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9월입니다. 2018년이 시작한지 엊그제 같은데 말이죠. 매년 겪는 속도감이지만, 이게 좀처럼 적응이 되진 않습니다.
올 한해 어떠셨습니까? 이런 질문은 연말에 돼지고기를 불판에 지지고 소주잔을 높이 올리는 의식 때나 해봄직한 것이지만, 미리 한번 해봅니다. 조만간 한반도에 추위를 몰고 올, 시베리아에서 발달한 차고 건조한 고기압을 견뎌야할 때면 손가락이 제대로 펴지지 않아 대답하기 힘들 테니까요! (빌어먹을 수족냉증!)
그렇습니다. 우리는 미세먼지와 폭염, 태풍을 견뎠고, 화창한 가을이 짧게 스치고나면,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칼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단군… 당신의 위치선정은 정말…”이라 읊조림과 동시에 엄지를 추켜세우고 미세먼지가 첨가된 눈물을 흘리는, 아무튼 삶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런 삶을 하루치 마무리할 때면 우리는 높은 확률로 지쳐있습니다. 글 읽기도 힘들 정도로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에도 텍스트를 좋아하는 당신이 아주 편안하게 접할 수 있는 작가가 이곳 브릿G에 있습니다.
바로 ‘홍린/유디트’ 작가입니다.
브릿G 괴담의 제왕 ‘Q씨’ 작가처럼 홍린/유디트 작가도 짧은 분량으로 많은 것을 전하는 스타일입니다. 작가 필명이 2개인데, ‘홍린’으로는 단편, ‘유디트’로는 시를 다룹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심심할 때, 혹은 자기 전에 아무 글이나 쇽 골라서 금방 읽을 수 있어요. 어떤 글은 따뜻하고, 어떤 글은 풋풋하며, 어떤 글은 오싹!하고, 어떤 글은 슬프고, 어떤 글은 웃깁니다. 게다가 종종 보이는 삽화까지!
그야말로 브릿G의 간이서점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브릿G의 보물창고? 아니면 브릿G의 배스킨라빈스떠리원은 어때요? (난! 엄마는 외계인!) 만약 당신이 편의점 음료코너에서 한참을 고민하는 스타일이라면, ‘음… 뭘 읽어볼까…’하면서 턱을 만지작거리겠지요.
약간의 도움을 드리고자 제가 13개의 작품을 골라봤습니다. 대부분 작품이 인상 깊어서 고르고 고르느라 애먹었답니다. 당신의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상관없어요. 작품이 많거든요!
<홍린>
어디로든 우체국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편지와 택배를 어디로든 보내주는 우체국. 그곳에 다양한 고객들이 찾아옵니다. 현실과 판타지를 잘 섞은 우체국 이야기. <어디로든 우체국 3번 창구의 하루>입니다.
“걱정 말라구. 아이엠 어 베스트 드라이버!”
모처럼 소개팅이 잡힌 주인공은 택시를 타는데요. 어째 택시 드라이버가 시덥지 않군요. 그런데 갑자기 택시 무전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급박한 상황이 이어지는데! 알 수 없는 유쾌함이 전해지는 <아이엠어 베스트 드라이버>입니다!
“뭐긴 뭐야 고양이지. 도망가지 마 안 잡아먹어.”
취직을 하고 싶은 민혜는 어느 날, 동네 구경을 합니다. 그러다 도착한, 벽이 쩍쩍 갈라질 정도로 낡은 ‘유조멘션’. 그런데 요상한 네일샵이 하나 있군요. 그곳에서 더 요상한 고양이를 만나게 되는 민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끝까지 읽으세요! 왜 유. 조. 멘션인지 알게 될 테니까요! 기묘함 그 자체의 <기묘한 네일케어숍>입니다.
“담배를 하나 달라고 했단 말이죠.”
어릴 때부터 주목 받았던 배우 배수연. 하지만 그녀는 배우라는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합니다. 주인공인 ‘나’는 배수연을 실제로 보게 됩니다. 같은 아파트에 이사를 왔거든요. 그녀에 대해서 아파트 사람들은 말이 많네요. 그러던 어느 날, 배수연이 ‘나’에게 다가와 담배를 요구합니다. 얼떨결에 담배를 건네 준 ‘나’. 그리고…… 머뭇거리며 ‘나’를 부르는 배수연. 하지만 이내 아니라고 말하고 돌아갑니다. 과연 그녀는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요? 읽고 나면 씁쓸함을 피할 수 없는 작품, <그녀가 이사왔다>입니다.
고마워, 고마워 모두들.
