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사 창 시리즈는 ‘소녀’를 읽어봤었는데, 개인적으론 소녀보다 이 작품이 더 재밌었다.
범죄예측 소재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뛰어난 작품이 있었던 터라 걱정이 되었다. 분명 비교하게 될 텐데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을 예상했던 건지 작품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와는 다른 곳에 쟁점을 둔다.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없는 이가 범죄자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오는 긴장감을 그렸다면, 이 작품은 범죄를 저지를 거라는 확신이 드는 인물을 내세우고 과연 이 사람이 어떻게 될 거 같냐는 의문을 제시한다.
이런 식으로 다루는 건 생각지 못했던 터라 재밌게 읽었다.
아쉬운 점은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우선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이면서 동시에 아이덴티티는 ‘진부함’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작중에서 언급되는 ‘아날로그 탐정’이란 것부터가 진부하지 않은가 싶다.
다만 앞서 말했다시피 진부함은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해서 마냥 부정하기만은 어렵다. 그래서 말하자면, 이 진부함을 재미로 승화시키려면 주위의 SF부분과 주인공이 고수하는 진부함을 대립시켜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이대로는 어느 쪽도 따로 놀 뿐 시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소녀’까지 포함해서 느낀 감상이다.
극단적인 예시를 들자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30분이면 가는 시대에 부산에 살던 주인공이 서울에서 발생한 사건을 조사하러 간다고 치자. 그런데 기차나 비행기는 사악한 문명이라며 의뢰인이 보낸 티켓을 찢어버리고, 엿과 미숫가루와 간식으로 먹을 누룽지 등등을 챙기고 짚신을 신은 채 서울까지 걸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막상 도착했을 땐 사건이 모두 끝나있고… 이러면 주인공이 미친 놈이 되긴 하겠지만 적어도 여기엔 ‘아날로그맨’으로서의 ‘의미’가 생긴다.
작중에서 드러나는 아날로그함은 주인공이 첨단시대의 수사법과 대립하고 구시대의 인물에게 공감을 한다는 점 정도 밖에 없어서, 좀 더 다양한 방향으로 아날로그함을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앤틱’ 취향이란 것도 소소한 물품들에서 오는 감성이지 않은가. 좀 더 멀쩡한 비유를 들자면 이런 장면을 넣을 수도 있다. 의뢰인이 와서, 주인공이 담배를 피는 모습을 보고 ‘왜 그런 구시대의 유물을 피는 거죠?’ 라고 묻고 주인공은 깊이 빨아들인 담배연기를 내뱉으면서 ‘자신의 한숨을 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면 와 진짜 아날로그하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아쉬운 점은 결말 부분이었다.
결말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레오 리 기태가 김재천을 죽이는 건 이해할 수 있었는데 AI가 자신의 삶을 헤집지 말아달라느니 하는 얘기가 나왔을 때는 몰입이 깨졌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바꿔봐도 된다.
“당신을 기다리며 많은 생각이 들더이다. 이제 나는 진짜 살인에 대한 재판을 받겠지, 그러면 그들은 다시 그것에 대해 떠들 거고…… 그래서 말인데, 부탁이 있소.”
“제게 말입니까.”
노인이 힘없이 끄덕이며 말했다.
“농구가 하고 싶어요.”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보았다. 창은 자신이 무얼 할 수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러겠다고 했다. 노인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무얼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농구가 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이야기의 맥락은 저게 아니었다. 화룡점정이 되어야 할 부분에서 다소 핀트가 어긋난 말을 한 듯한 느낌이다.
만약 작가가 내가 왜 저런 예시를 들었는지 이해를 못한다면, 그 감정이 바로 AI운운 하는 걸 읽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진짜로 레오 리 기태라는 인물이 저런 말을 할까? 그 의문이 아쉬웠다. 그 순간 각각의 인격이 있던 인물들은 사라지고 작가의 의식만 도드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