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에게 희망을 감상

대상작품: 저 길고양이들과 함께 (작가: 너울, 작품정보)
리뷰어: 고수향 바닐라맛, 19년 8월, 조회 69

곽재식 작가님의 작법서 중에서 “정 쓸 게 없으면 고양이 이야기라도 쓰자”는 말이 있는데 그 조언에 걸맞은 제목인 게 아닌가 싶네요. 확실하게 제 관심을 사로잡았습니다! 심너울 작가님께서 평소에도 고양이 중성화 수술에 조예가 깊으신지는 모르겠지만 강태영의 시술과 TNR 시술이 평행하게 진행되는 부분이 재미있네요. 음경은 남기되 땅콩(…)을 제거한다는 점도, 시술 후 귀를 살짝 잘라 표식을 남긴다는 점도, 결국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도 비슷하잖아요? 실제로 “남근에 지배”당하지 않게 된 강태영의 삶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다고 봐요. 퇴근 시간 이후에도 하릴없이 회사를 서성이는 강 부장보다야 새로운 배움을 위해 노력하는 테니스 회원 강태영이 더 호감 가는 건 당연하죠!

자기중심적인 중년 남성 주인공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게 제일 큰 진입장벽이지만.. 이 역시 그의 변화를 강조하기 위한 방식으로 느껴졌습니다. 채만식 선생님의 태평성대처럼 주인공인 강태영은 독자에게 은은한 경멸과 그보다 진한 불쾌감을 선사하죠. 누구나 “강태영”을 어디선가 만나봤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 길거리에서, 혹은 다른 곳에서. 그런 그의 시점에서 소설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독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처음 그가 귀를 만져 확인했을 때에는 통쾌감을, 제대로 사무실을 청소하고 있을 때는 임 대리마냥 충격(과 안도)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마지막에 고양이에게 간택 받았을 때 약간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강태영과 길고양이들의 가장 큰 차이는 있습니다. 바로 의식적인 노력으로 상황을 고칠 수 있느냐죠. 길고양이들은 본능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태영의 경우는 그렇지 않잖아요? 중년 남성으로 어디서나 가장 권위 있는 자리에서 “대우”받던 그는 굳이 배려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겁니다.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하여 변화를 꾀했지만, 작가님은 결국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강태영에게 수술이 아니더라도 바뀔 수 있음을 드러내고, 또 그 각성을 촉구하는 게 아닐까요? 만약에 이 단편소설을 읽고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면, 당신(그리고 당신의 땅콩)에게는 아직 희망이 남아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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