‘나’는 언니, 인숙선배, 정우, 오빠와 만납니다. 그리고 소통합니다. 일상적인 이야기부터, 깊은 속마음, 그리고 당부까지. 이들의 만남과 소통을 보고나면 눈물이 핑 돌 정도에요. 온갖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밤 11시 45분, 만남, 소통>입니다.
엄청 추웠던 날. 그래 학기 말쯤이니까 엄청 추운 날이었을 것이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발가락이 얼어 붙는 것 같은 날씨였다.
김봉선이라는 여자애가 있습니다. 철인 이십팔호라는 별명이 있죠. 인내심이 강하고 맷집이 좋은 김봉선은 하루하루가 참혹했어요. 하지만 인내심은 한계가 있는 법이죠. 과연 김봉선은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요? 우리의 어두운 사회를 드러내며, 마지막엔 얼얼한 반전까지 보여주는 <철인 이십팔호 김봉선>입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근데 여긴 왜 왔어요?”
“위로해 주려고. 너와 두 어른들.”
‘나’는 작은 흉가에 삽니다. 그곳에는 할아버지도 있고, 며느리 아줌마도 있어요. 그 흉가에 방송국에서 촬영이 왔어요. ‘나’는 오랜만에 집이 북적북적한 걸 느끼죠.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아저씨가 찾아옵니다. 과연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요? 진한 슬픔을 해치고 다가온 위로를 느낄 수 있는 <귀신이 살아요>입니다.
<유디트>
수면에 엷게 비춘 일몰을 긁어내면
그 밑은 수만 키로의 새카만 물결
아무도 모르는 바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아픔과 눈물을 담은 시 <손톱 밑이 푸르다>입니다.
정말… 토끼예요?
그래서 그때 말했었지.
토끼 처음 보십니까?
토끼가 ‘뭐든지 말해요’ 사무실로 출근합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이죠! 어떤 이야기가 그곳에 쏟아질까요? 아참, 상담원을 모집하고 있으니 상담에 능한 동물이라면 어서 연락 바랍니다! 상냥하면서 코믹한 느낌의 <뭐든지 말해요, 안녕? 토끼입니다.>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른
긴 호흡의 시, 그러나 금방 도착합니다. 마치 우리의 어렸던 적이 금방 어른이 된 것처럼 말이죠. 당신은 어떤 어른이 되었나요? 마음을 보듬어주는 시, <어느 사춘기>입니다.
언제부터 이렇게나 견고한
감정을 지켜내게 된 것인가
울고 싶었지만, 다시 괜찮아지는, 그런 존재가 바로 ‘우리’아닐까요? 우리는 언제부터 그런 감정을 지키고 있었던 걸까요? 벌써 가버린 청춘, 그리고 어느새 다가온 바람을 느낀다면 어떤 감정이 들까요? 읽고 나면, 서쪽 노을에 손을 흔들어주고 싶어지는 <즐거웠다, 저녁아>입니다.
“혼구녕을 내줘야해 혼구녕을.”
이상한 할머니가 있습니다. 치매일까요? 기인일까요? 그런데 괴인이 다가와 조심하라고 내게 말합니다. 그리고 할머니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되죠. 으스스한 맛이 일품인 <혼구녕에 대한 단상>입니다.
그리고 너! 아 씨발 내가 돈이 넘쳐나서
너만 캬라멜 프라프치노 사주는 줄 알아?
울적한 미쓰 김이 있습니다. 아아, 좋지 않은 선택을 하려는 것 같군요. 하지만 아직은 끝마쳐야 할 게 있나봅니다. 이 나라의 수많은 쓰레기들에게, 그야말로 모든 걸 쏟아 붓는 느낌이 드는 <미쓰김 자살하려다>입니다.
어떠셨나요? 다른 작품들도 직접 확인해보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이쯤에서 다시 묻겠습니다. 올 한해 어떠셨습니까? 삶이 너무 힘들었나요? 괜찮아요. 홍린/유디트 작가는 언제나 당신 곁에 있어서 위로해줄 테니까요.
그렇습니다. 홍린/유디트 작가의 진가는 ‘위로’입니다. 위로는 긴 말이 필요 없죠. 그저 다독임 하나로도 큰 위로가 될 수 있잖아요. 앞서 말했듯, 작품마다 분량이 길지 않습니다. 어떤 글들은 그 짧은 분량 속에 큰 다독임을 안고 있어요.
지쳐있는 상태로 아무 생각 없이 이 작가의 글을 골라 읽고, 생각지도 못한 위로를 받는다면, 그보다 멋진 일이 또 있을까요? 저는 경험했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골라보시겠습니까?
맥주와 낡은 스탠드를 준비하시고, 침대에 누워서 천천히 골라보시죠. 홍린/유디트 작가와 작품은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 테니까요.
이번 큐레이션은 여기까지 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