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에서 공포의 대상은 뭘까요?
‘쿠키’의 끔찍한 죽음? 아닌 것 같습니다. 쿠키의 행방이 묘연해진 동안에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은 공포라기보다 불안감입니다. 두 감정은 구체적인 원인의 유무를 통해 구분되는 감정입니다. 이유 없는 불안감은 있을 수 있어도 이유 없는 공포는 상상하기 어렵잖아요. 쿠키의 행방이 밝혀진 후에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도 공포라기보다는 분노와 슬픔입니다. 쿠키에게 가해진 위협이 인간인 자신들에게는 향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으니까요. 이 때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차라리 무고한 생명에 가해진 폭력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무고한 생명에 대한 동정과 연민일 것입니다.
‘그라인더맨’의 사이코패스적 성향? 이것도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진 않습니다. ‘광필’이 느끼는 감정은 분노이고, ‘순임’이 느끼는 감정은 슬픔과 복수심입니다. ‘나’가 그라인더맨에게 “섬뜩함”을 느끼긴 하네요. 그러나 여전히 그라인더맨이 인간인 자신들을 해치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존재합니다. 인간을 때리면 “고양이를 죽여서 내는 벌금보다 훨씬 많은 벌금”을 낼 거라고 그라인더맨 본인이 말하고 있으니까요.
오히려 등장인물 중 가장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는 건 다름아닌 그라인더맨입니다. 에이즈 환자인 순임의 피를 주입받은 그는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하더니 “처절한 비명”을 지르네요. 가장 적극적이랄까요. 다시 말해 이 소설 속 진짜 공포의 대상은 ‘에이즈 환자 순임’이 아닌가요?
물론 작품의 결말은 권선징악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권선징악이라는 것이 ‘전염병 환자에 대한 공포’를 통해 완성된다면……. ‘나’가 느끼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뭔지 알 것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