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얘기냐구요?
제 얘깁니다. 저도 작가님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거든요. 제 닉네임이 선작21인 이유도 그겁니다. 제가 조아라에 연재했던 글은 36화 선작 21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지요. 저는 좋은 작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작가님에게 해드리고 싶은 당부의 말이 있습니다.
이 리뷰는 못 쓰는 작가가 쓴 겁니다. 이 작가는 어떤 권위도 없고 필력도 지리멸렬합니다. 괘념치 마세요.
어쩌다 하나, 소가 뒷걸음질치다 쥐를 잡으면 제 의도는 성공한 겁니다. 제 의견은 두고두고 곱씹으면서 해결책을 강구할 정도로 귀중하다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아닌 것 같으면 잊어버리세요. 이하의 리뷰는 단점을 중점으로 다룬 리뷰고, 장점은 굳이 길게 언급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미 제가 언급하지 않아도 많은 장점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기본기 공부를 열심히 하신 게 드러나는 미려한 문체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장점을 말씀드리는 건 작가님의 궁금증 (왜 이 글을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가?)을 풀기 힘들 것 같아, 단점을 위주로 리뷰해보겠습니다. 작가님은 충분히 좋은 작가입니다!
오늘도 문피아에서는 수많은 ‘망생이’들이 ‘글먹’의 꿈을 꾸며 장편연재의 기나긴 발을 내딛습니다. 5500자라는 작은 분량을 완성하기 위해 하루에 다섯 여섯시간을 할애합니다. 대사를 짜고 시나리오를 올리고 설정을 정리하고 문체를 가다듬습니다. 일일연재라는 피말리는 속도를 따라가기도 벅찬데 독자 댓글에 하나하나 반응해야 하고 또 쪽지에도 답장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대다수는 – 정확히는 탑 100위의 ‘골든 베스트’ 안에 들지 못한 절대다수의 유망주들은 글을 ‘손절’하고 다음 작품을 준비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정말 그들이 글이 아니라 글자 덩어리, 글자 혼합물을 생산하는 필력 쓰레기의 가망 없는 ‘글먹충’이라 그런 걸까요?
아닙니다. 이들 속에는 백일장 정도는 가볍게 휩쓸던 유망주들은 물론이고 문창과 졸업생, 심지어는 신춘문예 입선 작가나 등단한 현직 작가, 웹소설 판을 체험하겠답시고 들어온 유명 일간지 기자까지 충분히 검증된, 재능과 실력을 모두 갖춘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이들을 제치고 골든 베스트의 영광을 얻는 작가들 가운데는 또 ‘중국집 알바’나 ‘정육점 주인’, ‘입시 실패하고 집에서 쫓겨난 고등학생’ 따위의 말도 안되는 배경이 보이기도 합니다. 왜 이럴까요? 이들이 톨킨도 울고 갈 고금제일의 재능을 지니고 있어서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그들이 팔리는 글을 쓰는 법을 아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잘 쓴 글이 안 팔릴 수 있고, 못 쓴 글이 잘 팔릴 수 있습니다. 작가님의 글이 팔리지 않는다고, 인정받지 않는다고 그 글이 객관적으로 쓰레기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카프카는 죽을 때까지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 글이 ‘인정받을 수 없는’ 글이라는 이야기는 되겠지요. 그럼 이 글은 왜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걸까요. 저는 제일 도드라지는 문제가 글의 구성, 좁게는 문장의 배치에서 넓게는 각 챕터의 너비라고 보았습니다.
문피아에서 연재를 하려고 하면 꼭 한두명씩 훈수를 둡니다. 훈수의 양은 장강의 모래보다 많고 훈수둘 사람은 공기분자보다 많으니 결국 훈수의 가짓수도 황제만 먹었다던 전설의 음식, 만한전석의 만 가지 음식같이 끝을 알 수가 없습니다. 허나 결국 어느 밥상에도 밥은 들어가는 법이고, 그러므로 어느 훈수에도 공통된 훈수가 하나씩 들어갑니다. 개중에 ‘글의 구성’에 관한 훈수를 들어보자면 이 말이 있겠습니다. ‘도입부 잘 써라’ 라는 훈수입니다.
예전에 기성작가 하나가 잘 나가는 소설의 도입부를 분석하면서 일종의 수학적 구조를 만들어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이 글에선 그걸 참조하고자 합니다. 그 구조에 의하면, 잘 쓴 도입부라면, 첫 3화 이내에 모든 걸 알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즉, 3화 안에 주인공의 목적, 동기, 그리고 능력이 드러나 있어야 합니다.
