조마하는 마음을 가진 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상반기가 완전히 끝나고 하반기의 시작이자 본격적인 여름의 문턱을 앞둔 오늘은 때마침 작가프로젝트 ‘공포 단편을 써보자!’의 시작 전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약간의 특집(?) 개념으로 예전에 친구들과 같이 봤던 공포영화처럼 몰입해서 읽었던, 저의 취향이었던 공포소설들 몇 가지를 뽑아 보았습니다.
‘이승윤’이라는 이름의 한 남성이 식용 인간으로 먹히게 되는 살인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사람을 토막내고 (아마도) 먹었을 혐의로 체포된 범인은 경찰의 무능을 교묘하게 조롱하는 동시에 무엇이 가장 윤리적인지에 대한 두뇌싸움을 펼치게 됩니다. 현재 시점에서 벌어지는 살인마와 형사의 갑론을박, 그리고 과거 시점으로 진행되는 살인마와 식용인간으로 먹힌 ‘피해자’ 이승윤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면서 가장 비윤리적인 상황 속에서 윤리를 찾는 모순적인 소설입니다.
이일경 작가님의 ‘금기 3부작’ 중 2부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카니발리즘’이라는 소재는 그동안 다수의 매체에서 다뤄진 소재입니다. 가장 유명한 인물을 한 명 꼽아보라면 역시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한니발 렉터 박사가 있습니다. (여담으로 작중 살인마의 별명 역시 ‘렉터’ 입니다.) 하지만 카니발리즘 같은 비윤리적인 소재는 잘못 쓴다면 사람들에게 거부감만 느끼게 할 수 있는 양날의 검입니다. 이미 그 자체만으로 기본적인 거부감을 안고 가야 하는 리스크가 있기에 쉽게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소재 중 하나입니다. 이일경 작가님은 그런 모순적인 소재를 통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도출해내는 글을 쓰셨습니다. 원색을 통해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 저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소설을 읽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금기 3부작 중 1부, 3부인 <눈과 이>, <신을 증명하는 실험>도 추천하는 소설입니다.
‘이 편지는 선생님을 실망시킬 것입니다.’ 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편지는 ‘제자’가 ‘스승’에게 자신이 썼던 연극에 대해 밝히는 내용으로 서막을 엽니다. 서사가 진부하지만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을 잘 표현했다는 호평을 들은 ‘제자’의 연극 ‘신데렐라’는 ‘제자’의 재능을 만천하에 알려주는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자’의 딸이 부자연스러운 골절과 머리 부상을 입게 되고 ‘제자’의 아내는 무언가에 의해 발 뒷꿈치가 깨지는 등 설명하기 어려운 기이한 일들이 연달아 이어지게 되며 점차 ‘제자’의 목을 조여오기 시작합니다.
처음 이 소설을 봤을 때 같이 소설을 읽던 지인과 같이 ‘와, 대박이네.’ 소리를 했던 소설입니다.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인물의 감정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글입니다.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일종의 극중극인 연극 ‘신데렐라’는 신데렐라의 원전 중 하나로 알려진 그림형제의 원전과 유사한 줄거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실 워낙 유명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글의 스포일러이기도 하니 언급은 자제해야겠지만 그 원전 소설을 알고 보는 사람에게는 충격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뒷통수를 갈기는 것 같은 반전을 안겨줄 소설입니다. 스포일러를 많이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정교하고 몰입감 넘치게 잘 짜여진 글입니다. 많은 소설을 쓰신 작가 분은 아니시지만 만약 ‘동숭동’이 취향이시라면 금세 읽을 수 있는 작가님의 엽편 ‘사슴이군요’ 역시 흥미진진하게 읽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나’의 딸인 유진이는 어느 날 갑자기 장롱을 가리키며 자지러지게 울고 ‘검고 머리카락이 많은 아저씨같은’ 것이 장롱 안에서 자신을 쳐다봤다고 증언합니다. 경찰까지 나서서 수색에 나섰지만 집 안에서는 어떤 것도 발견되지 않고 유진이는 이후 사흘 내내 안방을 무서워하는 것은 물론 악몽까지 꾸게 됩니다. ‘나’는 유진이에게 심리적 문제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대학병원 정신과에 데려가지만 ‘나’의 남편은 약도 안 타는데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드냐며 자신만의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에 놓여있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현실 속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글을 다 읽고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부터 공포가 시작되고 그 공포를 은은하게 즐기는 것이 저의 악취미라면 악취미인 취향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 누구나 장롱 혹은 빈 방 안에 괴물이 산다는 상상을 해봤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만약 그 것이 상상이 아닌 현실이라면? 이라는 전개로 진행됩니다. 사실적인 묘사,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진짜로 찾아왔을 것 같은 사건, 그리고 전혀 현실적이지 못한 존재의 조합은 처음 먹어보지만 맛있을 것 같은 퓨전 요리를 보고 먹는 기분을 선사합니다. 같은 작가님의 ‘유폐’, ‘그린티 리조트 유출 문건’, ‘충청도에 있는 교회’ 역시 추천작입니다.
희정은 7년 전부터 살인마 혁진을 옥바라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언론에 혁진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사랑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신의 행적이 밝혀지자마자 직장을 그만둬야했지만 그것을 기회로 삼아 다이어트 도시락 회사를 차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기도 했습니다. 하루하루 혁진의 출소를 기다리던 어느 날, 혁진의 동생 하진이 희정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하게 되고 희정은 약속 장소로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곳에는 하진 외에도 희정의 행적을 언론에 까발린 이슬비 기자가 있었습니다.
‘희대의 살인마’라는 칭호를 단 살인마들이 언론에 등장하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추종자들이 생기는 일이 적잖게 일어납니다. 그들은 극단적일 정도로 살인마의 행각을 숭배하고, 살인마의 수감에 슬퍼하고, 때로는 행동에 동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개중에는 살인마와 결혼을 하겠다며 나서는 사람들 역시 적잖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 알 수 없는 심리를 겪고 있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소설은 이해갈 만 하다가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의 심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희정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거나 아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과 같이 ‘좀비 정국에 올리는 편지’ 을 같이 추천해보고자 합니다.
지금 이렇게 다시 보니 저의 취향이 아주 잘 드러나는 모음집이 된 것 같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작가 프로젝트 접수 기간의 막이 오릅니다. 이미 흥미진진한 글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올해도 재미있고 독자들을 소름돋게 만들어 여름 밤을 뜬 눈으로 지새게 만들 글들이 더 많이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