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적부터 뱀파이어를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동네 도서관에서 처음 읽었던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보여준 짜릿함으로 시작해서 영화와 만화 소설을 아우르며 뱀파이어 이야기에 심취했었지요.
지금은 그저 호러물의 한 카테고리라 하기엔 너무나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종족(?)이 되었습니다만, 지금도 가끔 왜 수많은 어둠의 존재들중에서 유독 아침잠많은 이 캐릭터에 많은 사람들이 심취해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솟아오르곤 합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흡혈귀라 함은 여타 호러물의 유명인사들처럼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는 존재 이상으로 잘 표현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스티븐 킹의 Salem’s lot에서 그랬고 영화 Fright night에서 그랬듯 그들이 원하는 건 그저 사람들의 피를 빨고 자신의 세력을 늘리며 자신의 존재를 믿지않는 사람들에게 미지의 공포를 안겨주는 대상이었지요.
그들이 언제부터인가 하이틴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고, 예전보다 더 젊고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소비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칙칙한 망토는 좀더 멋진 현대적인 의상으로 바뀌었고, 핏발 선 눈과 잘 다물어지지도 않던 큰 입, 송곳니는 어느샌가 세월의 풍파에 전혀 영향받지 않는 만년 청초함의 대명사로 변화되어 우리에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그들이 그저 초원의 외톨이 사자처럼 사냥감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포식자가 아니라 자신에게 지워진 무한한 시간의 무게에 힘겨워하고 고뇌하는 인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 글에 등장하는 이웃집 아저씨 또한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양산형(?) 뱀파이어에 가깝다고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사람들속에 살면서 자신의 존재가 저렇게 드러나지 않기란 요즘의 세상에 쉽지 않지만, 상식밖의 존재니까 그렇다치고 그렇게 잘 숨겨오던 자신의 정체가 어린 소년에게 어이없이 들켜버린다는 건 이런 이야기에서 항상 등장하는 미스테리 중 하나지요.
이해는 잘 안됩니다만 저 또한 뱀파이어 이야기를 쓴다면 아마 이렇게 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문제삼지 않겠습니다.
이 글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밤에는 고시공부를 하는 동네 형같은 이미지의 뱀파이어 아저씨입니다.
글이 짧고 대화도 많지 않지만 뜻하지않게 자신의 정체가 발각된 아저씨의 모습은 최근 보아온 시크하고 부유하며 인간이 범접하기 힘든 능력을 가진 존재라고는 보기 힘든 그야말로 이웃집의 아저씨같은 친근함을 보여주는데, 대화 또한 그런 친숙함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서 글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돼요. 안돼. 돼요. 안돼. 안돼요. 그래.
미소를 품게 하는 알콩달콩한 대화이후 으레 등장하는 불멸자의 삶에 대한 진부한 설명이 따라붙기는 하지만, 뻔한 이종족간의 사랑이나 인간불신의 주인공이 완전무결한 존재에게 자신을 대책없이 내맡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코흘리개 꼬마에게 인생이란 뭐냐하면 말이다 하고 시작하는 동네형님의 훈계같은 이야기라 더 친숙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아저씨가 어떤 이유로 시골의 작은 동네에 은둔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뱀파이어라면 주인공소년처럼 평생을 두고 벗으로 지낼만 하지 않을까요?
글의 서두에 뱀파이어 이야기의 트렌드에 대해 잠깐 적었습니다만, 그건 제 사견일 뿐이고 사실 최근의 트렌드는 창작자분들이 한 쪽으로의 유행, 혹은 방향성을 추구하거나 따르려하지 않는 것이 바로 트렌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만큼 뱀파이어라는 존재의 가능성이 앞으로도 무궁무진하다는 뜻이겠지요.
지하실의 관에 숨어있다가 해가 지면 나와서 사람들의 목덜미를 노리던 존재가 이젠 꼬마아이와 놀아주면서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역시나 사랑받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