독자가 글을 판단하는 가장 큰 근거는 바로 도입부를 읽는 것입니다. 글이 기본만 하면 대부분 3화까지는 보고 하차를 합니다. 그러므로 작가는 3화 안에 독자를 끌어들일만한 무언가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인공의 특수한 능력일 수 있습니다. 그건 주인공의 목적에 대한 기대감일 수도 있죠. 주인공의 가슴 떨리는 동기일수도 있습니다. 혹은, 요즘 트렌드처럼 셋 다 섞어낼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의 도입부에서는 주인공의 목적, 동기, 능력이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3화의 끝에서 알 수 있는 건 제시된 상황 뿐입니다. 이 글이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 전근대 조선과 현대 한국이라는 건 유추 가능하지만 – 주인공의 이름은 무엇인지, 백그라운드는 어떤지, 무슨 동기로 이런 생각을 하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고 또 무엇을 하려 하는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자연스럽게 독자가 이입하기 힘들게 됩니다. 바로 글의 구성 문제입니다.
글의 구성 문제는 비단 도입부 – 챕터와 챕터의 배열로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침입자-02에서 보면 장면 전환이 총 다섯 번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너무 잦은 전환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합니다. 이 전환은 주인공의 방 속에서 주인공이 묶인 곳으로, 다시 주인공의 심상세계에서 또 남주인공의 심상세계로… 하는 식으로 이리저리 빠르게 이동하고, 독자는 한 상황에 이입하다가 빠르게 다른 상황을 그려내야 하는 시험을 반복적으로 받게 됩니다. 결국 이입에 장애가 됩니다. 장면과 장면의 전환, 챕터와 챕터의 전환과 그 결과에서 무엇이 도출되는지 불투명합니다. 이 글은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습니다 – 그리고 아마, 그건 독자가 이 글을 읽고 싶지 않게 만드는 이유 중에 하나일 겁니다.
구성이라는 건 글의 기본 요건 중 하나입니다. 독자에게 편의성을 제공하는 것도 작가의 의무 중 하나입니다. 구성을 조금만 더 신경써주셨으면 합니다.
이 글은 <맨디> 라는 호러 영화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올해 개봉한 영화인데, 극장에선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지나치게 실험적인 영화라서 그렇습니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흔들리고, 색감은 부옇게 떠서 눈이 아프고, 캐릭터의 연기는 괴상한 데다가 내러티브도 괴멸해 있습니다. 이 영화가 로튼 토마토 몇 점을 받았을까요? 99점 받았습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저도 요약을 못하겠습니다. 부기영화가 2편짜리 리뷰를 했는데 저는 그 리뷰조차도 이해가 안 됬습니다. 당연히 CGV나 메가박스같은데서 찾아보기도 힘듭니다. 이 영화, 자타공인 2017년 최고의 영화랍니다. 이런 겁니다.
이 글은 실험적이고, 좋습니다. 초보자가 썼다고 믿기지 않는 문체와 문장의 단정함이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특히 시제 통일은 초심자가 밥 먹듯이 어기는 것 중 하나인데 이 작가는 당연하게 지킵니다. 기본기를 확실히 구사하는 것만 봐도 묵직한 글 내공이 있다는 게 쉽게 느껴집니다. (저는 사실 리뷰 마무리하는 지금도 사실 어디 유명 작가가 일부러 사람 낚으려고 이러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저는 세상에 틀린 글은 없다고 믿습니다. 잘 팔리는 글을 연구해서 그 끝에 다다른다고 해 봐야, 그것도 그것대로 이상한 겁니다. 이 글의 제목이 <SSS급 장관 딸, 전생하다> 같은 제목으로 바뀐다고 생각해보세요.
kysim님은 좋은 글을 쓴 겁니다. 자신의 글에게 박하게 대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 글은 충분히 좋은 글이고, 혹평을 받을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필력 없고 흔해빠진 못난 작가로서, 그래도 얼마 되지도 않는 경험을 내세우며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말 뿐입니다.
자신의 글에 최선을 다하고, 최선을 다 했다면 후회를 남기지 마세요. 그리고 글을 많이 쓰세요.
언젠가, 작가님의 글이 브릿지 메인에 걸릴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 때에는 제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