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평소처럼 세탁기를 돌리던 중,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세탁기 틈 사이 고무 부분에 500원짜리 하나가 끼어 있었던 거죠. 입꼬리가 올라갔습니다. 고작 빨래하나 돌린 것뿐이었는데, 일도 안 하고 돈을 번 것 같잖아요. 요즘 500원은 편의점 알바 괴롭힐 때나 쓰는 물건이라고 해도 돈은 돈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는 기쁨. 「스토아적 죽음」은 바로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어어? 하다 마지막까지 읽어버렸죠. 조금 얼떨떨한 기분으로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이런 500원짜리 소설 같으니!
2016년 영국에서 냉동인간이 된 소녀가 200년 뒤 주치의 살인사건에 연류 된다는 줄거리의 이 소설은 스토아교, 시상하부호르몬 대체를 걸쳐 인공지능에 다다라 끝을 맺습니다. 중편소설에 어울리는 호흡으로 다양한 소재들을 활용해 미래 의학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사회의 단면을 몰입도 있게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과학과 관련된 공부를 해보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공상과학 소설들은 철학적 사유로 끝맺음을 하는 걸 즐기는 것 같습니다.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죽음」이나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와 같은 작품들도 과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되, 인간에 대한 물음으로 끝을 맺습니다. 「스토아적 죽음」도 그렇습니다. 제목부터 ‘스토아’란 단어가 사용된 것처럼 「스토아적 죽음」은 SF적 소재를 빌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입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클래식한 SF 소설이었습니다.
「스토아적 죽음」에서 단연 돋보이던 부분은 섬세하고 정확한 서술이었습니다. 고도로 발달한 미래 기술을 관람하는 것은 물론 즐겁지만, 낯설고 신기한 세계를 표현해내는 일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스토아적 죽음」은 미래기술과 해부학적 지식을 매우 사실적으로 서술하여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예컨대 전문적인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전 클래식 SF마니아는 아닙니다. 사실 SF보다는 과학적 테이스트가 추가된 서스펜스나 스페이스 오페라 쪽을 더 선호합니다. 하지만 「스토아적 죽음」은 매력적인 세계관과 섬세한 묘사, 사실적이고 흥미로운 설정들로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데 장르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냥 오늘부터 SF를 좋아해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