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래 님의 글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위래 님의 글에는 저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더 먼 곳에서 바라보는 통찰력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그래서 글에서 폭신한 상상력 가운데에 묵직한 핵심이 만져진다고 종종 생각해요.
단편 “동굴 속”도 굉장히 매력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동굴 속 누군가의 정체에 대한 불안함이 중심인 글이었습니다. 여행자는 동굴 속 목소리 주인공이 사람이 아닌 괴물일까 봐 쉽사리 도와주지 못해요. 그러나 곧 그는 겁쟁이가 되기 싫었다며 동굴 속 목소리의 주인공, 여성을 도와줍니다.
글의 구성이 참 특이합니다.
이 단편에는 몇 번의 분기점이 있어요. 동굴 밖을 떠날 때라던가, 아침해가 밝고 나서 동굴 안을 다시 확인했을 때라던가. 그것을 저는 두려움에 공포와 압박감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여행자의 마음속인가 생각했었습니다. 쿠소게 마니아를 읽은 직후라 어쩌면 여행자가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닐까라고도 생각했었고요.
하지만 글의 마지막까지 내리고 태그를 읽었을 때 저는 순간 뒷통수를 맞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기분 좋은 통수치기였어요. “슈뢰딩거의 고양이” 그리고 “불확정성 원리”라니, 이만큼 이 단편을 요약하면서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 정도로 여운이 크게 남는 단어들이 더 있을까요!
아니다.
제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이것은 실은 한 여행자의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그보다 이것은 폭팔로 동굴 속에 깔려 죽은 여행자, 괴물에게 죽어버린 여행자, 그리고 여성을 구한 여행자 등 분기된 세계속 수많은 여행자의 이야기였습니다. 여행자가 어떠한 선택을 하거나 관측을 할 때마다 동굴은 두 세계로 분리됩니다. 즉 이전에는 그런 다양한 세계가 중첩되어 있었던 것이죠,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요. 목소리와 신원확인만으로도 상대가 괴물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연상케 하죠.
양자역학의 두 개념을 이런 매력적인 호러 소설로 탈바꿈 시킨 위래 님은 어쩌면 마법사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ㅎㅎ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