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과 코즈믹 호러가 이렇게 잘 어울릴 줄 몰랐죠 감상

대상작품: 이 친구는 착해서 부탁하면 들어줍니다. (작가: 티팟, 작품정보)
리뷰어: 소윤, 19년 5월, 조회 117

자고로 친구란 날 괴롭히고 짜증 나게 해야 제맛이지 착해서 부탁을 들어주면 세상이 무너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헛소리입니다.

작가님의 작품소개를 그대로 인용해서, “가슴타령이 지겨워서 쓰는 코즈믹호러 코미디”입니다. 유쾌하고 새롭고 쫄깃하고, 무엇보다 일단 잘 읽히는 글입니다. 스포일러를 피해서 리뷰를 써 보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작품을 읽고 와 주세요.

 

 

 

 

 

 

1. 가슴!

인류 역사에 유구한 가슴타령은 참 기가 막힌 현상이지요. 작품은 한국 근현대문학의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시간을 거슬러 고대로 올라가도, 바다를 건너 서구를 갸웃해도, 장르를 바꾸어 21세기 로맨틱 코미디를 보아도, 가슴타령은 다양한 형태로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프로이트에서 정점을 찍긴 했지만 딱히 후퇴기에 들어선 것 같지는 않은 가슴타령은 가슴 가진 많은 독자들을 고통스럽게 하곤 하지요. 반박하는 것은 어렵고 올바르게 분노하는 것은 더 어렵고 외면하자니 너무 덩치가 큰 가슴타령이라는 장르는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지 항상 감을 잡기가 힘든데, 『이 친구는 착해서 부탁하면 들어줍니다.』는 너무 기가 막힌 반응을 보여주어서 속이 다 시원하네요.

『친구』가 서수가 바라는 여성들의 스테레오타입-적 형태를 띠기 시작했을 때부터 훌륭한 패러디의 향기가 나서 벌써 재밌었습니다. 서수의 행동을 찬찬히 생각하기 시작하면 불쾌하지만, 이미 『친구』의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묘사의 방식에 매료되어 불쾌감보다는 호기심과 흥미가 먼저 동했던 것 같아요. 이어서

나중에 주인공은 날 버린 첫사랑이나 어머니나 술집여자로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날 버린 술집여자였던 어머니에 대해서 말하곤 했다.

에서 그간 축적되어온 유쾌함이 1차로 터졌고,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여자를 사랑하면서 살겠니.”

에서 2차로 터지고,

남자야, 젖가슴을 그렇게 좋아하니 (후략)

에서부터 그냥 내적폭소에 고통받으며 마지막까지 스크롤을 내렸습니다. 쓴 맛이 섞인 웃음이지만, 어쨌든 즐거움은 즐거움입니다. 맞아요,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여자를 사랑하면서 살겠어요. 가슴타령이 만연한 세상에서 여성에 대한 온전한 사랑이 가능하다는 희망은 소진된 지 오래입니다. 이미 문화의 근간이 되어있는 가슴타령을 뿌리부터 재구성하거나 적어도 그에 맞설 수 있는 뿌리를 찾아내는 것은 참 지난한 (사실 애초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는) 작업이라, 그 모습을 대놓고 패러디해낼 수 있는 『친구』의 명료함이 부럽습니다.

 

2. 일단 코즈믹 호러입니다.

주제와 엔딩이 워낙 인상깊어서 넘어가기 쉽지만, 『이 친구는 착해서 부탁하면 들어줍니다.』 훌륭한 코즈믹 호러입니다. 어느 날 나타난, 눈에 띄지만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이상한 물체, 그 물체는 알고 보니 인간 이상의 능력과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존재로부터 인류를 보호하는 유일한 장치는 이것이 인간을 이해하고 돕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친구』라는 점입니다. 그 존재는 인간을 모르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의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 시선은 세상을 재구성해 버리기 때문에 독자는 익숙한 세상을 낯선 시선을 통해 바라보아야 하고, 이는 곧 내게 익숙한 세상, 내 것인 신체에 이질감을 느끼게 만드는 상태로 이어집니다. 광진과 서수와 접촉한 이후 정도의 시점부터 작품의 내래이션을 점차 차지하는 『친구』의 목소리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당도 쏙 빼고 드라이하되 인간에 대한 호의만은 간직하고 있습니다. 독자는 어느 새 그 목소리에 말려서 이질적인 시선으로, 내게 익숙해져서 알아채지 못하기 쉬운 어긋남을 발견할 수 있는 시선으로 우리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셈입니다. 일상적으로 향유하는 공간/문화/생활을 이질적으로 변모시켜버리는 초월적 존재의 시선 – 이라는 요소가 코즈믹 호러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의 것이 아닌 시선/목소리를 묘사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유쾌함까지 곁들여서 멋있게 써내주신 작가님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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