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죽음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전시안 (작가: 사선, 작품정보)
리뷰어: kloiuy, 19년 11월, 조회 61

신.

신이란 전능하다는 인식이 퍼진 것은 언제부터 였을까.

신이라는 한마디에 인간은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가.

우리를 과연 구원할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작품에서는 신에 대한 말로 글을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신을 향한 간절한 기도.

자신들의 신이라는 존재를 위하여, 인간들이 얼마나 참혹한, 신에게서 벗어난 일을 저질렀는지.

누구나 눈감고 무시하거나,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한 고해성사는 끝나가고, 전말은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느날 지구에서도 가장 중심에 가까운 그곳,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연에서 ‘신’의 몸이 떠오른다.

화자가 담담히 애기한 크기는 인간을 가루로 보기 충분했다.

키만 해도 25km의 인간의 모습이라니.

절대적인 크기는 훌륭히 무신론자들을 침묵시켰을 것이다.

밖을 바라본 감상은 신을 마주하는, 원초적 공포에 가까웠다.

안으로 화자가 들어가면서, 우리는 그 뒷면에 도사린 신을 향한 과학적 탐구를 보게 된다.

앞에의 감정적인 말이 전부 무색하게도, 연구하는데 수없는 시간이 걸렸을 결과들이 찬찬히 풀어져 나간다.

신의 죽음은(미안하게도) 잠시 맥거핀이 되어버린다.

아, 신의 뇌세포는 얼마나 찬란했는가.

뇌세포를 서로 이어주는 것은 다이아몬드 기둥들이었다.

뇌세포 하나하나에는 다이아몬드 막들이 있었고, 막들은 빛을 반사시켰으며, 반사된 빛들은 전부 석화된 껍질의 구멍으로 빠져나가 암실의 벽을 수없는 기호로 밝혔다.

막 안쪽에서는 아주 미세한 빛을 반사하고 빛에 따라 진동하는 실이 든 다면체가 있었다.

결국, 인간은 미지에 부딫친다.

수없는 뇌세포를 부숴가며 기호를 해독했지만, 뇌세포 안에 위치한 다면체 없이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각설하고,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가 아주 약한 전기를 사용해 모든것을 보고 생각하듯, 신은 빛으로 세상을 보고 생각했던 것이다.

생물학적인 이해가 필요한 약간의 설명을 지나, 화자는 결국 깨달았다.

신은 빛을 있는 그대로 보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신의 뇌세포가 빛을 가공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신에겐 우리가 필요한 적절한 신호변환조차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촉각이나 청각은 뭘로 느끼고 어떻게 빛으로 변환되었는 가에 대한 의문이 잠시 글쓴이의 머리를 스쳤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신에게 빛은 우리에게 전기신호와 별반다르지 않고, 우리에게 뉴런이 전기신호를 반복하는 것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었듯, 신의 뇌세포의 작동방법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 작동들이 만든 ‘이해’가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렇기에 화자는 신의 잔해를 찾았다.

신이 느끼고 보았던 것을 다시 재현하기 위해.

다시 이어지는 것은 물리학과 세계의 근원, 차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설명이다.

약간의 물리학적인 오류들(아마 우리가 인간이기에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은 차차하더라도, 신이 본 것은 그야말로 시간이었다.

시간이 끝나가는 것을.

시간의 지평선과 빛이 만든 세계의 모래시계를.

모든 것은 멈추고, 시간은 한점으로 수축하고, 에너지의 덩어리로 모여들게 되는 파멸.

그렇기에 화자는 다시 기도한다.

우리에게 ‘답’을 주기를.

그동안 한번도 준 적이 없었고 받은 적이 없었던.

끝에 대하여.

 

인간은 결국 심판을 받을 것인가에 대하여. 우주속에 인간이 대하여. 지금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회의감이 든다.

많은 것을 생각하지 말자. 우리는 우주에 대하여 먼지일 뿐이지만.

