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세 번째 시즌에 나오는 김상욱 박사는 물리학자다. 그가 말하는 양자역학에 관한 이야기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긴 어렵지만, 흥미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소재를 던지고는 한다. 얼마 전 한 에피소드에서는 ‘우주는 원래 심심한 것.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인간의 편견. 우주는 어떤 의도 없이 변화하고 움직일 뿐’이라고 언급했다. 의미 없이 반복되는 우주. 곰곰이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의미 없는 과정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 ‘인간’을 생각해보면 꽤 재미난 상상을 하게 된다.
나는 스스로 자신의 비행을 이루어 나가는 종이비행기로 살고 싶다.
여기, 삶과 우주에 관해 비슷한 생각을 지닌 작가가 있다. 아빠 없이 엄마와 살고 있는 주인공 하재. 하재가 꿈꾸는 삶은 ‘종이비행기와 같은 삶’이다. 그는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독립적’으로 살고 싶은 소망을 품는다. 이와 동시에 주어진 환경을 수긍하는 ‘운명’을 거부하지 않는다. 환경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은 질풍노도 시기 속 청소년에게 흔치 않는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비행을 이루길’ 소망하는 ‘건강한 청소년’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평소와 다름 없는 그날 저녁, 엄마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우주의 비밀을 알게 된 주인공은 그가 원하던 ‘종이비행기’처럼 받아들인다. 물론 청소년인 그의 심리가 마냥 덤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텍스트로 적힌 주인공의 문장은 캐릭터가 분명하고, 그 분명함 속에서 건강함이 느껴진다. 그래서인까. 여느 청소년보다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모습 자체의 설득력이 꽤 높을 수밖에 없다.
이와 더불어 소설 속 배경에 관한 설명은 친절하다. 우주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내게 작가가 써내려가는 이야기가 어디까지 사실이고 허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우나 물컵 속 파동이나 빅뱅과 먼지의 관계처럼 독자가 이야기 속 세계관에 이해를 돕는 장치를 적절하게 두어 이미지가 확실하게 떠오르고 몰입할 수 있게 돕는다.
지금까지 작가가 이야기 한 주인공 ‘하재’란 캐릭터에 대한 묘사와 전체적인 스토리가 굉장히 설득력이 높아 뒷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이 즐겁다. 지금까지 서술한 주인공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꿋꿋히 적응하는 ‘종이비행기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얼마나 광활한지 감히 예측할 수 없지만 주인공 하재가 이제까지 겪은 ‘시공간을 초월한 틀’의 범위가 어떻게 확장될지, 동시에 이를 통해 더 멀리 비행하는 하재의 이야기를 기대해본다.