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울,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를 설명하자면 딱 두 문장으로 충분할 것 같다. 공포 소설을 전혀 즐기지 않는 나에게 너무 재미있었던 소설. 그리고 매일 경의·중앙선을 타는 나에게 너무도 공포로 다가왔던 소설.
처음에는 반가움으로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인 듯싶다. 그러니까 서울로 가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지만, 20분 타기 위해 20분을 기다려야 하는 경의·중앙선이라는 이름에 대한 반가움 말이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사람이 따닥따닥 붙어서 타는 것이 일상이지만 배차가 늘어나지는 않는, 작년 여름에는 낙뢰로 인해 전차선이 끊겨 하염없이 기다리기까지 해야 했던, 그 경의·중앙선에 대한 반가움. 그리고 놀랍게도 괴담과 같은 이 소설의 공포는 바로 그 반가움에서 출발한다.
“내가 지금까지 10분을 기다렸으니 이제 5분이면 열차가 오겠지. 한 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이제 얼마 안 남았다. 하루를 기다렸으니… 거기다 시간표가 그런 착각을 강화하기까지 하고요.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이 곳에 묶이는 거죠.”
시간표로 보는 경의·중앙선은 꽤 그럴듯하다. 한 시간에 4대에서 5대 정도가 배치되어 있으며 그 간격도 10분에서 20분 사이로 어느 정도 일정하다. 물론 서울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배차는 한 시간에 2대에서 3대 정도로 줄어들며 덩달아 그 간격도 20분에서 30분으로 늘어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시간표로 보는 경의·중앙선은 나름대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경기와 서울을 잇는 그럴듯한 지하철 노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표로 보는 경의·중앙선과 현실의 경의·중앙선이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다른가의 문제를 파헤치는 순간 호러는 시작된다. 사실 그 두 가지 경의·중앙선이 판이함을 배경설명 없이도 모두가 이해한다는 것부터가 호러인지도 모른다. 경의·중앙선이 시간표대로 올 것을 기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그러나 이미 용산에서, 왕십리에서, 홍대입구에서, 능곡에서, 구리에서, 옥수에서 경의·중앙선을 10분, 20분, 한 시간 기다린 사람은 ‘그래도 내가 이만큼 기다렸는데 조금만 더 있으면 오겠지’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리고 만다. 이렇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경의·중앙선을 기다리다가 사람들이 역에 묶여버리는 것은 아닐까?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는 이런 상상에서 시작한다. 기자인 ‘나’와 유명 웹툰 작가인 ‘성하리’의 만남을 통해 상상은 점점 생기를 얻는다.
“그리고 가다가 혹시나 잠들지 마요. 그러다 구리까지 가요.”
도대체가 조언인지 경고인지 모를 이 대사를 정말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에게, 사람은 빡빡하면서 에어컨은 약한 경의·중앙선을 타고 이번 여름을 지낸 사람들에게, ‘탈경의·중앙’한 사람들에게(축복받아 마땅하다.), 혹은 소문으로만 듣던 경의·중앙선의 실체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꼭 이 소설을 쥐여주고 싶다. 아직 가시지 않은 올여름의 열기는 이 소설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몇 번이고 식힐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