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으로 쓰건 그냥 써 본 것이건 소설을 쓰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구 대비 별로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일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 많은 나라니까요. 하지만 소설가가 주인공인 소설은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소설가가 묘사하기 제일 쉬운 인물이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이정도로 노골적으로 소설을 잘 쓰고싶다는 욕망 자체에 초점을 맞춘 소설은 저로서는 처음 읽는 듯 합니다. 아무튼 읽으면서 공감이 가는 한편으로 민망스럽기도 했는데 저만 느낀 감정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읽는 동시에 쓰는 사람도 많은 플랫폼이니까요. 다음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 좋지 않은 작문실력에 비해 원대한 꿈을 지닌 주인공이 실의에 빠져있던 중 보이밋걸하여 상당히 흥미로운 방식의 미래형 소설조립법을 접하고 그나마도 잘 풀리지는 않지만 마침 집에는 어여쁜 여동생이 있는 덕에 전통의 수제 소설제작법으로 돌아가게 되는, 구관이 명관인 내용이 되겠습니다. 단순한 게 제일 어렵고 그렇죠 원래. 남매에 대한 묘사의 정확성을 감안할 때 작가님께 누이가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점은 읽는 동안 재미있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러브크래프트는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해당 부분 패러디의 재미는 반만 느껴야 했지만, 지옥에서 온 도라에몽 복순이의 교육적인 폭력이 호세의 영수 돈두댓 만큼 시원하게 다가왔습니다. 이건 취향의 문제겠지요. 그밖의 기본적인, 문장이 눈에 거슬린다거나 내용이 쓸데없이 늘어지는 등의 문제는 저로서는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소개한 아이디어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자면, 만일 구글번역기가 통번역가의 밥줄을 끊어놓는다면 아마 그 다음이 AI소설가의 등장일 것입니다. 제 의견은, 본작에서 나온 진화론적 방식이건 다른 방식이건 간에 AI의 소설 쓰기가 가능은 하겠지만 그다지 성공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게임 핵을 보면 알 수 있듯 컴퓨터는 인간 플레이어를 일방적으로 양학할 수 있지만, 게임은 그러라고 있는 것이 아니지요. 소설 또한 소설가라는 인간의 무언가(사상이든 감정이든 숨겨놓은 트릭이든)를 알고 싶다는 독자의 욕망이 독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대량생산된 물건들의 품질이 월등하지만 여전히 수제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와 비슷할까요? 갬성 시장에 그렇게 돈이 많이 쏟아지는데 있는게 감성밖에 없는 소설이 달리 뭘 팔겠습니까.
바로 그 점에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데, 주인공이 쓰고 싶은 소설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글이 별다른 반향을 끌어내지 못하고, 사실 자기 자신의 눈에도 차지 않는다는 점에 괴로워합니다. 도통 남의 일 같지 않은 점은 둘째 치고, 결국 복순이의 해법이나 지우의 반성문 작법 모두 공통적으로 독자를 향합니다. ‘독자에게’ 재미있는 글과 ‘읽는 사람이’ 감동적인 반성문을 쓰지요. 여기서 표절이나 자기표절의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늘 아래 똑같은 글은 없다고 복순이도 이야기하지요. 재미있으라고 노린 글을 쓰는 것도 분명 의미가 있고 성공 가능성도 높습니다. 여러명의 작가가 붙어서 만들어내는 MCU나 미드, 가깝게는 매번 더욱 강력해진 출생의 비밀로 찾아오는 아침드라마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그런 글을 쓰고싶어서 주인공 처럼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싶어질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재미있는 소설을 써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봅니다.
미래에서 온 폭행머신과 집에서 기른 악의 씨앗이 소설가 지망생을 놓고 공원에 모여 투닥거리는 소설에서 진지한 창작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한다면, 그것은 장르에 대한 부당한 폄하가 될 것입니다. 물론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서두에 밝혔듯 이미 충분히 즐거웠으니까요. 그러나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재미 이상의 특별한 감동이나 경이를 느끼지 못한 이유로 저는 주인공이 작법에만 집중할 뿐 주제나 발상을 고민하지 않은 점을 들고 싶습니다. 그런 부분을 작가분께서 의도한 것 같지도 않고, 왠지 접시를 보고 왜 항아리로 안 만들었느냐고 억지를 쓰고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마는, 주인공에 대한 이입을 심히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라도 언급할 필요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의 부분은 글쎄요, 패러디가 동원된 왜곡된 보이밋걸류 장르라는 면에서 저는 특별히 불만이 없습니다. 그런 소설이니 원래 기대치가 낮다는 뜻이 아니고, 여기서 다른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자면 지금과는 아주 다른 무언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라이트노벨이든 슈퍼헤비노벨이든 뭘 쓰건 그걸 독자대중이 사랑해 준다면 좋겠지만 사실 그렇게 되진 않겠지요. 그러나 인기가 없고 안 팔리는 이유를 반드시 작가나 작품의 부족에서 찾아야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죄와벌을 지금 쓴다고 전설이 될 수 있을까요? 물론 내가 지금 문학계의 고흐라고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아마도 상담이 필요합니다. 요는 외부 상황에는 당연히 시운이 따르고 그건 작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요소라는 것입니다. 바람이 어디로 불건 할 수 있는 일은 한가지 뿐입니다. 뭐라도 써야지요. 비록 매주 로또 사는 기분일지라도.
더불어서, 주인공이 망해먹은 소설이라고 잠깐 나오는 로맨스 소설과 호러소설이 재밌어보이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리뷰를 신뢰하셔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소설, 쓰십시오.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