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올 제비를 기대하며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세번째 제비 (작가: 이필원, 작품정보)
리뷰어: 코르닉스, 19년 3월, 조회 108

게으른 감상입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가끔 처음부터 ‘이 글은 리뷰를 적기 좋겠다’라는 직감이 드는 소설이 있습니다. 소설의 주제를 빠르게 알아차리면 그런 생각이 더 빠르게 들죠. 물론 처음에 든 직감이 리뷰를 적으면서 유지되는 경우는 적습니다. 하지만 소설을 두 번 읽으면 대부분 다른 생각이 떠오릅니다. <세 번째 제비>은 바로 그런 부류에 속하는 글이었습니다.

첫번째 읽었을 때, 이 이야기는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주인공은 혼혈이 아니면 이민 2세대입니다. 한국이 결혼 이민 외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혼혈일 가능성이 더 높아보이지만요. 어느 쪽이든 한국에서는 배척받고 조롱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종을 그저 설정으로만 넣는 소설도 있지만 이 소설에서는 피부색이 다르기에 받는 차별이 보이입니다. 어릴 적에 증오와 차별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었다는 소망이나 놀이동산의 캐스터로 일하면서도 끼보다는 피부색으로 판단되는 묘사나 경찰서에서 피해자임에도 피해자 지나친 관심을 받는 것처럼요.

푸르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푸르는무슨 목적인지 알 수 없지만지구에 왔지만 부서지지 않는 울타리 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려고 합니다. 푸르는 외계인입니다. 비록 외형은 바꿀 수 있었지만 섞이지 못하는 건 주인공보다 더 했을 겁니다. 부서지지 않는 울타리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는 나오지는 않지만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아이가 어떤 취급을 받을지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주인공이 푸르에게 험한 꼴을 당했지만 무시하거나 다른 곳으로 가는 대신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도 그런 처지를 공감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세 번째 제비>라는 제목은 푸르 이전에 한국에 왔었던 두 명의 푸르, 그리고 주인공과 만난 세 번째 푸르를 뜻합니다. 하지만 배척받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로 읽는다면 이 제목은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조류인 제비, 제비와 비슷하게 생긴 외계인인 푸르, 그리고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비는 한국에서 대표적인 여름 철새입니다. 겨울에는 비교적 따뜻한 동남아에서 지내다가 봄이 될 무렵에는 한국으로 올라옵니다. 비약이지만 주인공의 피부색을 생각하면 동남아에서 왔다고 연결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철새이기에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이지만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읽는다면 이 작품은 꿈과 현실이 자연스럽게 뒤섞인 마술적 리얼리즘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두번째 읽었을 때도 제가 읽은 주제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다만 푸르가 외계인이라는 해석이 조금 달라졌을 뿐입니다. 글을 읽으면서 “호라오”나 “나는 끝에서 온 푸르다”라는 말이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그저 푸르의 낯섬과 신비함을 강조하기 위한 무작위적으로 뽑힌 소리일까요. 그러다 별 생각 없이 적은 건데 호라오란 단어를 검색해보았습니다. 헬라어 ὁράω가 나왔습니다. 뜻은 보다. 그 외에 인지하다, 경험하다, 깨닫다 등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성경에서 자주 쓰이더라고요.

생각해보니 푸르는 자기가 외계인이라고 말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저 우주비행사를 꿈꿨던 주인공이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죠. 하지만 인간으로 변할 수 있고, 날개가 달렸으며, 특정 인간 외에는 보이지 않고 ‘사람이나 영혼의 범주를 아예 넘어서 버리는 종족’이라고 하면 인간에게 외계인보다 매우 친숙한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천사입니다. 한 번 그렇게 생각하니까 과연 푸르가 일반적인 외계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심이 마구 커지기 시작했습니다.어디서 왔느냐는 손으로 낮달을 가리킨 걸 보면 인간과 그렇게까지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보면 ‘끝에서 왔다’는 표현도 꽤 의미심장하죠. 기독교 세계관에서 모든 인간이 마지막에 마주하게 되는 심판이 내려지는 곳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의 유한성을 사랑하여 날개를 버리고 인간이 된 천사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인간이 된 천사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어떨까요. 천사일 때는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인간의 한계를 긍정하지 못하고 마침내 절망하게 되어 다시 천사가 되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물론 푸르의 목적이 호라오인 것을 생각하면 알고 인간이 되었다기 보다는 인간이 어떤지 알기 위해 인간이 된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내에서는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든 주인공이 푸르를 도와준 것은 잃어버렸던 인간에 대한 낙관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게 도와준 게 아닐까 싶네요.

마지막으로 약간 아쉬운 점을 적자면 주인공의 내면과 푸르와 주인공의 관계에 집중해서 주변 인물이 다소 기능적으로 그려지는 점이 있었습니다. 차라리 평범하게(?) 그렸으면 모르겠는데 주변 인물들이 다소 특이합니다. 점점 쇠락해가는 쇠락해가는 놀이동산을 5년 전에 인수해서 부동산을 팔면서까지 유지하던 사장이나, 혼자서 한 달에 한 번은 꼭 놀이동산에 와서 혼자서 제비열차를 차는 아저씨에게 아무런 사연이 없을 거 같지 않습니다. 혹시 과거에 이 놀이동산에서 다른 두 푸르를 만났고 그걸 잊지 못해서 놀이동산을 떠나지 못 하는 건 아니었을까요? 정보는 적은데 프리퀄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아쉬움이었습니다.

만약에 쓰신다면 귀여운 푸르 시리즈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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