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가님. 작품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즐겁게 쓰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전체적으로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의 이야기였던 터라 저도 부담 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덧붙여, 이 글을 읽으실 작가님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리뷰를 요청하신 작품은 연작의 하편이었지만, 불가피하게 상편까지 읽고 감상문을 작성하게 되었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일단은 설정이 흥미로웠던 것 같습니다. 부산항이 졸지에 거대 괴수에 맞서는 최전선이 되어버렸다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기계인지 생물인지 알 수 없는 커다란 괴물에 대항하여 일군의 사람들이 물샐 틈 없는 계획에 따라 일제히 움직여 결국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는 플롯 자체가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함대 혹은 함대전과 관련되어서 몇몇 재미있는 디테일들이 제시되는 점도 관련 분야에 문외한인 제 입장에서는 좋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짧게 언급되는 승조원들의 일상 묘사와 같은 부분이 나름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작품에 생생한 분위기를 부여해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외에 괴물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 공격해오는 대목도 전투의 묘사가 생생하고, 긴장감을 자아내는 솜씨가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이 좋았던 점들과는 별개로 약간은 아쉬운 부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중 많은 대목들이 함축하고 있는 문제의 이유를 한가지로 압축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등장인물들에 대해 독자가 감정이입을 할 여지가 적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작품의 초반에 승조원들이 여진에게 달려들었다가 얼차려를 받는 대목에서 다소의 당혹감을 받았습니다. 대사나 인물들의 반응, 거기에서 유도되는 유머 등이 다소 낡은 느낌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이 부분은 작중의 시대배경을 감안해 이 이상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이 대목이 등장한 이유를 잘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이 초반 장면은 그 (상대적으로) 긴 길이에도 불구하고 그저 ‘바보 같은 승조원들이 여진에게 장난을 치려다가 여진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갑판장에게 얼차려를 받는다’라는 정보 이외에는 여진이나 갑판장, 승조원 개인들에 대해서 독자에게 무언가 쓸모 있는 것을 전혀 알려주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해당 장면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문제점이 이후로도 완전하게 해소되지 않은 채 작품 전체에 걸쳐 일종의 (감정적으로) 결여된 느낌을 지속적으로 야기했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다소 진부하게나마 승조원들이 작업 중에 뼈가 담긴 말로 도움이 되지 않는 여진을 얕잡아보는 발언을 내뱉는다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상급자에게 여자는 안 된다면서 무시 받고 온 여진을 승조원들이 따뜻하게 위로해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인물들이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들이나 그 개별적인 인간성들을 좀더 부각시키는 장면이 대신 묘사되었다면 여진이 함 내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고, 어떤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지를 좀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면 다소 길게 느껴지는 서두(예를 들어 초반 장면 직후에 등장하는 장교들의 회의 장면)를 좀 깎아낼 수도 있었을 것이고, 보다 멀리 보자면 동물학과 관련된 설정이 그토록 뜬금없이 제시되는 사태를 막아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 상에서, 승조원들이 이와 같이 단순히 바보 같은 행동을 하고 처벌받는 소모적인 역할로만 묘사되지 않고, 좀 더 개별적이고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는 개개인으로서의 면모가 부각되어 묘사될 수 있었다면 괴물과 전투를 치르는 절정 부분의 장면이 더 감정적인 폭발력을 가지게 되었을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승조원들이 개별적인 사람이라기보다는 한 덩어리의 객체로만 제시되고 마니, 2,700명의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한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는 대목도 그저 기계장치를 본다는 느낌만 줄 뿐 그 이상으로 마음의 동요를 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기계부품에 감정이입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함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야 그 내부의 삶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례들을 통해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폭발적인 감정을 좀 더 생생하게 상상해낼 수 있었겠지만, 저는 견문이 부족한 탓에 그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역시나 동일한 맥락에서, 여진이 안고 있는 핵심적인 ‘고민거리(여자라고 무시 받는 것)’ 또한 구체성 있고, 보다 감정이 실린 에피소드를 통해 제시되지 않았던 탓에 갈등이 해결되는 대목에서도 다소 맥 빠지는 느낌만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여진의 고민거리가 처음으로 명확히 언급되면서 분위기가 고조되는 부분은 좋았지만, 결국 그러한 갈등의 근원이 ‘여자이기 때문에 무시했다’라는 극도로 피상적이고 단순한 동기에서 비롯되었던 터라 갈등 자체도 무게가 없이 가벼운 인상만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여자라서 무시 받는다’는 갈등의 소재 자체가 가볍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등장인물들이 대체 ‘왜’ 여진을 여자라서 무시하는지, 여진은 그런 무시의 ‘진짜 이유’에 대항해서 어떠한 대응을 상정하고 있는지, 관련된 설정이나 묘사가 조금만 더 덧붙여졌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밖에,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면 괴물을 파훼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과정이 너무 손쉽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대놓고 눈 달린 촉수를 보여주기보다는 좀더 애매한 단서들을 뿌려놓아 여진이 약간만 더 머리를 쓰게 했다면 여진의 능력을 부각시키는데 보다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대단찮은 것이지만 주석과 관련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일단 주석이 많은 건 좋은데, 조금 정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탄착이나 선미 같은 주석은 제가 기억하기로는 두 번 이상 등장했고, 순서도 좀 신경이 쓰였습니다. 예를 들어 작품의 초반에 포술장이 언급되어서 뭐 하는 사람인지 직접 찾아봤는데, 나중에 한참 전투가 격화되는 순간에야 포술장을 설명하는 주석이 다소 예측할 수 없이 튀어나와서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런 점들은 상하편이 나눠져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것보다 주석과 관련되어 결정적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아무래도 작품의 세일즈 포인트를 생각해봤을 때 공해나 어뢰처럼 너무 상식적인 주석보다는 방수에 쓰이는 보편이나 C크랭크 같은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등에 대해 주석을 달아줬다면 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부분에 대한 것입니다.
어쩌다 보니 단점만 적어놓은 것처럼 되기는 했지만 좋은 인상을 받은 작품일수록 아쉬운 소리가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느낌이었고, 거대한 장편 속의 한 에피소드 같다는 인상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보다 확장되고 세세한 세계관을 가진 작품으로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럼,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