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카도르, 몽유병
본격적으로 리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나에 대한 TMI 두 가지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첫째, 나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도 브릿G의 작품들을 많이 읽지만, 역시 침대에 누워 온수 매트의 열이 오르기를 기다리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읽는 작품의 수가 가장 많다. 둘째, 나는 괴담조차 읽지 못하는 콩알 같은 심장의 소유자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늘 그렇듯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브릿G를 뒤적이다가 <몽유병>을 읽은 나는 그날 새벽 어떻게 되었을까?
정답, 정말 오랫동안 자지 못했고 다음 날 말 그대로 좀비가 되었다.
……내가 뭐 하고 있는거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두운 주방에서 냉장고를 열어놓은 채 물병을 꺼내 마시고 있었다.
몽유병인가?
실제로 겪어보니 상당히 어이없다.
무의식중에 여기까지 걸어와서 물을 꺼내 마셨다는 건가……
10매밖에 되지 않는 이 글은 사실 굉장히 단순하다. 소설 속의 ‘나’는 본인이 몽유병에 걸린 것 같다는 의심을 하고, 잠들기 전 녹음기를 켜 둔다. 새벽 네 시에 문득 자신이 냉장고 앞에 있음을 알아차린 날 다시 침대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고, 녹음한 것이나 들어볼까 싶어 녹음기를 재생시킨다. 녹음 된 불규칙한 숨소리를 들으며 잠에 빠지려던 직전 침대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는데 지난 시간은 고작 12분. 침대에 누워 녹음기를 켠 지 고작 12분 만에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면 이후 세 시간이 넘는 동안 냉장고 앞에 서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혼란스러워하는 중에 녹음기에서는 친근하게 일어났느냐고 묻는 목소리가 들린다.
혼자 사는 집인데 말이다.
녹음기에서 낯선 이의 소리가 들렸다거나 언제든 나를 보호해줄 수 있을 것 같던 내 집에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등의 공포는 이미 숱하게 접한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혼란한 상황을 짧은 문장으로 이어가면서 순식간에 몰입하여 소설 속 ‘나’와 독자인 ‘나’를 구분할 수 없게 되는 순간 나의 모든 판단이 흐려졌던 것 같다. 내 방이라는 익숙한 공간마저 공포가 되었는데 이 전개를 접한 적이 있었는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어디 있느냔 말이다. 방과 거실, 주방 등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도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몰입에 영향을 주었던 것도 같다. 침대는 어떻게 생겼는지, 이불은 무슨 색인지, 침대와 방문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등을 전혀 묘사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모든 사건이 내가 현재 누워있는 이 위치, 이 방에서 일어난 것으로 상상하게 된다는 말이다. 정말이지 문장과 문단 모두가 짧은 형식은, 절대 나의 취향은 아니지만 혼란하고 공포스러운 상황과 그때의 인간 심리를 전달하기에 가장 효과적이다.
물론 내가 유독 무서운 이야기를 잘 읽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네트워크상에서 돌아다니는 괴담을 가볍고 즐겁게 읽는 분들이시라면 이 역시 그저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으실 것이다. 어쩌면 작가마저도 나처럼 두려움에 떨며 잠들지 못한 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침대에 누워 이 글을 읽고 오랫동안 잠들지 못한 분이 또 계신다면 부디 말씀해주시기를. 어쩐지 내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쫄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뷰를 다 쓰고 나니 부끄럽기까지 하다. 10매짜리 엽편이 무서웠다는 이야기를 9매 동안 했다. 자, 다시 온수 매트 전원을 켜고, 온도를 올리고, 따뜻해질 것을 기다리면서,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리고, 눈을 감고……, 이제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은 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