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비공을 읽고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감비공 (작가: 루주아, 작품정보)
리뷰어: 가두리, 19년 9월, 조회 135

저는 역사적 사실을 잘 표현하는 사극은 좋아하지만, 이른바 퓨전 사극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로서는 현재와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드라마를 보는 것은 꽤나 피로한 일인데, 대부분의 퓨전 사극은 ‘굳이 사극으로 만들 필요’가 없는 작품들이거든요. 이를테면 공주와 수호 무사가 사랑에 빠지는 퓨전 드라마는 현대 드라마와 다를 게 없어요. 오늘날은 과거처럼 계급 없이 모두 평등하지만 계층은 있잖아요. 대기업 회장 딸과 평사원 남자가 만나 사랑을 나누는 스토리와 공주와 수호 무사 스토리는 비슷비슷해요. 억지로 차이점을 찾자면 사극에서는 두 사람이 만나서는 안 되는 이유가 당시에는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 정도겠네요. 그런데 인물을 가로막는, 납득 가능한, 벽 하나를 만들려고 사극을 만드는 건 낭비에요. 편하게 현대극으로 하면 될 걸 뭐 하러 낯선 사극 말투를 써요. 보는 사람 피곤하게요.

하지만 또 잘 만든 퓨전 사극은 좋아합니다. 벽 하나 세우려고 만든 게 아니라 ‘배경이 필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든 퓨전 사극은요. 허준이 대표적이죠. 갈등, 아이템, 주제 등을 보면 사극으로 만들어야 하는 작품이었어요. 요컨대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현대와 다른 시대의 이야기를 한다면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개인의 기호에 불과하지만요.

<감비공>은 하연이라는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무협 소설입니다. 무협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인을 만나 스승으로 모시고 강해진다는 내용이에요. 거기에다 억압받던 여성이 자유를 찾는다는 주제가 있고요. 여성서사 책까지 출판한 브릿G에서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안타깝게도 저에게 <감비공>이 ‘특색 있는’ 소설이 아니었습니다. 예. 굳이 사극으로 만들 필요 없는 퓨전드라마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스토리는 다른 무협 소설에서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평이하고 억압받는 여성이 자유를 찾는 주제는 이미 흔하니까요. 여성의 억압을 무협 소설로 풀어야 하는 이유가 필요했어요. 저는 그 이유를 발견하지 못 했고요. 예. 공주와 수호 무사입니다. <감비공>을 현대 배경으로 옮긴 다음 내공을 대신할 자유를 찾게 해 줄 도구를 넣는다면 대강 비슷한 이야기가 나올 거 같아요. 어쩌면 작가님은 여성이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공과 같은 ‘판타지’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의미로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네요. (만약 그렇다면) 의견은 존중하지만, 소설적 재미가 더 필요할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감비공>의 서사는 무난한 만큼 매끄럽습니다. 주인공이 힘을 얻고 시련을 겪은 뒤 극복한다. 아주 깔끔합니다. 다만, 인물은 아쉬웠습니다. 장두이와 장하연 부녀는 주제에 끌려다닙니다.

우선 장두이는 상당히 모순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는 무림세가를 세우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딸 하연은 여자라서 무공을 익혀서는 안 돼요. 이건 오류입니다. 작품의 사회에서는 여성이 억압받지만, 무림계에서는 아닌 것 같거든요. 본인도 모용린의 힘을 인정하고 그녀가 넌지시 덤으로 일룡도 챙겨줄 수 있다고 암시하자 기뻐하지 않았습니까. 두이가 합리적인 사람이었다면 10살 때부터 하연에게 내공을 가르쳤을 겁니다. 두이가 사회의 고정관념에 막힌 인물이었다면 모용린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거절했을 거예요. 힘이 너무 탐났다면 하다 못 해 내키지 않는 기색이라도 보였을 거고요. 하지만 그는 기뻐만 합니다. 이상하죠. 이런 모순이 생긴 이유는 주제를 나타내려면 두이가 하연을 억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제에 끌려다녀서 앞뒤가 안 맞게 된 겁니다. 만약 두이가 타당한 이유로 하연을 억압하고 하연이 억압에서 벗어났더라면 작품은 더 큰 카타르시스를 냈을 거예요.

하연 같은 경우에는 여자라서 억압받는 캐릭터입니다. 작품을 보면 모용린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냥 시키는 대로 살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억압이 답답했다는 암시도 없이 무공을 배웁니다. 뭐 불한당들을 막는 것을 보면 용기는 있는 것 같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회가 사회잖아요. 여자가 억압받는 게 당연한 사회에서 하연은 자라왔습니다. 하연이 바로 무공을 배우는 것은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전부터 자유를 원하고 있던가 모용린의 제안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이 필요했어요. 공을 배운 뒤 반항기가 생기는 것도 급작스럽다는 느낌은 들지만, 처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성취감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납득이 됩니다. 그래도 보완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일룡이와 연소소의 등장으로 드러나는 사연을 이용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하연의 변화가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주제에 끌려 다녔기 때문이겠죠. 그녀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억압에서 벗어나야만 하니까요. 하지만 주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하연이 자립적으로 주도해야 했습니다.

인물이 주제에 끌려다니면 단순화됩니다. 인물이 단순하면 이야기의 재미가 떨어지고요. 주제 의식도 좋지만, 복잡한 인물과 부딪쳐 겪는 사건 끝에 주제가 나온다면 더 읽을 맛 나는 작품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비판을 길게 한 것은 <감비공>의 장점이 뚜렷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선 문장이 깔끔해서 글을 술술 읽었어요. 그만큼 공을 들였다는 거겠죠. 개그 센스도 남달랐어요. 서브미션이 나왔을 때 피식했습니다. 인물 설정만 제외한다면 완성도 있는 깔끔한 단편이라고 장담합니다. 건방진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작가님의 다음 작품에서 개연성 있는 인물로 같은 주제를 풀어간다면 저는 대단히 호평할 거 같습니다. 그만큼 단편으로는 완성도가 있었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