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구달이 생각나는 비나이다의 모습 감상

대상작품: 아름다운 비나이다와 그녀의 짐승들 (작가: 문녹주, 작품정보)
리뷰어: 유이남, 19년 4월, 조회 104

비나이다는 나다라는 종족의 박물학자입니다. 그는 박물 자료를 찾기 위해 지구에 방문했다가 불의의 사고로 오랜 시간 동안 지구에 ‘표류하는’ 처지가 됩니다.

지구에 체류하기 전부터, 비나이다는 박물학자로써 필드의 생태계에 최대한 간섭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것은 연구자의 실천적 윤리이기도 하면서, 보다 외부의 개입이 적은 날 것 그대로의 정보를 수집하려는 의도이기도 합니다.

박물학자로서 비나이다의 자의식은 인간(두발짐승)들이 자신을 포획한 뒤에도 여전합니다. 비나이다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교류 외에는 인간과의 교류를 피합니다. 말을 섞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물론 이는 인간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을 ‘감정을 섞을 대상’이라기보다 여전히 ‘관찰 대상인 짐승’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나이다는, 보다 많은 인간들과 만나게 되면서 점점 인간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는 학문적 접근이라기보다 ‘삶적인 접근’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마치 침팬지들과 교류하던 제인 구달처럼요. 젊은 제인 구달은 제도적인 훈련을 받은 연구자가 아니었습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제인 구달은 고등학교를 마친 후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이런저런 직업을 가지며 생활하다가, 케냐에 있는 친구의 농장에 초대받게 됩니다. 구달은 이 때 케냐 국립 자연사 박물관장이던 루이스 리키와 만나게 되고, 그의 현장 연구에 동행하며 각종 연구방법론과 노하우를 체득하게 됩니다.

이러한 구달의 이력은 그의 연구에도 고스란히 반영됩니다. 구달은 침팬지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하기보다 그들의 삶에 직접 다가갔고, 연구 대상인 침팬지에게 이름을 붙여주며 이들을 ‘he’, ‘she’라고 지칭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당시 동물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금기였기에 구달은 큰 반발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러나 돌이켜봅시다. 현재 침팬지 연구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권위자로 남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회차를 거듭할수록 비나이다가 보여주는 모습은 제인 구달의 태도와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비나이다는 끼니를 챙겨 주던 인간에게 나름의 반가움을 표시하거나, 우는 인간을 나름의 방법으로 달래주기도 합니다. 이 중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잔치를 가장해 마을 사람들을 몰살했던 황손의 종 이야기였습니다. 이는 ‘객관적’으로 보아 잔인하고 무서운 행동입니다. 동족을 학살하는 침팬지를 보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그 침팬지와 함께 있고 싶은가요?

그러나 비나이다는 함께합니다. 종이 늙어 죽을 때까지 비나이다는 종과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 몰살 사건에 얽혀 있는 일들, 황손과 종이 겪어 온 삶의 궤적을 비나이다가 직접 지켜봐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몰살 사건’이라는 단어로 담아낼 수 없는 울분과 노여움, 허탈함, 슬픔, 사랑의 결을 비나이다는 분명히 느꼈고, 앞으로 더욱 잘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염비와 함께 사원의 사람들을 몰살시킨 것만 보더라도요. 아무래도 비나이다는, 고향 별에서 호모 사피엔스 연구의 최고 권위자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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