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지만 실제로 가을에 책이 가장 안 팔리는 계절이라고 한다. 날이 너무 좋아서 사람들이 책을 읽기 보다는 밖에 나가는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책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가을’뿐 아니라 사계절 언제, 어디서, 어떻게든 책을 읽는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잠깐의 짬에도 가방 속에 넣어 둔 책을 꺼내기도 하고, 출퇴근 시간에 사람에게 치여 오도가도 없을 때 조차도 비좁은 틈으로 활자의 세상으로 빠져 들기도 한다.
그러나 책을 좋아하지 않는 이에게 책을 읽으라 한다면, 그를 분명 악마라고 느낄 것이다. 어렸을 때 고전 동화는 좋아했지만 커서는 책을 읽어라, 읽어라 했을 때도 책을 잘 읽지 않았다. 책의 매력을 모르는 때였기에 재미도 없는 책을 왜 읽나 싶었다. 언젠가 집에 없던 책을 부모님이 가져 오셨다. 기억하기론 600페이지가 넘는 굉장히 두꺼운 책이었다. ‘삼국지’ 축약본이었는데 초반의 유비, 관우, 장비가 각기 자신의 성격에 맞게 등장하여 의형제를 맺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되는 책이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책을 모두 읽기는 했지만 그 전까지 그 두꺼운 책은 내 마음 속에 바위 같은 무게로 느껴졌다. ‘읽어야 하는데 언제 읽나’ 부터 ‘아, 왜 저책이 우리집에 있을까’ 등등 다양한 생각들이 머릿 속을 파고 들었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읽어본 적 있냐? 존 톨킨의 후린의 아이들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맙소사,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Animal farm은 읽어봤겠지.”
침울한 표정으로 말 없이 고개를 젓는 소년을 향해 악마는 “그렇다면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읽어봤을 리가 없지. 그 재미있는 소설을···.”이라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BornWriter님의 <마음의 양식>은 그런 악마의 이중적인 무게를 드러내는 동시에 악마의 편견을 무참하게 깨어 버렸다. 악마하면 절로 떠오르는 것이 ‘파우스트’적인 악마의 모습이다. 의뢰자가 요구하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의뢰자에게는 응당 그보다 더 큰 댓가를 치르게 한다. 그러나 <마음의 양식>은 기존의 악마와 다른 면면을 가진 악마가 외양 조차도 악마 같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면서 난데없이 책을 좀 읽었다 싶은 이들이 좋아하는 독서 리스트를 말하며 소년의 기를 죽이고 있다.
아마도 그 소년은 죽어라 책을 읽고 있겠지…유쾌하면서도 악마의 속성을 독서와 연관시켜 이야기하는 장면이 발랄하게 읽힌다. 지금의 나와 예전의 나를 돌아보는 이야기이기도 했던 글이다. 소년을 복수를 위해 악마가 제시한 여러 책을 마주하다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 같다는 예상을 하며. 책이란 때때로 길은 없지만 사람을 바꾸기도 하기에. 부디 소년은 그런 기대에 부응했으면 좋겠다.
때에 따라 영혼을 충만하게 하는 작품이 다르지만 시시때때로 마음의 위안을 주고 활기를 주는 책은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 묵직한 여운과 우리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조지 오웰의 <1984>, 언제 어디서든 리메이크 되어도 지겹지 않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과 브론테 자매의 이야기 입니다. 최근에는 잔잔하게 읽히면서도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진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도 좋네요. 무더운 여름에 읽으면 더없이 좋은 소설이예요. 안 읽어보셨으면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