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은 소설을 쓰고 싶은 대로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아무도 죽지 않는 소설을 쓸 수 있다면 (작가: 장아미, 작품정보)
리뷰어: BornWriter, 19년 9월, 조회 139

매우매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매우매우 스포일러 함유합니다.

매우매우 매우매우 매우합니다(?)

Another WARNING. 이것은 순도 100%의 본롸이터 프리스타일입니다. 읽고 떠오른 생각을 검열과 편집 없이 그저 적어놓았을 뿐입니다. 여기서 ‘편집 없이’가 무슨 뜻인지는, 읽다보면 느껴질 거라고 믿습니다.

 

 

 

저는 글쟁이이기도 하고 리뷰어이기도 합니다. 어느쪽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는 일이 없으니 개인적으로는 ‘그냥 학생’ 쪽이 더 올바른 호칭이 아닐까 가끔 생각하곤 합니다.

저는 꽤 오래전부터 글을 써왔습니다. 그 중 대부분을 나침반 없이 목측으로 그려놓은 약도를 따라서 글을 써왔습니다. 그러다가 입대 직전에 생애 첫 작법서를 샀습니다. 이후로 작법서는 저에게 있어서 글쟁이로서의 선배들이 그려놓은 꽤나 정확한 지도로서 군림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작법서를 사 모으고 있습니다(최근에는 로버트 맥기의 작법서 두 권을 샀습니다. 시나리오 관련 작법서지만 소설을 쓸 때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작법서가 제게 사사한 가르침은 셀 수 없습니다. 그 중 한 가지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독자의 눈을 끌 수 있고, 계속해서 작품을 읽게 만들며, 그것 자체로도 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 없다고 말합니다. 충격적인 장면이란 것은 굉장히 추상적이지만, 막상 써놓고보면 단순해집니다. 이 테크닉의 요점은 ‘뜬금없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독자가 예상할 수 없는 장면으로 시작해야 독자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글을 풀어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어떤 장면이 충격적일 수 있을까요. 보통은 범죄일 것입니다. 강도 높은 범죄일 수록 충격적일 테고, 그래서 그 끝에는 살인과 강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개를 붙여놓으면 아주 충격적이겠지요. 소설이 시작하자마자 강간 살인이 튀어나온다면 분명 충격적이긴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방식은 너무나도 싸구려입니다.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독자는 소설을 읽고 싶은 것이지, 충격적인 장면을 읽고싶은 게 아닐 테니까요. 안타깝게도 저는 이러한 싸구려 테크닉을 종종 써먹습니다. 저라는 인간이 싸구려이기 때문에 싸구려 테크닉 밖에 써먹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짐짓 자명해보이는 군요.

 

이 작품은 싸구려 테크닉의 가장 먼 지점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고오급 테크닉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테크닉에서 가장 먼 곳에 있다고 해도 틀리진 않을 거예요. 테크닉이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저는 거짓말을 아주 좋아하므로, 이 단편에는 테크닉이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해두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을 정도로 이 단편은 마일드합니다. 조금의 자극도 없어요.

자극적인 음식만 먹어온 사람이 순한 맛의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자극적인 소설만 읽어온 사람에게는 이런 마일드한 소설이 익숙하지 않을 겁니다. 까놓고 말해서 ‘재미가 없다’고 말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혓바닥을 조금만 곤두세워보세요. 이 단편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습니다.

제 혓바닥이 발견한 이 작품의 맛은 ‘불친절함’이었습니다. 독자가 예상할 수 없는 장면으로 시작하면, 독자가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글을 풀어나가기 쉽다는 장점이 존재합니다. 다만, 그것도 계속해서 독자의 흥미를 끌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겠지요. 이 글에서는 작가가 독자의 흥미를 끌 생각이 없어보였습니다. 적어도 제가 받은 인상은 그러했습니다. 가끔 작가는 독자고 나발이고 내가 쓰고 싶은 걸 쓰겠다! 하는 날이 있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가 이 글을 다 읽은 데에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사실 거짓말입니다. 그런 이유는 없습니다. 이유는 있지만 그 이유는 조금도 특별하지 않습니다. 글이 술술 읽히는 데 어쩌란 말입니까. 내용은 불친절하고 조연의 동기는 조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데, 어째서인지 글 자체는 술술 읽힙니다. 그 까닭을 저는 아주 희미하게 짐작만 할 따름입니다.

저는 이 작품의 톤이 좋았습니다. 느긋하고도 중구난방이죠. 까놓고 말해서 세상이 원하는 소설이 갖춰야 할 덕목은 아닙니다. 그런데 작가가 꼭 세상이 원하는 소설을 써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작가는 그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창조했을 뿐이고, 지나가던 본롸가 의도치 않게 취향을 저격당했을 따름입니다.

 

 

가끔 그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독자 없이는 작가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옳은 말입니다. 어쨌든 작가는 벌어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기꺼이 이야기에 돈을 지불해줄 독자가 없다면 작가도 존재할 수 없겠죠.

그렇지만 독자 없이도 글쟁이는 존재합니다. 글쟁이는 독자에 선행하여 존재합니다.

세상 모두가 사라진 뒤라도 글쟁이는 글을 써내고야 말 것입니다. 글쟁이란 그런 존재들이니까요.

 

쓰고 싶은 소설을 쓰고 싶은 대로.

 

 

 

 

 

+ 리뷰 공모에 “어떤 감상/비평도 좋습니다. 읽고 떠올랐던 생각들을 알려주세요.” 라고 적으셨기에 읽고 떠오른 생각을 조금의 더하고 빼는 일 없이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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