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때때로 번거롭고, 별 짜증나는 일도 많고, 정말 힘들고 괴로울 때도 결코 적지 않죠. 쉽고 재미있게 좋은 사람들만 만나고 좋은 얘기만 들으면서 살면 참 좋겠지만 도대체가 이 삶이라는 녀석은 우릴 그렇게 놓아 두지를 않습니다. 뭐가 좀 될라치면 사사건건 발을 걸거나 머리를 툭툭 때리거나 주먹을 날리거나 해요. 그렇게 너무 많이 얻어맞다 보면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어집니다. 식물처럼 가만히 누워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살고 싶죠. 문제는 그럴 수가 없다는 겁니다. 힘들어서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도 결국에는 배가 고파지고, 결국에는 뭘 먹어야 해요. 그냥 사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심지어 먹고 살아야 하는 겁니다. 태곳적의 지구에 살던 인류의 먼 조상이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대신 남의 살을 뜯어먹고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걸린 먹고사니즘의 저주입니다.
그래서 우린 매일 뭘 먹습니다. 항상 근사한 식사를 하고 싶지만 그러지는 못하죠. 우리가 끼니에 대해 내리는 결정의 대부분은 ‘오늘은 또 뭘 먹냐’하는 고뇌의 산물입니다. 매일 똑같은 걸 먹으면 질리고, 멀리 가기에는 시간이 없고, 맛있는 것만 골라 먹기에는 돈이 없습니다. 만찬이 아닌 ‘끼니’ 문제는 결국 한정된 선택지에서 어떻게 그나마 먹을 만한 걸 골라 배를 채우느냐의 싸움이죠.
그 싸움의 한복판 어디쯤에 ‘김밥천국’이 우뚝 서 있습니다. 비싸지 않고, 어디에나 있고, 무엇보다 메뉴 가짓수가 많다는 점이 미덕인 곳이죠. 김밥도 있고 라면도 있고 돈까스도 있고, 가게에 따라서는 해물수제비나 내장탕 같은 꽤 그럴듯한 메뉴도 갖추고 있습니다. 맛은, 글쎄요, 끼니의 전쟁터에서 먹을 만 한 수준이면 일단 합격인 겁니다. 상호는 ‘천국’이지만 실제로는 그야말로 지상 문제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먹고사니즘의 최전선. 전쟁터에서 또 하루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배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가장 가까운 김밥천국으로 향합니다. 『시청 앞 김밥천국 혼밥클럽』은 바로 그 야전기지의 이야기입니다.
불합리한 어려움을 겪어 온, 당장 할 업무가 있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사람이 그래도 또 한 끼를 해결하고자 김밥천국에 발을 들입니다. 메뉴가 많으니 선택을 해야 하죠. 그리고 이유 없는 선택이란 없습니다. 김밥을 먹느냐, 순두부찌개를 먹느냐 하는 선택일지라도 개개인이 살아 온 삶과 경험에 어떻게든 연관이 되게 마련이죠. 김밥천국의 수많은 메뉴 중에서, 그것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롯이 혼자 메뉴를 고르는 행위는 그렇기에 일종의 심리 테스트와도 같습니다.
오므라이스를 고른 당신, 오므라이스는 분식집 메뉴 중에서도 계란이 가장 두드러지는 녀석인데, 혹시 계란에 얽힌 인생사가 있지 않나요? 김밥에 얽힌 추억은요? 지금 돈까스를 선택하신 이유는? 『시청 앞 김밥천국 혼밥클럽』의 등장인물들은 이 지극히 일상적인 심리 테스트를 통해 저마다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도대체가 이게 사는 건지, 왜 인생은 좋다가도 이렇게 번거롭게 구는지,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지 싶어서 먹고 산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그 일상 이야기들이 무작정 비참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점이 또 이 작품의 매력이에요. 『시청 앞 김밥천국 혼밥클럽』은 쉽지 않게 살아가는 등장인물 개개인에게 작은 기쁨과 희망을 남겨 줍니다. 삶이 항상 나쁘지만은 않듯이, 김밥천국 메뉴 중엔 그래도 입에 맞고 맛있는 게 있듯이요. 화려한 만찬이 아닌 지극히 일상적인 음식에 대한 글만이 끌어낼 수 있는 따뜻한 감각은 그렇게 해서 등장인물들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집니다. 값싼 동정이라든가 불행 전시가 아닌 진짜 동질감으로 말이죠.
음식에 대한 글이고, 배 고플 때 보면 정말 배 고파지는 종류의 소설입니다. 맛을 예상할 수 있고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배가 고파지는지도 모르겠어요. 당장이라도 나가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글은 원래 배 고플 때 읽는 게 제맛 아니겠습니까. 전 오므라이스 끌리네요 오므라이스! 물론 정말로 먹어보고 싶은 건 슥 가르면 근사하게 흘러내리는 오믈렛이지만, 그렇다고 얇은 계란부침을 얹은 케찹맛 오므라이스를 싫어한다는 건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많은 메뉴 중에서 지금 이 순간 가장 먹고 싶어서 고른 음식. 그 지긋지긋한 일상 맛을 어떻게 싫어하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