먼지 나름대로의 행복과 시간을 누리고 있지 않느냐고.

크기는 상대적이지만, 우리는 우리라고.

과학자들이 알듯,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다.

우리의 수억번째 자손정도는 정말 운이 좋다면 그를 볼 수 있겠지만, 우리의 미천한 감각이 그를 볼 수 있을 지도 의문이고, 그전에 태양계를 뜰 걱정부터가 앞선다.

아, 남은 시간은 우리에게 한정되어있다.

시간의 흐름따위 알바 아니다!

시간이 끝나든 무한히 흐르든, 결국 우주가 암흑속에 끝나든, 우리의 생명과 정신은 선명할 것이다.

즐기자. 지금,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여기서 또 신이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이였을까?

인간을 닮은 신인가, 신을 닮은 인간인가에 대한 질문은 물론,

그 신이 과연 우리를 위한 신이였는지.

미천한 우리가 단지 그 몸을 보고 전율하며 섬길 따름인지.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길 영역인 것이다.

 

한가지 해석을 내놓자면, 신은 곧 우주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신과 우주.

우리에 비해서 너무나도 크고 전능한 두 존재다.

우주는 빛으로 우리에게 관측되며, 신은 빛으로 세상을 보았다.

신은 죽었으며, 우리는 우주의 죽음을 관측한다.

글쓴이가 생각해도 미묘한 해석이다.

 

 

물리학적인 설명을 위해서 덧붙입니다.

저희가 느끼는 우주의 크기란 곧 빛이 태초이후 얼마나 멀리서 출발해서 여기까지 왔느냐에 기반합니다.

빛이 아직 여기까지 오지 않은 그밖은, 저희가 모르는 곳입니다.

그만큼 빛이라는 존재는 우주를 보는 저희의 눈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시간이 흐르고, 빛이 멈춘 세계는 멈춥니다.

모든 것은 멈추고, 시간은 한점으로 수축하고, 에너지의 덩어리로 모여들게 된다는 엔딩에 대해서는, 저는 이것이 정확하다와 정확하지 않다의 경계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학자들도 이런 것들의 설명을 위해 열심히 초끈이론을 발전시키고 있을 겁니다.

제가 생각해본 바로는, 우주의 죽음은, 적어도 이 이야기에 어울리는 죽음은.

모든 우주가 정지한다입니다.

시간은 분명 관측할 수 있지만, 시간이 존재한다는 점은 곧 물체가 존재하고, 뭔가 움직일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3차원과 달리, 시간은 존재하나 앞뒤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반쪽의 4차원에 살고있는 셈이죠.

시간은 물체의 존재, 또 운동의 존재에 대한 증명에 가깝습니다.

빛은…잘 모르겠습니다.

빛이 얼마나 매혹적이면서도 이해불가능한지요.

현대물리는 이 빛과 시간, 공간을 탐구하는데 여념이 없거든요.

어쨌든, 그렇게 시간이 너무나 오래 흘러, 엔트로피에 의해 태초의 폭발이 남긴 잔재(저희들도 포함해서)들은 천천히 식습니다.

저희에게는 영겁이라는 시간이 흐른후, 모든 별은 식어서 빛을 내지 못하고, 모든 원소가 모든 곳으로 흩어지며, 모든 열이 모든 공간에 고루 분포되는 시각.

블랙홀조차도 의미가 없어진.

더이상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움직일 필요조차 없는 영원한 정적으로 우주는 죽게 되겠죠.

그때는 이제 시간이 흐른다조차 관측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저희가 만약 어딘가, 우주에 비하면 일찍 죽게될 태양을 버리고 다른 항성계를 찾아다니며 그때까지 생존한다 해도, 그때는 정말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상, 저희 우주가 맞게될 죽음의 모습입니다.

우주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것은 이왕이면 더 좋은 동영상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TbUxGZtw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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