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매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매우매우 스포일러 함유합니다.
매우매우 매우매우 매우합니다(?)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그는 언제나 이 말을 선언하듯 외쳤습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하나 씩 일어났으므로 상쇄하면 0이 된다는 논리였지요. 아마 여러분 주변에서도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분명 있으셨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늘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의문점이 들더라고요. 그 의문점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플러스 마이너스는 과연 제로일까?”
아이유 씨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떠올려봅니다. 처음에 그 드라마가 시작했을 때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몇몇 분들이 ‘이러한 내용의 드라마는 다 늙은 남자에게 젊은 여자를 안겨줌으로써 현실의 늙은 남자들이 젊은 여자들에게 치근덕거리게 만든다’고 이야기했던 것을 저는 기억합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아 실제로 어떤지, 그들의 주장이 합당한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없습니다. 애당초 그럴 생각도 없었고요. 다만, 분명하게 기억나는 한 가지는 실제로 이 드라마를 본 나이 든 남자들이 열 몇 살 스물 몇 살 어린 여자에게 용기내어 대쉬해보겠다는 말을 하는 걸 제가 직접 들었다는 사실 정도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저는 거울상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분은 어떨 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글에 아주 분명한 의도가 (심지어 숨어있지도 않고 대놓고)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울상이라는 단어는 흔히 미러링이라고도 하지요. 이 작품은 위에서 이야기한 ‘늙은 남자에게 젊은 여자 안겨주기’를 정확히 성별만 뒤집어서 작성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플롯은 비교적 뻔합니다. 앞의 몇 문단을 읽는 즉시 대강의 결말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어요. 실제로 이 작품은 제가 생각한 그대로 진행되었고요.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을 평가절하 할 생각은 없습니다. 미러링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니까요. 저는 작가분이 아래의 두 의도 중 하나를 염두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1) 늙은 남자에게 젊은 여자를 안겨주는 일은 역겹다. 고로 늙은 여자에게 젊은 남자를 안겨줌으로써 이 역겨움을 몸소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2) 늙은 남자에게 젊은 여자를 안겨주는 일은 역겹지 않다. 당연히 늙은 여자에게 젊은 남자를 안겨주는 것 역시 그러하다. 법적으로 허락되는 나이만 해결되면 나이 차이가 몇 살이 나던 무슨 상관이냐!
만약 이 소설이 거울상 소설이라면 아마도 작가분의 의도는 1)이었을 겁니다. 딱히 그쪽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면 의도는 2)에 가까울 테고요. 어쩌면 제가 모르는 의도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여기서 저는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플러스 마이너스는 과연 제로일까? 이 작품은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게 나뉘여집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합쳐서 제로로 퉁쳐지는 종류의 것은 아닐 겁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군요. 어떠한 수식을 미분하고 적분했을 때 원래의 수식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1. 반드시 적분상수가 따라붙게 되지요. 이러한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타깃한 원본을 미분하고 적분하지만 결코 타깃 작품과 동일한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생겨나는 적분상수가 이러한 작품의 주요한 의미가 되는 겁니다.
제가 말을 너무 어렵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에는 이 작품을 읽고 내린 판단이 있지만 문자로 그것을 서술하려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군요. 짧게 줄이자면 미러링에는 반드시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러한 글에 ‘늙은 남자에게 젊은 여자 안겨줄 때는 뭐라고 하더니, 여자들은 이러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뒤로 호박씨 까고 있었구만!’ 따위의 평가는 아주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 평가는 정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